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시대 건너 가기

[스크랩] 노무현과 이명박 (3) : 경제 실적, 외교 자세, 인생 역정, 국민을 대하는 태도

모산재 2009. 5. 31. 20:54


 

 

아세안+3 정상회의 및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일정을 바꿔 8일 오전(현지시간)

한국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는 이라크 아르빌을 전격적으로 방문한뒤 이동하는 지프차량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에르빌/ 탁기형 기자

 

 

누구에게 진심이 느껴지십니까?

 

 

국민에게는 한없이 약한 당신 ...

 

 

 

 

한미 FTA 쇠고기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코스피지수 2000돌파

 

 

 

 

 

 

 

이명박 대선공약

 

 

 

 

 

 

 

2008년 10월 10일 이명박 대통령 각하폐하 집권7개월 현재 코스피 반토막이다.

 

 

 

집권 1년후 ...

 

 

 

 

이럴려고 뻥삼이와 밀담한거니?

 

 

 

 

 

복지 예산안에서 한나라당 집권후 삭감한 내용들


1  사회적 일자리창출 지원금 ㅡㅡㅡㅡㅡㅡ325억원 삭감

2  장애아 무상보육 지원금 ㅡㅡㅡㅡㅡㅡㅡㅡ50억 삭감

3  보육시설 확충비용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104억원 삭감

4  청소년 안전시설 지원비 ㅡㅡㅡㅡㅡㅡㅡ8천만원 삭감

5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비   --------316억원 전액 삭감

6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489억원 삭감

7  장애인차량 지원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116억원 삭감

8  중증장애인 활동 보조예산 ------------150억원 삭감

9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금ㅡㅡㅡㅡㅡㅡㅡ568억원 삭감

10  학자금대출 신용보증기금 지원액ㅡㅡㅡ1천억원 삭감

11  지방국립대병원, 지방의료인프라 개선 예산

                                               ㅡㅡ510억원 삭감

12 의료급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4,623억원 삭감

                     .                    

                     .  

                     .       

그에 반해 강만수가 그토록 원하던..........1% 부자들 종부세 1조 감면

 

 

외환보유액 변동상황


 

 

 ( 마우스 오른쪽 클릭후에 다른 이름으로 사진 저장 해서 열어 보시면 크게 보입니다)

 

 

 

 

 

 

 

 

 

 

 

 
 
 
 

 
 

 
 
 
 
 
 
 
 
 
 
2008년 10월 23일 현재..코스피이어 코스닥도

사이드카 발동..10년만에 1,4000원대 진입..

 

 

기시원문 http://media.daum.net/economic/view.html?cateid=1037&newsid=20081023102806612&p=yonhap 

 

 

11년만에 "무역적자 전환"!! 

 

 기사원문 : http://www.asiaeconomy.co.kr/uhtml/read.jsp?idxno=353848§ion=S1N54§ion2=S2N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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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현역병 대통령

 

1968년 3월 입대 군번 51053545

원주의 1군 사령부 행정병을 거쳐 일등병때 원통에 있는 을지부대(12사단) GP로 배치

수은주가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고,

무장간첩이 침투하던 시절 험한 금봉산 철책을 맡던 부대

39개월만에 만기제대. 

 

이 후보는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기관지 확장 등 몇 가지 이유로 퇴출당했다. (콜록 콜록) 결국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왔다(콜록 콜록)"면서 "저는 감기 정도로 알았다. 감기약 정도를 먹었고 병원 갈 솔직한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증상은 없다. 흔적은 남아있지만 완쾌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콜록~  왈 왈~ 콜록 콜록~  ~  왈왈   ~  콜록~













  
 ▲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 ⓒ연합뉴스 
 
이명박 "현대건설 입사, 신체검사 없었다"

인 위원장은 "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다음 달에 대구의 섬유회사에 취직했고 그 다음달에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는데 두 회사에 들어가면서 신체 검사를 받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 후보는 "1963년 여름 방학 때 자원입대 했지만 65년에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 때 면제를 받게되는데 신체검사 받는 과정에 이상 있다고 정밀검사 받았다(콜록)"고 말했다.

