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북한 관련설을 극구 부인하던 대통령과 국방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어뢰공격설을 내세우며 태도를 표변한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사건 초기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것은 천안함이 어째서 정상적인 항로를 이탈하여 수심이 얕은 콩돌해수욕장 앞 1km 지점까지 접근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어째서 초기에 사고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십여일이 지나도록 우왕좌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희한한 일은 진실 규명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기는커녕 어째서 입을 틀어 막고 나섰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의혹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가운데 갑자기 북한 공격설을 기정사실화하며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 가며 국제문제화하는 과정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뜨악해 할 수밖에 없었다. 침몰 함정에 갇힌 병사들을 열흘이 지나도록 구조하지 못할 정도로 해류가 빠르고 시계 제로인 바다에 북한 잠수정이 그 먼 바다를 돌아 침투하여 어뢰로 단 한방에 목표물을 명중시켜 침몰시키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당시 의혹을 제기하는 가운데 우리 해군이 백령도에 100여 개나 되는 기뢰를 매설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뢰 폭발설이 유력하게 제기되었지만 당국과 조사단은 부인했다. 기뢰가 매설된 곳은 백령도 북서해안이지만 천안함이 침몰된 곳은 남쪽해안이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령도의 해류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급하게 흐른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뢰가 해류를 따라 흘러들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휘어진 배의 스크류는 좌초설의 유력한 증거가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좌초와 함께 기뢰 폭발에 의한 침몰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진실은 묻히고 어뢰공격설은 전쟁불사론으로 번지며 국민들을 전쟁 발발의 공포 속으로 몰아 넣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의심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날지도 모를 그레그 전 주한대사의 뉴욕타임즈에 기고문이 발표되었다. 기고문의 제목은 'Testing North Korean Waters'. 이를 바탕으로 한겨레신문은 "러시아 천안함 조사 결과 밝히면 MB정권에 큰 타격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두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해군 전문가로 구성된 러시아 조사단은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폭발에 앞서 배가 좌초한 흔적이 있으며 스크루에 엉킨 어망에 걸려 올라온 기뢰가 폭발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천안함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러시아의 조사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상상했던 것과 같은 결론을 러시아 조사단은 내리고 있다. 7월이었던가, 이미 한겨레신문은 러시아 조사 보고서 요약본을 입수하여 '스크루 해저면 접촉 손상 뒤 기뢰 건드려 폭발'하였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가 있는데 그레그 대사가 사실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이미 러시아 조사단은 북한 소행의 결정적 증거로 한국 정부가 제시한 '1번 어뢰'를 천안함 침몰의 '범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뢰공격설을 인정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를 밝힌 적이 있다. 한겨레신문(2010. 07. 08)에 보도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1번 어뢰'의 페인트와 부식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어뢰가 물속에 있던 기간에 문제가 있고 '1번 어뢰'의 출처도 의문스럽다는 것. 둘째는 천안함의 스크루가 휘는 등 손상된 사실에 주목하여 천안함이 함수와 함미로 분리되기 이전에 다른 원인으로 스크루가 먼저 훼손됐을 가능성으로, 스크루가 돌고 있는 상황에서 뻘에 닿아 휘어졌을 것이라는 점. 셋째는 합조단이 제시한 천안함 폭발 시점보다 더 이른 시각에 천안함이 조난 신호를 보낸 사실을 파악했다는 점...
이제 이명박 정권은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 놓아야 할 처지가 되었지만, 아마도 국민들로부터 정치적인 압박을 받지 않는 한 뭉기고 넘어갈 것같다. 아마도 이 정권이 물러선 다음에 엄청난 정치적 파장 속에 어떤 식으로든 진실규명이 이루어지게 되겠지... 그레그의 발언을 봐서는 어쩌면 어머어마하게 수치스런 진실이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다.
<PS>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한겨레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를 막았다."는 제목으로 그레그 대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그레그는 기뢰폭발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러시아 조사단의 결론은 잠정적인 것이이지만 러시아는 북한이 "어뢰 발사로 인해 발생한 버블제트에 의해 단번에 두 동강 나 침몰"할 수준의 "고성능 무기 제작 능력이 없고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이 공격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당시 북한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고, 북-미 대화를 추진중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의 평양 방문을 초청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천안함 침몰로 모든 상황을 스스로 뒤엎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레그는 결론으로 한국 정부가 "합조단 보고서는 기밀이다. 우리는 이를 말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가 됐던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연상시킨다."며 " 한국 정부는 합조단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누구나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자료 3, 4참조>
<자료1>
"러시아 천안함 조사 결과 밝히면 MB정권에 큰 타격될 것"
그레그 전 대사 <뉴욕타임스> 기고서 '러시아 친구' 발언 인용
"북 소행이라는 한국 주장에 모든 국제사회가 동의하는건 아냐"
러시아가 천안함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는 이유는 조사 결과를 밝히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는 1일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러시아 친구’를 인용해 이렇게 밝혔다. 그레그 전 대사는 또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를 통해 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적대적인 현재 관계에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의 반응 살피기'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가 천안함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러시아의 조사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해 천안함 침몰 관련 증거물을 검토한 러시아 정부가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믿을 만한 러시아 친구에게 물은 결과 이런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그런 질문을 한 배경에 대해 “천안함과 관련해 추가 대북제재 등 한국과 미국의 강경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한국의 주장에 모든 국제사회 성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꼽았다.
