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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9) 화려한 금빛 사원, 감숙성 랑무스

by 모산재 2014. 10. 7.

 

 

●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오전, 감숙성 랑무스(郞木寺)

 

 

 

 

처음 본 천장터는 내 영혼을 오래도록 아리게 했다.

 

 

나는 왜 천장에 담긴 그 성스러운 의미에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고 신체의 절단이라는 시각적 끔직성에만 전율하는 것일까. 게다가 나보다 두어 달 전에 다녀간 어느 블로거가 올린, 제대로 해체되지 않고 버려진 섬뜩한 인골 사진을 본 다음에 마치 영혼이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둔중한 아픔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마음의 무거움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멀리 평화로운 풍광을 바라보는 것! 그나마 천장터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을 만나는 기쁨에 이런 전율을 진정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천장터를 내려오면서 나는 자꾸만 건너편 사천 랑무스와 그 뒤로 대협곡을 거느린 '중국의 알프스'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원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고맙다.

 

 

 

 

 

 

천장터에서 내려오면서 들르게 되어서, 감숙성 랑무스 사원은 뒤쪽에서부터 돌아보게 되었다.

 

 

 

 

 

멀리 왼쪽으로 붉은 바위산인 홍석애(紅石崖)로 이어지는 길이 환히 보인다.

 

 

어제 사천성 랑무스 뒤 언덕에 올랐을 때는 오늘 저 바위산을 올라보았으면 싶었는데,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싶다.

 

 

 

 

 

 

감숙성 랑무스의 정식 이름은 '안둬 다창 랑무사이치스(安多达仓郎木赛赤寺)'라고 한다. 그냥 줄여서 '사이치스(赛赤寺)'라 부르기도 하고 여행자들은 편하게 '감숙 랑무스'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사천성 랑무스의 정식 명칭은 '안둬 다창 랑무거얼더스(安多达仓郎木格尔底寺), 줄여서 '거얼더스(格尔底寺)'라 부른다.;

 

 

(※ '안둬(安多)'는 흔히 '암도'라 부르는데 동티베트인 청해성과 감숙성, 사천성 지역을 가리킨다. 티베트인을 중국인은 장족(藏族)이라 부르는데, 장족은 라싸(拉薩)인 캄(康巴)인 암도(安多)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다. 암도인은 이목구비가 준수하고 고급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사이치'는 티베트어로 사묘(寺庙)의 주지에 상당하는 '법대(法台)'를 뜻하는 말로 창건자는 라싸의 간단사(甘丹寺) 법대였던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에서 간단사 주지에 대해 '간단사이치(甘丹赛赤)'라는 존칭을 썼다.

 

 

 

두 사원을 통칭하여 '다창 랑무스(達倉郞木寺)' 또는 랑무스로 부른다. 원래 랑무스 사원은 1784년 창건된 사천성 랑무스로부터 비롯되었다('다창 랑무스'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랑무스 대협곡 답사를 통해 설명할 것이다.). 두 사원 모두 총카파가 창시한 겔룩파 사원으로 300년 동안 향불이 한번도 꺼지지 않은 암도 지방의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

 

 

아침에 보았던 감숙성 랑무스 전경

 

 

 

 

 

대부분의 전각이 근래에 복원된 것이라 깨끗하다. 화려한 장식에 금빛 찬란한 지붕은 티베트 사원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드러낸다.

 

 

맞은편 사천성 랑무스의 사원은 비교적 오래되어 낡았고 지붕은 모두 은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모두 금색이다. 그래서 사천성 랑무스는 학승들의 교학기관 분위기로 잘 어울리고, 감숙성 랑무스는 관광지로서 더욱 어울리는 느낌이다.

 

 

 

 

 

 

승려들이 거처하는 가옥과 지붕. 티베트 민가의 전형적인 널빤지에 돌을 얹어 놓은 지붕 양식으로 우리의 너와지붕과 비슷하다.