이 후보는 "(현대건설 입사는) 65년 7월 이후이다. 학생운동 했다는 명분 때문에 직장 구할 수 없어서 가내공업 섬유회사 갔다가 한 두 달 있다가 들어갔다. (현대건설 입사 당시에) 신체검사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회사생활 지장은 없었냐"면서 "신입사원 연수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셔서 혼자만 남았다고 했는데 기관지 확장증을 앓았는데 밤새 술을 마셔도 되나"고 물어봤다.

 

땅 문제 의혹 답변 때는 이명박 기침 뚝?

이 후보는 "저가 처한 환경에서 8월 달이라도 오늘 저녁 우리 술 한잔 먹자, 낙오되면 물러서라 하는 그런 모임에서 내일 당장 쓰러져도 최선 다했고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죽음을 각오하시고 아주 그냥…"이라고 거들었고 이 후보는 "저는 군대 문제로 오해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 병을 제 자신이 노력했다. (현대) 입사해서는 정상적으로 일을 최선을 다했지만 기적적으로 이 병이 나섰다고 생각한다(콜록 콜록)"면서 "(우리 아들은) 일찍이 최전방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기관지 확장증 문제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에 대한 질문 과정에서 여러 차례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옥천 땅 문제 등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는 '또박또박' 답변해 나갔고 기침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할레루야~ 기관지 확장증, 폐결핵으로 군면제 받고 몇개월후 술울 밤새도록 퍼마시고 그 팔팔한 신입사원들, 직원들 다 이기고 일등까지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기관지 확장증, 폐결핵이 자연치유 되었습니다.  뭐라도 봉헌을 해야 할텐데...

  

 

 

아우~ 햇빛- .-  눈부셔....야 뭐야  이거...

 

 

 

노무현 대통령의 집무실 사진입니다.

T-50, XK-2, KDX-3, K-10, 1800t급 잠수함, 독도함, 크루즈미사일, 인공위성, 신궁등
각종 첨단 무기의 프라모델들이 보입니다. 우주개발 본격 추진, 햇빛정책도 철저한 안보태세 확립위에 가능한 것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대비하고 있었음을 대변해주는 사진.

 

 

반면 천만원이나 주고 샀으나 책받침으로 쓰고 있는 노트북 하나와 지구본 하나 떨렁 있는 이대통령의 집무실과 강한 대비를 이루네요.

 

 

 



                   아 햇빛- .-.... 난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이명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수 있음.  

 

 

고개를 그런데다 조아리는게 아니라

국민에게 조아려야지...국민을 섬겨야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춰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고...

 

 

 














 

부록

 


 

 

 

 

 

 

 

 

 

 

 

 

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군대시절...

 

노무현 공식 홈피에서 퍼온 글인데.... 느낌은 정말 <답다>라는 것이군요. 노무현.... 좋아하는 이유라면...정말 그냥 보통 서민같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마음좀 알아줄 수 있을만한 드문 정치인이니까... 그런 사람도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또 달라질까요... 아무도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그래도 최소한 아들 군대 빼돌리거나, 특혜입학으로 자식 대학들여보내거나(딸이 재수했다죠, 아마..),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성하지 않고, 이리저리 자리 옮기는 철새짓은 하지 않았으니..... 정말 보통사람도 지키기 어려운 올바름의 길을 걷지 않았나 싶습니다(이왕이면 내 가족은 군대면제 받았으면, 편한 부대에 배치 받았으면 하는건 소박하고 당연한 바램일텐데...)그래서 노무현을 바보라고 하는건가 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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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제가 노무현님을 알게된 사연.....

