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 2

예산 대흥동헌과 임성아문, '의 좋은 형제' 효제비

대흥초등학교 단풍나무 그늘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다 대흥동헌(大興東軒)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금은 예산군 소속의 작은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대흥은 일제강점기에 예산군으로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독립된 고을이었다. 조선 후기까지 작은 고을 현이었던 대흥은 숙종 때 군으로 승격되었을 정도... 좀 떨어진 교촌리에는 예산보다 100년 앞선 1405년에 문을 연 대흥향교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읍성과 객사·옥사 등 관아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동헌의 북쪽에는 대흥면사무소가 자리잡고 있고, 그 앞에는 대흥을 상징하는 '의 좋은 형제상'이 세워져 있다. 의 좋은 형제상 슬로시티의 상징인 주차장 마당의 '달팽이미술관' '달팽이 미술관'은 대흥면 보건소를 신축한 뒤 남아 있던 옛..

홍성 홍주아문과 안회정, 홍주읍성과 조양문

동료들과 남도 여행 중 보원사지 해미읍성을 거쳐 홍성에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 홍성의 옛 읍성인 홍주읍성과 옛 관아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홍주아문(洪州衙門) 안에는 홍주군청 건물이 들어서 있어 아쉬움이 크다. 관아인 동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문은 관아의 정문이란 뜻일 터. 홍주목사가 집무를 하던 관아인 안회당(安懷堂)의 외삼문이다.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이 성의 동문인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같이 세운 것으로 규모는 5칸이다. 홍주아문 안에는 10칸 반 규모인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행랑을 이어서 지어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 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사건을 진압시키기 위해 진주한 일본군이 홍성군청을 병영으로 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