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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시대 건너 가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 그리고 박근혜와 김무성

by 모산재 2015. 11. 26.

 

김영삼 전 대통령 님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한 사람의 행적은 나중의 것이 뇌리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삼당 야합으로 호남을 고립시킴으로써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 구도를 급속히 호남 대 비호남의 가학적 지역주의 정치 구도로 변질시킨 중심적 인물이다. 군부세력과 손을 잡음으로써 영남의 민주세력은 정체성을 잃고 지역주의에 함몰되면서 영남은 오늘날 거대 보수세력의 근거지로 고착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말 외환관리 실패로 침몰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는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사태에까지 이른다. 그 여파로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도입되며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양산되는 기형적 경제체제가 형성된다. 재벌의 금고에는 수십 조 원의 돈이 잠자고 있는데, 국민의 90%는 빚에 신음하며 고용 불안에 떨며 사는 나라... 

  

오늘날 우리의 후진적인 지역주의 정치구도와 고용불안에 떠는 비정규직 위주의 경제체제 형성에 가장 크게 책임을 져야 하는 분이 바로 고 김영삼 대통령이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애도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의 과보다는 앞선 시기의 공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그가 일생을 걸고 이루었던 공적의 가치가 크게 위협받는 현실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아버지 박정희의 철권통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박 대통령의 행보에 김영삼 대통령이 일생을 걸었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신념으로 내세웠던 의회주의 철학, 그리고 역사 바로세우기 등의 행적이 뚜렷이 대비되어 떠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당당히 밝힌 김영삼과 '건국절'을 앞세워 항일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박근혜,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의회를 존중했던 김영삼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집권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라며 내쫓고 의회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박근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일제잔재 청산에 앞장 선 김영삼과 일제지배가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국정교과서 강행하는 박근혜, 국민 여론에 귀기울이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일이 많았던 김영삼과 '혼이 비정상'이라며 대다수 국민 여론을 적대시하는 독선적인 박근혜...

 

 

박 대통령은 고 김영삼 대통령이 크게 책임져야 할 지역주의 정치구도와 비정규직 경제체제에 기대어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지만, 고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공적인 민주주의와 의회주의, 역사바로세우기 등에 역주행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칭하며 상주 노릇하고 있지만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그토록 힘겹게 쌓았던 공을 무너뜨리고 있는 박 대통령의 고분고분한 조력자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아들'이라 한다면 아비를 욕보이는 후레자식일 뿐이다.

 

 

아직도 1995년 12월 3일 새벽 전두환, 노태우 두 군사쿠데타의 주역을 전격적으로 압송하던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에 앞선 7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한부환 당시 서울지검 1차장은 "피의자들이 정권창출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사법 심사가 배제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합니다."라 발표하자, 이를 보고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분노를 표한다.

 

 

그렇게 발표한 검사를 내가 혼을 내줬습니다. 뭐 독일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래요. 어디서 지식을 알아도 말이야, 그런 거 못된 거 배워 가지고 말이야. 써먹고 그런다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쿠데타는 쿠데타죠."라고 말하는 YS, 소급입법은 안 된다는 검사들의 논리를 상식의 뚝심으로 깨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상황을 뒤집고 민주주의를 부정한 범죄행위인 쿠데타에 죄를 물은 것이다. 그리고 5공비리 청문회와 5.18 청문회 등으로 이어지며 역사 바로세우기가 진행된다.

 

하룻밤에 전격적으로 별 50개를 떨어뜨리며 군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한 것도 YS의 큰 공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DJ도 크게 감탄하였다 한다. YS의 강단과 뚝심만큼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도자로서의 특별한 자질이었다.

 

 

 

● YS 역사관 뒤집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CBS 스마트뉴스팀 | 2015-11-25

 

 

 

● "YS의 정치적 아들"이라 자칭하는 김무성, 서청원에 대해 "정치적인 치매"라 비판하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CBS 스마트뉴스팀 | 2015-11-26

 

 

 

 

 

 

 

 

 

<참고 자료 1>

'YS 재조명'에 더 도드라지는 '불통 박근혜'

 

'교과서 국정화' 강행, YS의 '역사 바로 세우기'와 뚜렷한 대비

조문 정국에 부각된 '통합 정신' 아랑곳없고 '대결·분열 정치'

 

 