글쓴이                                                     정병석

글쓴 시각                                           2002-03-11 13:54:52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 평택에 살고 있는 32살에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제가 노무현이란 이름을 알게 되면서 그에 팬이 된 계기를 몇글자 적을까 합니다. 처음 이름 석자를 제 머릿속에 기역시킨것은 청문회를 보면서 였고 그 이미지를 확고히 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92년 말인가 쯤에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모부대에 근무를 하던 당시 저는 그때 소대 고참이었죠 먼저 저희 부대는 1년중 6개월이 야외 훈련인 무척이나 힘든부대였죠 그 만큼 서로를 아껴주는 부대였습니다. 늘 그렇듯 군대란곳이 한 무리가 제대하면 한무리가 입대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이죠

 

어느날 한 신참이 자대 배치를 받고 왔습니다. 그 땐 참 얼굴이 ... 생략 표현 안함 이름이 뭐야 물으니까 노건호라고 대답하더라구요 그때 부터 군대에서 질문하는 순서대로 어디학교 다녔어 부터...여러가지 질문을 했죠 그러던중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냐고 묻자 '노'자 '무'자 '현'자라고 답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그 노무현이냐구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데요 처음에 저는 믿지 않았죠 왜냐 그당시에 사회흐름이 돈없고 빽없는 사람이 군대간다고 하는 시절아닙니까? 근데 그의 하나뿐인 아들을 그것도 고생이 불보듯 뻔한 부대에 보냈으니 믿겠습니까? 제가 그랬죠 '야 뻥치지마' 그랬죠 그랬더니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거였습니다. '정병장님 맞죠 제 말이. 히히' 그래서 저는 그 후 제대 할때까지 그 건호라는 친구로 부터 노무현이란 분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죠

 

'군대 뭐하러 왔냐? 아버지가 빽으로 안빼 주대'고 물으니까 웃으며 그러대요 '야 남자는 군대 갔다와야되 그것도 힘든대로 가라고' 제 기억이 맞는 다면 자대 배치후 첫면회때도 노무현님은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 주소가 여의도 길래 제가 또 한질문 했죠 '야 너네 데게 부잔가 보다 아버지 돈 많이 버니?' 그랬더니 묘한 웃음을 살며시 짓더니 '우리요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모아둔 돈으로 살아요' '그럼 아버지는?' '그냥 즐겁게 사신다'고 만 말하대요 돈에는 큰 욕심이 없이 무료 법률상담등등으로  볼때.

 

또 한가지 참 그 건호라는 친구는 활달하고 게그맨만큼이나 웃겨서 저희 내무반엔 항상 웃음이 돌았죠. 제가 반농담삼아 '네 아버지도 웃기냐?' 했더니 반색하며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 더 해요'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제가 93년 7월 1일 제대할 때 까지 '형! 형!' 하며 따르며 제대할땐 자기 가족사진을 주며 뒷면에 주소까 지 빼곡히 써서 줬는 데... 세월에 묻혀서 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스렇네요 이글을 노건호 친구가 혹시 보면 여기로 메일 보내 주세요, 저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coppae@hanmail.net'

 

{{ 끝으로 제가 아는 노무현 후보는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내 가족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주며 진실로 서민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것이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나이 입니다 패배를 두려워 하지 않고 말입니다. 승리할 때 까지}} 후보님 항상 보이지 않게 지켜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힘내시고 꼭 소원성취하세요

그럼 안녕히....  

 

 

 

 

 

 

 

 

노 무현은 어린시절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후보시절 공개한 소풍갔던 장면이 거의 유일한 유년기 사진이죠. 이 사진은 부산상고 졸업후 곧바로 시골에 와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 찍은 청년 노무현입니다. 탱탱한 피부가 지금과는 다르죠.

산밑에 공부방을 짓고 청운을 꿈꾸던 시절이지만, 책값이 없어 울산의 막노동판에도 뛰어들던 우울한 시절입니다.




명 절때 집뒤 봉화산 자락에 있는 선대 묘소를 찾아

아들 건호씨의 총을 갖고 겨눠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건호씨는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로

 {부나 권력을 중시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가르침을 맘속에 새기고 있더군요.

