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지리산의 가을 (5) / 정영엉겅퀴, 지리산꼬리풀, 송이풀, 지리강활, 은분취, 탑꽃, 꽃향유

모산재 2009. 11. 2. 23:11

  

제석봉 너른 구릉을 따라 바쁘게 내려가고 있는데, 앞에서 느릿느릿 내려가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허~ 오늘 날씨가 좋으니 남해 바다가 다 보이네." 하고 주고받으며 물끄러미 먼 곳을 응시하고 있길래 내 눈길도 그곳을 좇아 간다.

 

과연!

 

첩첩으로 펼쳐지며 멀어지는 산줄기들 너머로 오전의 환한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바다가 아스라이 보인다. 남해도가 아닐까 싶은 커다란 섬과 점점이 흩어진 작은 섬들의 풍경...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로 앞 사람사는 흔적이 있는 골짜기가 눈에 잡히는데, 저곳이 거림골인지...  

 

 

 

아까 오를 때에는 보지 못했던 정영엉겅퀴가 꽃이 거의 져버린 모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난다. 잎의 톱니가 결각상으로 고르지 못한 것이 흰고려엉겅퀴와는 달라 보인다.

 

 

 

정영엉겅퀴와 흰고려엉겅퀴는 구별이 쉽지 않은데, 이 둘을 하나로 보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모양이다.

흔히 정영엉겅퀴는 잎 뒷면에 털이 있는 것으로, 총포가 7줄인 흰고려엉겅퀴에 대해 6줄인 것으로 구별한다고 하지만 이걸 세는 일이 그리 쉬울까. 꽃색이 노란빛이 돌면 고려엉겅퀴 붉은빛이 돌면 흰고려엉겅퀴라고도 하고, 두상화가 3-4개씩 모여 달리면 정영엉겅퀴 1개씩 달리면 흰고려엉겅퀴라고도 하지만, 잎으로 구별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나 싶다.

큰산꼬리풀이라고도 부르는 지리산꼬리풀을 발견한다. 잎자루가 없고 잎이 대형이며 키가 1m 정도로 높이 자라는 이 꼬리풀은 우리 나라 특산종이다. 이명이 큰산꼬리풀이지만 표준명으로 쓰는 큰산꼬리풀과는 다른 종이다.

꽃이 피는 계절에 찾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대신 열매를 담아본다.

 

 

 

 

본격적인 하산길 행차를 위해 물을 담으러 가는 길에서 아직도 꽃을 달고 있는 송이풀을 만난다. 줄기가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으니 내리는 따스한 햇살에 늦게까지 꽃을 피우게 된 모양이다.

 

 

 

지리산에서 어째 지리강활을 만나지 못할까 하고 생각하며 등산로를 접어드는데, "무슨 말씀이시오!" 하고 항의라도 하듯 지리강활이 나타나지 않느냐. 그냥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길래 기름나물인가 했는데, 세잎나기한 둥근 작은잎들과 잎자루의 붉은 무늬가 지리강활 신분증을 대신하고 있다.

 

 

 

 

송이풀 씨방도 담아 본다.

 

 

 

등산로 옆 언덕에 요렇게 자라는 어린풀은 영아자 아닐가 싶다.

 

 

 

명자순 열매가 많이 달려 있는 나무를 만나 한참을 논다. 잎과 짧은 잎자루에도 잔털이 흩어져 있어 신원 증명하고 있다.

 

 

 

잠시 단풍놀이도 하였다.

 

 

 

 

씨앗을 거의 떨구고 그네를 타는 나래회나무 열매

 

 

 

 

두메고들빼기는 꽃이 거의 시들어 버린 모습인데 이 한 녀석만 인사를 할 뿐이다. 

 

 

 

모싯대도 씨방만 남아 단풍든 모습이다.

 

 

 

숲속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되는데, 쳐다보면 모두 겨울나기 준비하느라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다.

 

 

 

함박꽃나무 열매, 보석처럼 영롱한 씨앗의 모습에 끌려 다시 한번 담아 본다.

 

 

 

하산할수록 싱싱한 잎과 꽃을 보이는 은분취

 

 

 

하산길의 짧은 휴식, 단풍이 내려서고 있는 장터목 주변 풍경

 

 

 

이건 어떤 꽃을 피우는 녀석인지... 과남풀이지 싶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하고...

 

 

 

일엽초 종류들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산죽밭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오다 등산로 언덕에서 특이한 녀석들을 만난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마도 마의 살눈(珠芽)이 아닌가 싶은데, 땅에 떨어져 가을비에 뿌리를 내리고 붉은 눈이 싹트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손톱만한 이 버섯들은 또 무엇인지...

 

 

 

아름드리 거제수나무를 올려다보며 감탄하다 아른다운 수피를 담아 본다. 잿빛 수피 속에 은은한 홍갈색 빛이 묘한 매력 아닌가...

 

 

 

씨방만 남은 이 풀을 탑꽃이라 보면 괜찮을까.

 

 

 

 

그리고 이것은 모시물통이가 맞는지...

 

 

 

 

접시 모양의 호골무꽃 씨방에는 구부러진 털이 나 있다. 도감에서는 "원추형의 돌기가 밀생한다."고 하는데 그건 씨앗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백무동에 도착할 무렵, 볕 바른 낮은 골짜기에는 가을꽃 꽃향유가 아주 한창이다. 언제보아도 산뜻하고 향기롭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꽃!

 

 

 

이렇게 환한 꽃을 눈맞춤하는 것으로 1박 2일의 지리산 산행은 끝이 났다. 감기 속 악조건의 산행이었지만 환한 햇살 속에서 마감하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하고 몸도 한결 개운해진 듯하다.

 

 

출발 30분 전,

지난 번 먹었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바쁘게 먹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