 

 

 

 

 

총카파불각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겔룩파 시조인 총카파 불상....?

 

 

 

 

 

감숙성의 중심 전각인 대경당을 내려다 본 모습

 

 

 

 

 

계단을 내려오면서 올려다본 아름다운 전각의 처마...

 

 

 

 

 

내려와서 바라본 두 전각의 모습

 

 

 

 

 

 

감숙성 랑무스의 유래 등에 대해서 중국 사이트를 통해 잠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3세 거얼더 뤄장단바러부지(格尔德·洛藏丹巴热卜吉, 1564~1643)가 이곳에 이르러 산신을 붙들어 등에 타고 길들여 바위절벽 위에 머무르며 발자국을 남기고 승낙동(胜乐洞) 문을 열게 된다. 그 후 성인으로 일컫는 가단가쵸(噶丹加措)와 디창마니빠 시라오차시(地仓嘛呢巴·喜饶扎西)가 앞뒤로 이곳에 머물렀다. 마니빠 전기에 기술되기를, 그가 수행하는 동굴 입구에는 늘 한 마리 호랑이가 배회하는데 자비로 바라보므로 위해가 없었다. 1731년 최초로 정수원(静修院)을 지은 이는 타라 아왕바창(托拉·阿旺拔藏)이다.

1748년 간단사 제 53 금좌법대를 맡은 사이츠곰파의 제1세활불 츠친(赤钦·坚赞桑盖)이 이 터를 선정하여 제7세 달라이라마 거상가쵸의 윤허를 받아 북쪽 언덕 장길산(章吉山) 양달 숲속 산허리에 사이츠 곰파(赛赤寺)를, 남쪽 응달 골짜기 입구 강가에 거얼더 곰파를 창건했다. '사이츠(赛赤)'는 '금빛보좌(金色的宝座)를 뜻하는 티베트어를 음역한 말로 티베트불교의 최고 학위이자 영예를 나타내는 '치와(赤哇)'의 속칭이다.(최초의 '사이츠'는 총카파)

1950년대에 문사(闻思), 속부(续部), 시륜(时轮), 의학(医学), 조판(雕版) 등 5개의 승원, 5백여 명의 승려, 대소경당과 미륵, 금와(영탑), 마두병왕(马头明王), 호법(护法), 호주(怙主), 연화생(莲花生), 사면모(狮面母) 등의 불전과 불탑 등 50여 좌가 있었다.

‘10년동란(1966~1976)’이라 일컫는 문화혁명기에 유감스럽게도 사원은 한순간 폐허가 되어 성보문화재가 전부 파괴되었다. 더불어 금와전 안에 모셨던 제1세 사이츠 츠친(坚赞桑盖)의 육신이 다 타버리는 등 그 손실은 영원히 복구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참중(惨重)했다.  - 참조 : http://baike.baidu.com/view/10923758.htm

 

 

 

감숙 랑무스 전각들이 지나치다 할 정도로 반짝인다 싶었는데, 문화혁명기에 처절하게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전각들은 거의 1980년 이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감숙성 랑무스의 본전인 대경당

 

 

 

 

 

 

불을 밝히지 않은 불전 내부는 학승들의 교학 시간인지 분위기가 엄숙하다.

 

사진을 찍는 것이 조심스러워 플래시 없이 조용히 사진을 담는데 어두워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대경당 앞에는 삼나무 종류로 보이는 경변림(經辨林)이 하늘을 지를 듯 솟아 있다.

 

 

 

 

 

 

변경림(辯經林) 공터에는 두 청년 스님이 날렵하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인다. 아무리 봐도 그냥 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무예라고 보기에는 날카로움이 없다.

 

대단히 흥미로운 장면인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무슨 동작인지 물을 엄두도 나지 않고...

 

 

 

 

이게 뭘까, 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여러 자료들에서 찾다 보니 아마도 티베트 불교의 학승들이 하는 '체니'라는 토론의 몸짓인 듯하다. 체니는 승려들의 교리 문답인 '변경(辯經)'을 뜻하는 말로 '딱셀'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체니가 열리는 장소를 '최라(chora)라고 한다.