해군 전문가로 구성된 러시아 조사단은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폭발에 앞서 배가 좌초한 흔적이 있으며 스크루에 엉킨 어망에 걸려 올라온 기뢰가 폭발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7월27일 이런 내용의 러시아 조사단 보고서(국문 번역 요약본 러시아 “스크루 해저면 접촉 손상뒤 기뢰 건드려 폭발"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 한국과 미국의 강경한 대북제재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3월26일 한국의 천안함이 서해에서 발생한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폭발해 침몰했다”며 “한국 조사단이 북한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미국도 이에 동의하면서 대북 제재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고위 외교관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으로 통하는 모든 다리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출구전략 없는 강경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전통적인 치킨게임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훈련이나 경제적 제재, 비난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핵무장한 북한을 달갑게 여기진 않지만, 그보다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더욱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양에 대한 최근의 가중되는 압력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증거로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꼽았다.
그레그 전 대사는 이런 상황에서 곰즈 석방 문제로 방북했던 카터 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천안함 문제를 논의했는진 알 수 없지만, 그는 김일성 주석과 우호적이고 유용한 대화를 한 전직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다”며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 지도부로부터 천안함과 관련한 그들의 주장을 들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터 전 대통령이 곰즈 이상의 것을 북한에서 가져올 수 있다”며 그의 방북이 평양이 고려할 수 있는 대화의 형식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 2010.09.01 권오성 기자)
<자료2>
<그레그 전 주한대사 뉴욕타임즈 기고문 원문>
Testing North Korean Waters
By DONALD P. GREGG
Former President Jimmy Carter deserves great credit for traveling to Pyongyang and securing the release of a U.S. citizen, Aijalon Mahli Gomes, who had been sentenced to eight years in prison for illegally entering North Korea.
The Obama administration had gone out of its way to assert that Mr. Carter was on this mission as a private citizen and that he carried no message from the White House. The North Koreans also made clear to Mr. Carter before his departure that he would not be able to meet th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In fact, Mr. Kim left for China shortly after Mr. Carter’s arrival.
Still, the Carter visit may help the White House to soften the hostility of its stance toward Pyongyang, especially since the sinking of a South Korea naval ship last March.
Given the difficult agenda he inherited when he came into office, President Barack Obama did not give high priority to dealing with North Korea, whose leaders were seen as obscure and irascible. For example, a suggestion last year that the White House invite Kim Jong-un, Kim Jong-il’s youngest son and probable successor, to the United States was not seriously considered.
Instead, President Obama formed a strong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 whom he saw as the dynamic leader of a strong American ally, and was content to let Seoul set the pace in terms of dealing with Pyongyang.
Mr. Lee’s policies toward North Korea were considerably tougher than those of his two predecessors, Kim Dae-jung and Roh Moo-hyun, both of whom met with Kim Jong-il. Mr. Lee, by contrast, cut economic aid to the North and increased pressure for political concessions from Pyongyang.
Still, a year ago, it seemed possible that relations between Seoul and Pyongyang might improve. A North Korean delegation to the August 2009 funeral of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champion of the “sunshine policy” of engagement with North Korea, was warmly received by President Lee. Later in 2009, North Korea proposed a North-South summit meeting and also invited Kim Dae-jung’s widow to visit Pyongyang.
But while these conciliatory gestures by North Korea were still under consideration, on March 26 the South Korean Navy frigate Cheonan exploded and sank under mysterious circumstances in the Yellow Sea just off the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where North and South Korean naval vessels have often clashed.
A South Korean investigation concluded that the ship was sunk by a torpedo fired by a North Korean submarine. The United States concurred, and the sinking of the Cheonan came to be viewed in the United States as proof of North Korean infamy.
The United States imposed additional sanctions on the North and joined South Korea in staging military exercises of an unprecedented scope on sea and land.
One of South Korea’s leading diplomats put it to me this way: “The Lee government has burned all its bridges with North Korea, and has been undertaking hard-line policies with no exit strategy. The current North-South relationship resembles a classic game of chicken.”
One problem, however, is that not everybody agrees that the Cheonan was sunk by North Korea. Pyongyang has consistently denied responsibility, and both China and Russia opposed a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laying blame on North Korea.
In June, Russia sent a team of naval experts to look over the evidence upon which the South Korea based its accusations. Though the Russian report has not been made public, detailed reports in South Korean newspapers said the Russians concluded that the ship’s sinking was more likely due to a mine than to a torpedo. They also concluded that the ship had run aground prior to the explosion and apparently had become entangled in a fishnet, which could have dredged up a mine that then blew the ship up.
South Korea has not officially referred to the Russian conclusions. When I asked a well-placed Russian friend why the report has not been made public, he replied, “Because it would do much political damage to President Lee Myung-bak and would embarrass President Ob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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