경향신문 2015.11.26.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를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YS 공과(功過)에 대한 ‘재조명’ 작업 귀착점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과 역사 바로 세우기, 통합의 마지막 메시지, 이념·계파를 뛰어넘는 인사 스타일 등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리더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면서다. 김 전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할수록 박 대통령의 과(過)가 도드라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들은 고인의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가장 많이 입에 올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발전과 자유·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도 주목받고 있다. 친일잔재 청산,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성격 규정,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 처벌 등 일련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재임 중 최고 치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는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가 훼손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후퇴’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을 역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사 스타일도 재조명되고 있다. 고인은 다른 사람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반대 의견도 수용하는 유연성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야당 대표와 10차례 단독회담을 갖기도 했고, 공약 파기나 대형 참사 등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만사’라는 신조 아래 폭넓게 인재를 발탁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아예 ‘불통 정부’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반대 의견을 설득하고 대화하기보다 국정과제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가 하면, 반대 의견을 아예 ‘비애국’으로 몰아치는 편 가르기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사의 경우도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코드’나 충성심을 중시하고, 특정 지역 편향이 도드라지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4일 TBS라디오에서 “박 대통령께서도 (김 전 대통령처럼) 좀 그렇게 개방된 자세라고 할까, 마음을 열어놓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훨씬 국정을 수행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소통 없는 독단’ 리더십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동구조 개편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비난하면서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위선’ ‘립서비스’ 등 날선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국회를 향해 대결정치를 선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김’ 이후 우리 사회가 그들의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정치 리더십은 후퇴해온 단면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정 난맥상, 대통령이 국민 분열에 앞장서는 모습 등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측면에 국민들이 시달리다보니 개혁·소통 등 YS 리더십이 재조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2>

 

왜 다시 YS인가.. 민주주의 위기 시대에 다시 보는 김영삼

 

정치(Politics), 국민(People), 리더십(Leadership)없는 'PPL' 실종 시대에 귀감

 

 

한국일보 2015.11.26.

 

 

 

198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 17일 부산 수영만에서 열린 '군정 종식 및 후보단일화 촉구 대회'에서 환호하는 1백만 시민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가 생전에 지키려 애썼던 민주주의의 의미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은 의회를 불신하며, 여야는 타협을 모르는 반목만 되풀이하는 동안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리는 민주주의의 삼중 위기를 반증하는 현상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Politics)도, 국민(People)도, 리더십(Leadership)도 없는 ‘PㆍPㆍL 실종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갈증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과 ‘배신’으로 요약된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것은 위선”이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의회주의자로 평가되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YS 역시 임기 4년차인 1996년 12월 26일 여당을 동원한 새벽 노동법 날치기로 국회를 무시하는 과오를 남겼지만 소통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야당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다음달인 97년 1월 21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했다. 당시 YS는 노동법 재개정을 약속했고, 두 달 뒤인 3월 국회는 여야가 마련한 노동법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다시 의회의 ‘타협의 정치’에 맡긴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내용뿐 아니라 시점에서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여의도를 하대하고 절연하다시피 하는 건 대결 구도만 키우는 일”이라며 “막강한 권한을 가질수록 고개를 숙여 비박계도 만나 설득하고 야당에도 호소할 줄 알아야 정치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YS가 재조명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여론 중시 정치다.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는 YS의 유행어에는 그의 정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도동계로 YS의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YS는 참모들에게 늘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강조했고 그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통령 임기 중 YS는 여론을 가장 중시했다. 결정했던 일도 민심이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틀었다. 초대 법무부 장관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을 임명했다가 딸의 이중국적, 대학특례입학 논란이 불거져 열흘 만에 경질했고, 임명직이었던 김상철 서울시장 역시 자녀의 외국국적, 그린벨트 무단 형질변경 문제가 터지자 엿새 만에 경질성 사퇴를 시켰다.

 

때문에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YS는 “대국민 사과를 가장 많이 한 대통령”으로도 거론된다. 임기 첫해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해 쌀개방을 않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해 낙동강 수질오염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장학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부정축재사건, 한보사태, 차남 현철씨 비리사건 등 때문에 줄줄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과정 교수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의 힘은 국민에서 나왔고 그렇기에 YS는 국민을 가장 우선에 뒀다”며 “여론이 아니면 인사도 정책도 되돌리고 필요하다면 지체 없이 대국민사과를 한 게 그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자와 정치인이 많은 시대에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YS가 지닌 통 큰 리더십 역시 리더십 부재의 정치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광웅 명예교수는 “모래알처럼 분열된 정치권과 사회를 하나로 빚어낼 살신성인의 지도자에 목말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닮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권위주의 리더십의 현 정부가 젊은 시절 YS가 타파하려 싸웠던 세력과 흡사한 데서 오는 향수 효과, 민주화 투쟁 등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현재 여의도의 주축이 된 후배 정치인 등이 조명되면서 ‘YS 신드롬’이 생기는 듯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