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국보 제99호> 김천 갈항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모산재 2012. 2. 29. 21:25

 

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동의 갈항사 금당터에 동·서로 세워져 있던 두 탑으로 통일신라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 양식을 가지고 있다.

 

갈항사(葛項寺)는 692년(효소왕 1) 당나라에서 귀국한 화엄법사 승전(勝詮)이 창건한 절이다. <삼국유사>에 "승전 법사가 돌 덩어리들을 거느리고 논의와 강연을 하였는데, 지금의 갈항사에서였다. 그 돌조각 80여 개가 지금까지 주지에게 전하는데, 자못 영험과 이적이 있다." (勝詮法師領石徒衆 論議講演 今葛項寺也 其髑髏八十餘枚 至今爲綱司所傳 頗有靈異)는 전설이 전하고 있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이 탑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서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두 탑 모두 꼭대기의 머리장식만 없어졌을 뿐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잘 남아있다. 두 탑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위아래층 기단에 가운데기둥을 두 개씩 새겨 놓고 있어 당시의 석탑양식이 잘 담겨져 있는 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며, 서로 규모와 구조가 같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특히 가운데기둥은 두 개씩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고 있는 탑신부는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의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탑의 각 부분의 구성은 통일신라 초기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각 부의 균형잡힌 비례로 안정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서탑은 3층 지붕돌과 그 윗부분의 상륜부들이 사라지고 없다.

 

 

 

 

 

동탑의 기단에 통일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언적(言寂)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이두로 새겨져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이두문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특기할 만하다.

 

 

남매 사이였던 영묘사(靈妙寺)의 언적과 문황태후·경신태왕이 삼층석탑 2기를 건립하였다는 것은 이 절이 지방에 있었던 왕실의 원찰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화엄종에 속했던 이 절의 그 뒤 역사는 전래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