 



1965 년 여름 부산상고 3학년 때 `8인방'이라고 불린 단짝 친구들과 해운대 백사장에 엎드렸네요. 돈이 없어 대학 진학보다 취업반을 선택했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방황과 갈등이 많았다고 기억하는 시절입니다. 담배를 처음 입에 물어본 것도 고1때 학교옆 코스모스밭이었다고 하네요.

친 구들은 노무현을 의리로 기억합니다.

 어렵게 집에서 올라온 향토장학금을 사진 속에 있는

한 어려웠던 친구의 동생 입학금으로 주고 교실바닥에서 자면서 살기도 했습니다.

뒤 쪽으로 40년전의 해운대 전경을 본 것으로도 본전은 뽑는 사진이죠.

 

 

 

 

까마귀도 먹을게 없다던 봉화마을 빈농의 아들,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게 없었던 노무현

책값이 없어 울산에서 막노동판에 뛰어들며 힘들게 고생....

사법고시...판사 출신... 90%를 넘는 승률에 잘나가는 조세 변호사...

부산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던 시절...

앞으론 기름진 토양 위를 밟으며  호위호식 편하게 살아갈수 있었는데

돈은 고사하고 제 몸 제 가족 부지하기 힘든 인권변호사의 길에 뛰어들어 

탄압받고 착취당하는 약자들 편에 서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올곧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기위해...

치열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기위해... 그렇게...

국민 곁으로 다가갔다.

 

 


1987 년 6월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던 때죠.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이 노변입니다. 노변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합니다. 권여사는 먼훗날 {최루탄 터지는 곳마다 아들 딸 손을 잡고 얼굴한번 보려고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투사가 돼 버린 것}이라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중>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노변호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등으로 피해를 입으며...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던 때입니다.

 

경찰서장이 그 독종에 혀를 내두른 노무현입니다.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전경들과 혼자 대적해 길바닥에서 버텼기 때문이죠.

  

"최루탄이 터져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경찰들과 혼자 대치하던 독종 노무현"


노무현의 힘은 이런 우직함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우직함 바보같은 미련함



아래 사진은 최루탄 파면이 튀어 피를 흘리는 장면입니다.
노무현의 애틋한 투쟁이 먼훗날 대선후보 경선때 광주에서 사랑을 받은 한 배경도 되겠죠.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1981년 9월 부산의 ‘부림’사건 이었다. 이는 전두환 신군부 초기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자, 5공화국 최대의 용공조작사건이었다. 노무현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행방불명된 학생들의 어머니의 모습, 고문으로 인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았고 외면하지 못했다. 이후 시국사건노동 관련 사건 등 민주/인권 변론에 치중하게 되었다.
 
광주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최루탄 파편이 튀어 피를 흘리면서도 당당해하던 그의 모습을....

 







1987 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노동법의 대표적 악소조항인 `3자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무현 변호사. 33이라는 숫자가 선명한 수의와 반성문을 거부한 눈빛이 인상적이네요.

 

세상은 이토록 그에게 참기 힘든 굴욕과 고통을 주었지만

그는 그 어떤 강압적인 힘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그른 것을 옳다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언제나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그들 외롭지 않게 했습니다. 

 

 

 


 

 

 

 

군사독재시대라면 모를까...정치인들이 특히 두려워하고 맞서길 피하는 조선일보.

 거기에 대항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지난 2003년 초경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알고지내던 보수언론 C일보의 직원(이하 K)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K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대해 침통한 표정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C일보 내의 기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C일보가 전폭 지지한 후보가 탈락해 아쉽겠네요?"
"노무현 정권 임기는 5년이면 끝나요. 우리는 5년만 버티면 되는 셈이지요."

"그런가요?"
"C일보는 영원하지만 노무현은 길어야 5년이면 끝장이지요."

