우리 산하와 문화재

백운산 칠족령 트레킹 (2) 칠족령 넘어 제장마을로

모산재 2014. 12. 8. 10:24

 

문희마을로 가는 언덕길을 잠시 오르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과 백룡동굴 주차장으로 가는 길.

 

백운산으로 곧장 가려면 마을 쪽으로 칠족령으로 가려면 주차장 방향으로 가면 된다.

 

 

 

 

 

'문희'라는 마을 이름이 독특하다 싶었는데, 마을을 지키던 개 이름이 문희여서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단다. 얼마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길래 개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됐을까.

 

진탄나루가 있는 마하로부터 문희마을까지는 동강물만 흐르던 오지 중의 오지인데다 넓은 땅도 거의 없으니 사람이 깃들 만한 마을을 형성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원래는 '문애'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어느 글을 보니 '문(門)'의 뜻을 가졌다고 풀이하면서도 그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다만 이곳 동강 물굽이가 사행천(蛇行川)이라 산태극수태극의 지세가 형성되었고 정감록에 "백운산 아래는 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 기록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칠족령 너머 제장마을을 일대를 일컫는 듯하다. 그렇게 본다면 별유천지비인간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과 같은 마을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평창-미탄-문희마을 안내도

 

 

 

 

※ 백운산 등산 안내도

 

 

 

 

 

 

칠족령으로 가는 길은 백룡동굴 매표소를 지나 바로 아래 집 뒤를 돌아가야 한다.

 

천연기념물 206호로 지정돼 있는 백룡동굴은 일반에 개방되고 있지만 보존을 위해 예약을 통해 제한된 인원만이 동굴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조명시설 등 인위적인 시설이 없으니 탐험 수준의 관람이란다.

 

 

 

 

 

문희마을 전경

 

 

 

 

 

 

마을 뒤로 돌아가자 이내 백운산 자락, 칠족령 고갯길로 들어선다.  

 

문희마을에서 칠족령까지는 1.8㎞. 그야말로 오솔길인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산허리를 감아돈다. 등산로 오른쪽은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 동강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숲길은 시공 동네 뒷산길이나 다름없는 고요하고 편안한 풍경이다.

 

 

 

 

 

 

 

조금 더 오르자 가랑잎에 뒤덮여 오솔길이 사라져버렸다. 낙엽이 지는 가으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덧 소나무 숲길에서 참나무 숲길로 바뀌었는데 보니 굴참나무들이 많다..

 

전국의 100대 명산으로 일컬어지는 백운산이지만 이 코스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모양. 아마도 문희마을 쪽으로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바로 백운산으로 올라 제장마을이나 점재마을, 또는 연포마을로 빠지는 모양이다.

 

 

 

 

 

 

나무 막대기로 낙엽을 치우며 길을 내어 걷기를 한참이나 하였다. 겨울에 눈이라도 덮이게 되면 나중에 산을 찾는 사람들이 다칠 것 같아 알뜰히 길을 치운다.

 

 

 

 

 

돌탑이 나온다. 옛날 평창과 영월의 경계로 삼았던 성터의 흔적이다.

 

 

 

 

 

길 양쪽에 돌탑을 쌓은 작은 고개 위에는 성터가 있다.

 

이곳 아래 절벽 어딘가에 아마 백룡동굴이 있을 것이다. 백룡동굴은 백운산의 '백'자와 동굴을 발견한 '정무룡'이란 사람의 형제의 돌림자인 '룡'자를 따 이름 붙인 이름이라 한다.

 

 

 

 

 

코르크가 발달한 굴참나무. 두꺼운 수피를 벗겨 산촌 사람들이 너와지붕을 지을 때 많이 이용한 나무다.

 

 

 

 

 

백운산과 칠족령 갈림길. 고개를 넘으면 평창군에서 정선군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다시 능선부의 백운산과 칠족령 갈림길.

 

동쪽으로 동강을 바라보며 아슬아슬한 능선길을 따라 백운산 오르는 길, 그리고 아래로 내려서 동강을 굽어보는 칠족령 전망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칠족령 전망대로 내려서는 길의 안내판에는 칠족령 지명에 얽힌 유래 전설을 담아 놓았다.

 

 

 

 

 

옛날 바로 아래 제장마을에 옻칠을 하던 한 선비 집의 개가 발에 옻칠갑을 하고 도망갔는데 그 자국을 따라가보니 기가 막힌 절경이 펼쳐지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옻 칠(漆)'자와 '발 족(足)'에서 칠족령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사연인데, 그리 리얼리티가 느껴지지 않는 싱거운 유래담이다. 제장마을이 옻과 관련된 무슨 전통이라도 있으면 모르거니와...

 

 

조금 더 내려가니 전망대가 있고 널리 알려진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시야를 흐리는 뿌연 내가 안타까운 절경이다.

 

 

 

 

 

왼쪽으로 들어온 물이 뼝대에 부딪혀 휘어돌아가고,다시 반대편 뼝대에 막혀 휘돌아가는 풍경, 지리학적으로 말하면 사행천이요 풍수적으로 말하면 산태극수태극의 지세다.