 

티베트 학승들은 공부한 경전 내용과 수행, 깨달음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는데, 방어하는 스님은 앉아 있고 공격하는 스님은 서 있는 상태로 서로 손뼉을 치면서 상대방을 논박하는데 아마도 이 장면에 대한 연습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 싶다.

 

 

 

호법전으로 보이는 건물 앞 마당에는 독특한 문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랑무스 전경

 

 

 

 

 

 

라마불탑 초르텐. 뒤로 보이는 랑무스의 전각들

 

 

 

 

 

 

여기서 잠시 초르텐 양식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자.

 

 

원래 불탑은 석가가 열반에 들기 전 아난이 그를 모실 불탑을 물었을 때, "맨 아래 단에는 가사를 세 겹으로 접어라. 그 위에 발우를 엎어 놓고 그 위에 석장을 올리면 불탑의 모양이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아소카왕이 세운 최초의 불탑 산치탑이 삼단의 기단부에 발우를 엎어 놓은 듯한 복발탑에 석장 모양의 상륜부로 구성되었다.

 

이 산치탑의 발전된 형태가 티베트 불탑 쵸르텐인데, 탑의 각 부분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세 개의 계단은 불· 법· 승 삼보이다. 기단부는 사각형으로 땅을 나타내며 자만심을 정화하는 보생불이 계신다. 원형의 감실은 물을 나타내며 성냄의 번뇌를 정화하는 아촉불이 계신다. 삼각형의 보관은 깨달음의 13단계이며 불을 나타내며 탐욕을 정화하는 아미타불의 궁전이다.

반월형의 산개는 바람을 상징하며 자비심의 그늘을 나타낸다. 해와 달은 수미산의 상징이며 무지를 정화하는 비로자나불의 성소이다. 기단부 위의 네 계단은 사무량심을 나타낸다. 감실 위의 여섯 개의 모서리는 육바라밀을 나타낸다. 감실과 상륜부를 연결하는 팔각기둥은 팔정도를 나타낸다. 상륜부 13개의 고리는 깨달음의 13등급이며 해와 달은 반야와 방편을 상징한다. 해와 달 위에 있는 둥근 보석은 중생의 무지를 밝혀 주는 보리심이다.

 

 

 

 

 

 

쇄불절(晒佛节) 축일에 대형 탱화를 내거는 괘불대

 

 

 

 

티베트 불교에서는 티베트력으로 정월 13일을 쇄불절로 정하고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쇄불(晒佛)'이란 불상에 바람을 쏘이고 햇빛에 말린다는 뜻.

 

 

 

 

아침에 들어섰던 사원 입구.

 

동쪽으로는 마니차 회랑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옴마니밧메홈'을 외며 코라를 돈다.

 

 

 

 

 

 

천장터와 감숙 랑무스를 돌아보고 나니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랑무스의 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맘에 드는 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썩 맘에 내케는 식당이 없고, 게다가 우리 일행을 다 수용할 만한 큰 식당도 거의 없다.

 

 

랑무스 거리 풍경

 

 

 

 

 

가게들 곳곳에는 용맹하고 충직스런 티베트견 짱오(藏獒) 박제를 입구에 세워 놓고 있다. 티베트에서고 귀해진 개, 우리 나라에서는 수억 원을 호가하며 거래되고 있다 한다.

 

 

 

 

 

결국 일행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지고 우리(현옥, 예주, 영주, 미경)는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밥과 함께 감자볶음, 야채볶음, 토마토볶음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맛을 낼 만한 양념 등 재료가 없어 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칭커맥주'를 시켜서 한 모금 마신다. '칭커'는 티베트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보리를 일컫는 티베트어.

 

 

 

 

 

식사를 마친 뒤 사천 랑무스를 함께 돌아보기 위해 약속 장소로 정한 호텔 로비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