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

나도밤나무 Meliosma myriantha, 나도밤나무 전설

모산재 2007. 6. 12. 21:25

 

너도밤나무는 오직 울릉도 성인봉에만 자생하는 나무다. 조그마한 세모꼴의 도토리를 달고 있어서 참나무와 같은 집안임을 알 수 있고 밤나무와는 먼 친척뻘로 생각할 수 있겠다. 게다가 잎이 밤나무보다 약간 작고 더 통통하게 생겼지만 전체적으로 밤나무와 매우 닮았다. 그러니 울릉도 사람들이 '너도밤나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나도밤나무는 비슷한 이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족보를 따지면 밤나무와는 혈통이 전혀 다르다. 콩알만한 새빨간 열매를 보면 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만 잎 모양이 밤나무와 닮아 보이니 그것으로 '나도밤나무'라고 부른 모양이다. 나도밤나무는 남해안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너도밤나무건 나도밤나무건 한정된 자생지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귀한 나무이다. 

 

 

 


홍릉수목원




 

  

 

 

 

  

  

 


 



나도밤나무 열매

 

 

 


● 나도밤나무  Meliosma myriantha / 무환자나무목 나도밤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

 

해안 또는 산골짜기에서 자라며 높이가 10m에 달한다. 줄기는 곧게 올라가며 나무 껍질은 갈색이고 작은 구멍인 피목이 많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 모양이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은 둥글거나 쐐기 모양이다. 잎은 길이가 10∼25cm, 폭이 4∼8cm이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잔 톱니가 규칙적으로 있으며 양면에 털이 있고 뒷면의 털은 검은빛을 띤 갈색이다. 잎자루는 길이가 1∼2cm이다.

 

꽃은 6월에 흰색으로 피고 가지 끝에 길이와 폭이 각각 15∼25cm인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꽃잎 3개는 둥글고 나머지 2∼3개는 줄 모양이다. 수술은 3개인데 2∼3개가 완전하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핵과로 둥글며 지름이 7mm 정도이고 9월에 붉게 익는다.

 


 너도밤나무 => http://blog.daum.net/kheenn/13280762

 

 

 





나도밤나무 전설

 

강릉에서 유명한 이율곡 선생님의 아버지, 이원수는 일찍이 강릉에서 장가를 가서 십 년 동안 부인과 헤어졌지.


자기는 글 공부를 할테니 부인은 그림 공부를 하라고 했는데 대관령을 넘어가려 하니 오죽헌에서 다홍치마를 입고 왔다갔다 하는 부인이 생각나서 다시 내려왔으나 약속을 어긴 것이 창피해서 오죽헌 대밭에 숨었다가 결국 못참고 부인방에 찾아가 열어달라고 두드리니 부인이 "사내 대장부는 약속을 지켜야 된다"하면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주었어.


"이걸 가지고 서울에 가서 공부하시오."했는데 이 말인즉슨 이 다음에 당신이 또 내려오면 내 목을 끊어서 주겠다는 말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울며 다시 서울로 올라가 부인의 달비를 보면서 십 년 동안 공부를 하고 난 후, 지금의 대화땅을 보며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를 넘어 오는데 해가 져서 갈 길이 없어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되어 어느 여자의 집을 찾았지.

 

하룻밤을 청하니 자정쯤 되어서 그 여자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 여자 왈 "제가 정선 사람인데 작년에 상부하고 지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이 자리에 와서 보니 당신이 그리워지니 하룻밤만 나와 동침을 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하였으나 이원수는 이것을 거절하고 그 길로 나와 생각컨데 그 여자가 어떤 나쁜 짓을 하지나 않을가 걱정이 되서 새벽녘에 거기에 갔지.

 

"내가 사내 대장부로서 그런 아낙네의 간청하나 못들어주면 무슨 면목인가."하여 다시 찾아가니 이번에는 그 여자가 거절을 하더래. 거절하면서 그 여자가 말하기를 "당신을 보니 명인을 얻을 쾌인데 그것이 당신의 아내한테 태 했습니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당신은 물러가시오. 나기는 새벽 인시인데 호환해 갈 팔자다. 호랭이한테 물려갈 팔자다" 이 말이야.

 

그 다음에 "과거도 안보고 죽는 사람은 천명으로 살려야 된다" 하니, "그러니까 어떻게 살려야 하냐"고 묻자 "다섯 살 먹은 모월 모일에 중이 하나 오거든 밤나무 천그루를 베주어라" 했단 말이지.

 

공교롭게 다섯 살 먹던 모월 모일이 막 되니까 머슴들이 앞문 뒷문 단속을 막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키는 팔척 장승으로 중이 하나 오더니 "이 집에 시주 좀 하시오. 저는 오대산 주지로 금강산 유점사에서 오는 길이온데, 이 집에 아기가 하나 있다하니 아기를 좀 보여주시오." 하니 그때 이원수는 주역을 낭독하고 있었는데 "나도 지금 도를 닦는 중인데 무슨 수작이냐?"하며 호통을 치니

 

"당신이 무슨 도를 닦느냐?"며 밤나무를 가서 베어, 이것을 세니 구백 구십 아홉 낭그야. 한 남자는 소를 매서 죽였다 이거야. 그러니까 "천명을 거역했다"며 대사가 소리를 내 지르니까 난데없는 남자 하나가 와서 "나도 밤나무"하는 기라.

 

그래 천 그루를 세웠다. 시간이 다 되니까 냅다 뒹글어서 호랭이가 되어 달아나니 이 원수가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 아들을 구했기에 이율곡이 밤나무 천 그루를 또 심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자료출처 :  江凌市史 上編 1996.10.31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