 

 

물돌이마다 마을이 들어섰으니 왼쪽 아래로는 장이 섰다는 제장마을, 건너편 물돌이 땅에는 바새(所沙)마을, 그 너머 길게 벋어나간 뼝대 끝에는 연포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동강의 본 이름은 연촌강(聯村江)이라고 한다. 강이 따라서 마을과 마을이 이어져 있어서 유래한 강 이름이다. 연촌강이 동강으로 바뀐 건 일제시대라 한다.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물돌이 마을 이름이 바새마을(또는 소사마을)이라고 하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던 땅이라고 한다. 마을 뒤편 솔숲에는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돌무지무덤 6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며 토기 조각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그 너머로 산줄기가 길게 벋어나간 끝에 자리잡은 연포마을은 벼루에 물을 담아 놓은 듯한 형상이라는 작은 강변마을인데,2003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동강 물굽이가 돌아나가는 오른쪽 산줄기는 깎아지른 듯한 뼝대(절벽)와 뼝창(뼝대 중간 중간 수직으로 움푹 패어진 골)으로 이어져 있다. 뼝창은 마고할미가 경치에 반해 강물에 발을 담그고 손을 씻다 벗어놓은 가락지를 잃어버려 그것을 찾다가 후비는 바람에 생긴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저 산줄기 중간 연포마을로 가는 길에는 하늘벽구름다리라는 것이 있어 뼝창을 건넌다. 구름다리 바닥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가 투명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 길은 생략하기로 한다.

 

 

 

 

 

 

왼쪽 아래 물돌이 지형에는 제장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 우리가 내려가야할 곳.

 

 

 

 

 

 

제장마을로 내려가는 길,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상류쪽의 소동마을. 그 너머 백운산 자락이 내려온 끝부분에 점재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제장마을 내려가는 길, 급경사를 이룬 능선길이다.

 

 

 

 

 

 

아래로는 동강이 흐르고 까마득한 절벽 위로 백운산 정상(882m)이 보인다.

 

 

 

 

 

제장마을로 내려서는 길

 

 

 

 

 

 

열매만 달고 있는 조팝나무, 열매자루가 털이 없고 매끈한 것이 당조팝나무가 아닌 아구장나무임을 짐작케한다.

 

 

 

 

 

마을에 다가서면서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구릉이 잠시 이어진다.

 

 

 

 

 

 

※ 제장마을 안내도

 

 

 

 

 

제장마을은 5가구 10여 명의 주민들이 고추, 옥수수, 감자 등의 밭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포도원민박과 포도농원이 보이는데 일조량이 많은  당도 높은 포도로 유명하다고 하며,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성금으로 제장마을 땅의 일부를 구입하여 난개발을 막고  '스트로베일' 공법으로 친환경 생태건축물 '동강사랑(東江舍廊)'을 건립하여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동강사무소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북미 지역에서 시작된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흙, 풀, 나무 등 자연 재료를 이용해 지은 집이다.  드라마세트장은 mbc미니시리즈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복실네집 세트장이라고 한다.

 

 

 

 

 

제장마을 등산로 입구 안내판

 

 

 

 

 

 

제장마을 앞 동강변의 뼝대

 

 

 

 

 

 

 

제장마을은 태극으로 휘도는 동강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는데,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의 중심마을이다. 1914년 일제시대에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소골(所洞), 바새(所沙), 연포(硯浦), 제장(堤場)을 병합하여 큰 산을 뜻하는 덕산(德山)과 내(川)의 이름을 따서 덕천리(德川里)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신석기시대 유적과 함께 고인돌과 철기시대의 돌무지무덤 1기가 발견되었다 하니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뗏목꾼이 쉬어가던 객주집이 제장마을 강변에 즐비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오지 여행자들을 위한 민박집과 가든들만 자리잡고 있으니 아쉬움이 크다.

 

천연기념물 어름치, 수달 등 각종 멸종위기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 위에 비친 절벽의 그림자. 댐도 아니건만 수면은 '잔잔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울처럼 고요하다.

 

 

 

 

 

제장마을 앞 동강을 건너며바라보는 백운산 풍경

 

 

 

 

 

 

 

제장마을과 신동읍을 이어주는 다리. 비가 많이 오면 잠기게 되는 잠수교다.

 

 

 

 

 

그런데 지금 이 다리는 점재, 수동마을의 다리와 함께 보다 높은 자리로 개축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게 되는 다리라 높은 다리를 세우려는 것인데 생태 경관 훼손 등을 우려하여 제동되어왔던 것인데, 결국 6~7m 높이의 다리를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난 모양이다.

 

생태계 훼손이 이뤄지지 않는 정도의 작은 교량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제장마을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별수없이 택시를 부른다. 신동읍에서 온 택시를 타고 고성산성의 허리에 있는 고성터널을 지나는데, 택시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터널이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은 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참 독특한 터널이다.

 

 

신동읍에서 내려 이른 저녁을 먹고 예미원역에서 기차를 차고 서울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