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파헤쳐지는 꽃섬에서

모산재 2009. 3. 3. 22:08

 

파헤쳐지는 꽃섬에서

 

 

 

봄방학이 끝나가는 2월 26일

꽃들의 천국이라는 서해의 작은 섬을 찾는다.

 

아무래도 때가 이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 지금 찾지 않으면

또 내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른 새벽 무작정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그리고 꽃섬에서 감격스럽게 만난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외에도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앙증스런 꽃봉오리를 밀어올리고 있는 노루귀, 꿩의바람꽃, 붉은대극 등도 덤으로 만날 수 있었다.

 

 

두 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열 명 남짓한 승객뿐인 선실 전기장판 위에 누워 모자라는 잠을 벌충하는 동안

송도에서 인천공항까지 바다를 건너는 대교와 영흥도를 건너는 거대한 현수교도 지나고...

 

 

 

 

 

 

마침내 꽃섬에 닿았다.

 

 

 

 

 

 

 

미리 예약한 민박집에서 

푸짐한 주꾸미탕(섬이어선지 많이 짜다)에다 싱그러운 사생이나물로 차린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선 설레는 마음으로 뒷산을 오른다.

 

"나물 캐러 갔다가 복수초 몇 송이 핀 것은 보았지만

바람꽃은 아직 일러서 피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도...

 

 

과연, 골짜기에서 만나는 복수초 꽃등 행렬,

강렬한 햇살 속에서도 꽃잎은 어둠 속 등불보다 환하다.  

 

이곳에서는 복수초를 '유정꽃'이라고 한다고

나중 떠나는 날 선착장에서 어느 아주머니에게 들었는데,

봄햇살처럼 환하게 핀 꽃에서 이름 그대로 따사로운 정감을 절로 느끼게 된다.

 

 

 

 

 

 

 

 

복수초 사는 곳에 따라 피어서 연복초라 이름하였다더니

과연 마른 잎 사이로 파릇파릇 자라난 풀을 살펴보니 연복초이다.

 

 

 

 

 

 

그리고 아직 몇 송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홍노루귀 애기노루귀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짧은 꽃대에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있다.

 

이곳 섬사람들은 노루귀를 접시꽃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1원짜리 동전만큼 작은 이 꽃을 어째서 접시에다 비유했을꼬...

 

 

 

 

 

때가 많이 이르다 싶게도

여기저기 꿩의바람꽃이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주 활짝 핀 모습으로 탐방객을 맞이한다.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산 등성이를 넘어 가는 길,

 

아까 민박집 아주머니가

꽃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닦았다고 하더니

불도저로 밀어버린 듯 등성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뚫린 길이 눈에 거슬린다.

 

 

괴불주머니는 아닌 듯한데 이게 무얼까 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 주민들의 최고 봄나물인 사생이나물(개사상자)이다.

 

(※ 사생이나물은 사상자의 딴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 꽃 필 때 이 섬에 다시 와서 확인해 보니 사상자가 아니고 전호였다.)

 

 

 

 

 

 

고개를 넘어 마을 뒤 언덕길에서 만난 여인네들은

꽃을 보러 왔느냐면서 아직 꽃이 피기에는 빠르다고 한다.

 

무슨 나물 캐러 가느냐 물었더니 사생이나물이라고 하는데

비로소 개사상자를 떠올리고 이 섬 유난히 많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시 바람꽃 군락지를 향하여 가는 길에 만난 마을의 아저씨는

얼마 전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꽃보러 오는 사람들 편하게

군락지까지 길을 훤하게 잘 닦아 놓았다고 자랑하신다.

 

 

마을 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앞으로는 육도, 멀리 울처럼 두른 입파도, 

그리고 오른쪽 끝으로는 국화도가 살짝 보인다.

 

 

 

 

 

 

다시 숲을 향하여 넓힌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흙길이 거슬리는데

분홍노루귀를 만나 한동안 눈맞춤한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니

아주 생흙이 심하게 파헤친 길이 쭉 이어지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잘려나간 언덕은 이제 싹이 나기 시작한 풀꽃들이

알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그리고 길바닥에는 수를 헤아릴 길조차 없는 많은 풀꽃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시들거나 얼어 죽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녀석들도 흙더미에 깔려서 그냥 몰살 당하는 운명일 것이다.

 

 

 

 

 

 

한동안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뒹구는 녀석들을 주워 모아서

근처 숲에 묻어 주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바람꽃 군락지 근처에 가서 본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꽃보러 온 사람들 접근을 쉽게 하겠다고

우거진 덤불과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낸 자리는 마당처럼 휑하다. 

 

 

 

 

 

 

수십 년은 자랐을 성싶은 우람한 다래덩굴은 톱날에 깨끗이 절단되었다.