K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C일보가 노무현 대통령을 못마땅해 하는지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갓 당선된 대통령인데 벌써부터 그토록 모질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C일보는 그 동안 누렸던 기득권을 상실할까 고민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C일보는 노무현 임기 내내 물어뜯고 깎아내리고 발목을 잡았습니다.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싸움에는 대한민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목숨이 걸려있다. 어느 네티즌의 표현을 빌면, 우리는 '바스타유 감옥'을 부쉈지만 '앙시앵 레짐'을 해체하지는 못했다. 국민은 6월 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문을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강고한 동맹을 맺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사상적 ․ 정치적 지배에서 사회를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까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노무현 전쟁은 바로 이 '앙시앵 레짐'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7쪽)

 

 

 

 

노무현이 91년 부산에서 재선 도전했을 때 주간조선에서 호화 요트라고 크게 보도를 한 문제의 요트입니다.

 

위와 같은 호화 요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해운대 옆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가면 널리고 널린 그런 요트.

동호회사람들과 손수제작한것으로 원가가 120만원이였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사진도 없던 보도...당근 거짓말 내용..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알려진 노무현은 사실은 엄청난 부자이고 국회의원 해먹기 위해

 

 인권 변호사인척 한다고, 엄청난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던... 자칭 할말은 한다는 언론

 

에서 버젓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우종창 기자인지 사기꾼인지가 조작했고 그 인간

 

은 조선일보에서 잘 나가죠...이 기사를 상대 후보인 허삼수가 마구마구 뿌려댔고 노무

 

현은 결국 떨어졌고....노무현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결국 조선일보가 항

 

복을 한 문제의 호화요트입니다..

 

조선일보는 그럼 그 때 한번 여론을 조작하는 범죄행위를 했고 오늘날은 언론의 역할

 

을 다 한다고 생각합니까? 할 말은 하는 정직한 신문일까요?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닙니다... 친일 한나라당 선전지이며 수구세력의 콘트럴 타워입니다.
 
조선일보와 그 아류 중앙과 동아...이름하여 조중동은 대한민국의 악의 축이요,주적일 따름입니다.
 
서프라이즈 펌(www.seoprise.com)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저는 요트놀이가 취미였던 노 대통령이 혹시 무늬만 서민이지

 

그 속은 '사치스런 귀족'이 아닌가, '야누스적 정치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 마우스 오른쪽 클릭▶ 다른 이름으로 사진 저장 해서 열어 보면 선명히 보입니다.)

 

 

 

 

 

 

 

댓글수준은 그렇다 쳐도 기사 작성 수준도 역시 조선일보답다는 생각이 든다.

 유서 원문은 "아주 작은 비석하나만 세워주길"이라고 써 있지만 조선 기사 중 헤드라인을 보면 "마을 구석에 비석하나 세워주길"이라고 뽑아 기사를 뿌려댄 것도 언론인의 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과 '비석하나'는 정말 그 의미가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월간조선 대표를 지냈던 조갑제가 노대통령 사망 후에 왜 사람들이 자살을 서거로 표현하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을 보면 기본 예를 모르거나 영혼을 파는 집단임을 이해하게 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때 전남대 학생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글을 써 여론을 몰아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던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한건 없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조선일보는 지속적으로 검찰 보다 빠른 정보(?)로 비판의 칼날을 겨눴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4월 말경 조선일보는 칼럼을 통해 '노무현씨를 버리자'라는 막말까지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아니고 '노무현 씨' '노 씨'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전직의 명예'가 무너진 마당에 사법절차에나 매달리겠다니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뿐이다. 노씨가 배운 '그 잘난 법(法)'은 이제 독(毒)이 되어 그나마 남은 자존심마저 마비시키고 있는 꼴이다."라고 인간적 모욕까지 퍼부었습니다. 참으로 야비하고 무서운 조선일보입니다.

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서거했습니다. 조일보가 바라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임기 5년 동안도 모자라 퇴임 후에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비열한 시대에 인간 노무현은 그렇게 목숨을 던져 자존심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6월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구세력 선봉에 <조선일보>가 서 있다고" 했으며, 2001년 12월 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는 "조선일보는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친일경력과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했던 과거가 있는 신문입니다. 기득권층의 편에 서 있는 신문이고,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적대적인 신문입니다. 그들이 왜곡보도를 하는 한 국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신문과 어떻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약속은 대통령 임기 동안 지켰다.

