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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시대 건너 가기

전국역사학대회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문

by 모산재 2015. 10. 31.

 

2015년 10월 30일, 국내 최대 규모 역사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와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전국 역사학 관련 28개 학회는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를 열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는 <정화 행정예고 즉시철회> <정부 여당의 역사학계 모독행위 중단> <모든 역사학자들의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 등 3가지 요구사항이 담겼다. 

 

 

 

주최측인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이번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이 아니라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적 진실 대 권력적 탐욕 간의 대결임을 직시하고 있다."며 "정부ㆍ여당이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국민은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닫고 있다."고 밝혔다. 이진모 한남대 사학과 교수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분단과 통일 등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었던 독일도 다원주의적 역사교육을 추구해 왔다."고 국정화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송상헌 공주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분쟁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권의 개입"이라며 "정부가 학계 연구자들 다수가 타당하고 의미 있다고 합의한 통념을 부정한다면 역사교육의 적절한 기준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국정화 논리를 비판했다. 

 

전국역사학대회는 매년 한 차례 개최되는 역사학계 최대의 학술행사로 올해 대회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을 주제로 30일, 31일 열린다. 

 

 

 

 

 

역사의 이름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엄중히 촉구하며

학자적 양심과 소신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 불참을 다짐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더욱 큰 메아리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다수 역사학 전공 교수와 교사들은 국정화가 강행될 경우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온 사회가 저희 의견에 공감하여 지지와 성원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자와 교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펼치는 초유의 사태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계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일치된 목소리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제는 수시로 바뀌는 정권에 의해 역사 해석과 역사교육이 독점돼 역사교육 자체가 끊임없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까닭에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과 충돌하는 비민주적 제도이자 유신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나 민주화와 함께 극복됐던 독재의 산물로서, 주체적·비판적 사고력과 종합적 판단력을 가진 창의적 민주시민의 교육에 부적합하고, 세계 보편적 기준이나 추세에도 한참 뒤떨어진 후진적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과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시대착오적 반민주적 폭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행정 예고하는 독선적 조치를 단행하고 군사작전을 벌이듯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국정화 논리와 그 근거들이 하나같이 허무맹랑하거나 설득력이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종북 좌편향론의 허구성입니다. 정부, 여당은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서술, 수정됐고 현 정부의 검정을 통과해 사용 중인 역사교과서조차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가당착일 뿐 아니라 한번이라도 현행 검정 교과서를 읽어봤다면 결코 내뱉을 수 없는 악선전입니다.

 

둘째, 자학사관론의 위험성입니다. 정부, 여당은 역사학계가 자학사관에 입각한 패배주의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교육의 사명이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성찰하여 현재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안목과 역량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음을 알지 못한 채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듯 과거를 과장, 미화하여 헛된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있는 것으로 오인한 소치입니다. 게다가 정부, 여당의 자학사관론은 과거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극우파의 논법과 어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셋째, 한반도 특수성론의 한계입니다. 정부, 여당은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 사정을 감안해 국정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국정제를 통해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북한식 역사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역사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몰각한 결과입니다. 과거를 냉철하게 반성하고 다양성을 추구한 서독의 역사교육이 독일 통일의 힘이 됐던 역사적 사례까지 고려하면 한반도 특수성론의 한계는 더욱 분명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논거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정부, 여당 내에서 낡아빠진 색깔론에 의존한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선동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명백한 근거를 대지도 못하면서 역사학계의 90퍼센트, 검정 교과서 집필자의 80퍼센트가 좌편향됐다는 식으로 역사학계 전체를 좌파로 매도하는 극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당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역사학계와 국민들을 향해 역사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하는 섬뜩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치시대 독일이나 군국주의시대 일본에서나 있을 법한 광기어린 선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학계와 국민은 정부, 여당이 설득력 없는 논거를 내세워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강행하고 철지난 매카시즘 공세를 강화할수록 역사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정치권력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상식 대 몰상식, 이성 대 광기, 다양성 대 획일성, 역사의 진실 대 권력의 탐욕,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싸움임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역사학계는 사관(史官) 위에는 하늘이 있다고 하면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대항해 직필(直筆)을 실천하고자 했던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하고 후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학자적 양심과 소신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단호히 반대해왔습니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2014년에 이미 정부의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었거니와 그간 역사학계가 곳곳에서 줄기차게 표명했던 단호한 의지를 모아 다시 한 번 학계 전체의 확고한 의사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정부는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1. 정부, 여당은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역사학계를 모독하는 몰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1. 이 땅의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학자적 양심과 역사적 소명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에 불참할 것을 다짐한다.

  

 

2015년 10월 30일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단체 및 역사학 관련 단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