 

 

 

 

 

 

몇 년 전부터 몰려드는 꽃탐방객들이 섬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꽃섬의 자연과 꽃섬의 귀한 생명들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나무들이 잘려 나간 텅빈 공터 입구에서

한두 송이 피어 있는 변산바람꽃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르다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저 멀리 교목들이 늘어선 숲언덕 퇴색한 낙엽 더미 위로 펼쳐진 하얀 점들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서지 않는가.

 

아직은 피지 않았을 것이라는 섬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바쁘게 다가간 언덕 위에 변산바람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직은 피기 시작한 단계로 보이지만

낙엽을 비집고 솟아오른 바람꽃과 복수초 군락 속에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

 

 

 

 

 

 

 

한 포기라도  다칠세라

돌과 바위, 나무 등걸을 찾아 밟으며 조심스레 이동한다.

 

이런 곳에 사람들이

수십명씩 무더기로 몰려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기만 하다.

 

좋은 모델을 향해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들어 밟아대면

주변 땅은 그냥 마당이 되고 말 것인데...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좀 많은가.

 

 

한동안 변산바람꽃의 자태와 향기에 취해 노닐다가

섬 전체를 둘러 보기로 하고 다시 다른 등성이를 넘어선다.

 

 

갈퀴덩굴과 닮았는데

떡잎처럼 둥근 잎모양이 어딘지 낯설어 보이는 풀이 있어 담아 본다.

 

 

 

 

 

 

누가 파헤쳐 놓은 것인지

(나중 보니 방목된 염소떼들이 돌아다니던데 이들의 소행인지...)

뿌리를 드러낸 풀이 생소한 모습이다.

 

무엇일까...

 

 

 

 

  

 

등성이를 넘어서 북서면 비탈을 내려서 가는데

동행하던 도사께서 영지버섯 찾았다며 내게 건넨다.

 

 

 

 

 

환한게 핀 복수초를 담고 있는데

숲속 무덤이 있는 풀밭 옆에서 한떼의 염소를 만난다.

 

 

 

 

 

 

 

담을 때는 꿩의바람꽃인가 했는데

이건 현호색 아닌가.

 

 

 

 

 

 

크지도 않은 섬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북서면 산허리를 이렇게 무참히 잘라내 버렸는지

잘라낸 흙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저 멀리 보이는 섬들이 뭘까

지도를 펴 놓고 대조해 보니

 

왼쪽의 앞으로 보이는 두 섬은 공경도,

오른쪽의 섬은 승봉도, 그 왼쪽으로 나란히 소이작도와 대이작도,

맨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섬은 덕적도가 아닐까 싶다.

 

 

 

 

 

 

풀꽃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산비탈을 탐사하다가

붉은대극(이곳 사람들은 '메들뜨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단다.)을 발견하고서 환호한다.

 

 

 

 

 

 

 

게다가 햇살을 포근히 받은 덤불 주변의 붉은대극은 벌써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대극의 뿌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의 대극은 유난히 굵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산초나무나 초피나무는 아닌 듯한 가시 달린 나무, 무엇일까...

알고보니 꾸지뽕나무다. 원래 가시가 있는 나무이지만 가시가 유난히 많다. 관목상으로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해가 바다 위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하루가 거의 기울어 가는 시간,

 

다시 산을 되넘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민박집 아주머니가 차려준 꼬들꼬들한 아구탕에 저녁을 먹는다.

 

숲을 밀고 길을 낸 것에 대한 실망을 토로하자

시 지원금 천만 원을 받아 주민들이 동원되어 길을 닦았다고 한다.

 

 

이튿날,

노루귀 꽃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민박집 아주머니께 정보를 얻어서 다시 고개를 넘어간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노루귀는

손가락보다 짧은 꽃대에 꽃봉오리를 겨우 맺은 모습일뿐

그렇게 해서 만난 가장 잘 핀 노루귀가 바로 이 녀석이다.

 

 

 

 

 

무슨 나방의 집인지

낙엽 위에 떨어져 있는 녀석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담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변산바람꽃 군락이 있던 곳으로 이동하여

아침 햇살에 살랑이는 꽃바람의 감흥을 즐긴다.

 

 

 

 

 

 

 

섬을 떠나기 위해 선착장에서 기다리는 시간,

마을의 청년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건넨다.

 

3월이면 꽃을 보러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몰려드는데

꽃을 마구 밟고 다니거나 자신만 찍고 예쁜 꽃들을 잘라버리기도 하는 사람도 많고

또 아무데나 용변을 보는 사람들도 있어 이를 치우느라 애를 먹는다고 하소연이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관리비로 천 원씩을 받는데

이를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섬사람들이 몹시 기분 안 좋다면서

그런 사람들은 이곳을 찾지 얺았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쏟아 놓으신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말에 따르면

꽃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꽃을 찾는 사람들이 이 작은 섬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섬사람들은 너도나도 민박집을 지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꽃 탐사객의 편의를 위해 숲을 밀어 길을 닦고 덤불을 쳐낸다.

 

자연의 품 속에서 평화로운 생존을 이어오던 꽃섬의 생명들은

밀려드는 꽃탐사객들의 등쌀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우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