 

하지만 이제 그가 갔다. 더 이상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다. 유시민은 마지막 글에서 "노무현이 낙선한다고 해도 <조선일보>가 웃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했다. 그 이유로 "노무현이 벌였던 <조선일보>와 일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 국민통합과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고 훼손하는 앙시앵 레짐을 백일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라"했다.

 

유시민 말과 바람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앙시엥 레짐을 완전히 해체하지 못했지만 <조선일보> 실체가 무엇인지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죽기 전까지 그토록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고 없는 지금과 앞으로 <조선일보>는 노무현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노무현을 기다리고 있을까? <조선일보>와 일전을 벌여 앙시엥 레짐의 완전한 해체를 실행에 옮길 사람은 누군인가? 궁금하다. 

 



노무현은 후보시절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먼저 거실에서 명상과 요가를 했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요가 예찬론자이다. 권여사는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엮어 남편이 직접 개발안 이상한 동작들도 있다}고 전한다.

 

 

노무현은 어려서 지게질도 하고 산도 잘탔던 강골 체질이다. 중학교때 복싱부에 들어갔는데 {힘도 세고 몸도 빠르다}며 선생이 집에 와서 {복싱시키자}고 한 적도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큰 형이 {쌈질밖에 더 하느냐}며 반대했다고 해요.

 

 

 

 

 


국방일보에 특별기고한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의 내무반' 기념 글↓↓


 

일왕을 천황이라 칭하는 누구와 비교해보라

 

노무현님 ...이렇게 C일보에 머리를 조아리고 타협했다면 편했을 것이다
 

    정치 권력 보다도 무소불위의 막강한 특권과 권세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우리는 조선일보의 오만함에 대해 감시하고 바로잡는 일에 나서야 할 때 입니다


 

저 뒤에 이명박 후임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 막판 비정치인 후보 필요성에 한나라당이 급히 끌어와 시장이된 인물.

이명박이 시장하면서 벌인 일들로 AIG 국제금융센터 비리, 전문가들 반대에도 별대책 없이 숭례문 100년만에 완전개방,  뉴타운,  버스노선 개편 혼란,  전기끊기면 물도 흐르지않는 3천 800억 인공 어항 청계천... 하수구 역류, 수개월간 땜질, 관리비용 수십배 증가, 물고기 폐사, 펌프돌려 끌어쓰는 한강 원수 비용 매년 150억 않내고 버티다 수자원 공사에 소송 패소 ... 여기저기 문제가 터져나와도 저질러놓은 이명박에 대해선 입도 뻥끗 못했던...수습하느라 고역을 겪었던 인물.  이명박이 대선을 꿈꾸면서 치적 쌓기에 열을 올린결과 속출한 부작용에 '설거지' 하느라 정신없던 오세훈. 

수구보수 한나라당의 제2제 3의 이명박이 되려는가...방씨 향해 실실 ... 오세훈 조심하자.

 

 

 

노무현은 기득권층의 야합인 3당 합당에 당당하게 반대를 했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님 어록 중- 

 

 

장애 아동들은 실내로 초대해 무릎까지 내주시며 사진촬영에 응하시고 

급조된 초라한 술상조차 감격해 하시며 받아드시고...

 

 

 
 

 

 

 

감사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대통령이라는게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ㅠㅠ

 

이젠 그런 다정한 모습을 더이상은 볼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나마 대신... 

스스로 권위를 벗어던지고 자신을 낮추며...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와

국민과 소통하려고 부단히도 애쓰시던 모습이 떠올려 집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만들고자 했던 그 세상이 무었이었는지... 마음속에 되새겨보며...

우리는 다시한번 자각하고 치열하게 실천해야 할것임을 다짐해 봅니다.

 

출처 : 숲으로 걸어가다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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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임의로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