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초여름의 지리산 풀꽃나무 산책 (4) 박새, 숙은처녀치마, 참꽃나무, 왜우산풀, 죽대, 산마늘, 종덩굴, 쥐오줌풀

모산재 2009. 7. 13. 23:01

 

초여름의 지리산 풀꽃나무 산책 (4)  박새, 숙은처녀치마, 참꽃나무, 왜우산풀, 죽대, 쥐오줌풀

2009. 06. 28. 일요일

 

 

 

 

곤한 잠에 들었나 싶었는데 머리맡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잠들고 난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야간 산행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동안 짐을 챙겨 넣으며 비닐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신경이 거슬려 잠이 달아나고 만다. 시계를 보니 한밤중인 한 시를 겨우 넘겼을 뿐이다. 그러구러 뒤척대다 보니 두세 시 쯤해서 배낭을 꾸리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칼잠을 자야 했던 잠자리는 휑하게 비기 시작한다. 새벽 3시까지는 야간 산행이 금지되었다지만 원칙일 뿐이다.

 

 

네 시쯤해서 산장 바깥으로 나서니 늦가을 아침처럼 서늘한 기운이 살갗을 파고드는데 이미 동쪽 하늘은 희끄무레 밝아온다. 100% 비가 온다."던 산장지기님의 장담과 달리 비는 오지 않았고, 대신 밤사이 급격히 내려간 기온 탓에 이슬이 비처럼 흥건히 내렸다. 사람들 대부분이 떠나고 난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간 빵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다.

 

 

해는 보이지 않은데 멀리 산의 능선과 구름바다에는 부드러운 햇살이 번지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저 안정된 구름을 보라. 비가 내리기는커녕 날씨가 아주 화창하리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리!

 

 

 

 

 

10여 년 전만 하여도 거대한 야영지였던 풀밭에는 박새가 환하게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지를 벋은 호장근 한 그루가 외로이 섰다.

 

 

 

 

 

이곳에 자생한다는 호오리새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는데, 올려 놓은 이미지가 희미하여 뭘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국립수목원의 자료조차 낡고 뚜렷하지도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변에는 아래 이미지의 풀들이 무리지어 자라는데 안내판의 이미지와는 다른 듯하고….

 

 

 

 

그리고 등산로를 따라서 바로 아래의 풀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서 있는데, 첫눈에 '웬 오리새가 세석에까지 왔나?" 생각했던 것이다. '호오리'라는 이름의 어감이 참 신선해서 설마 이 오리새와 관련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집에 와서 자료 검색을 해 보아도 몇 되지 않은 검색 이미지들은 저마다 달라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문득 '호오리'가 '胡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 아닌가. 오리새에다 접두어 '호'가 붙은 말! 과연 그런 걸까...?

 

 

풀밭에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터리풀이 서 있길래 필시 이것이 지리터리풀일 것이라 생각하고 한방 찍어 둔다.

 

 

 

 

 

촛대봉을 향해 쉬엄쉬엄 오르며 돌아보니 세석산장과 영신봉은 어느듯 햇살 속에 잠겼다.

 

 

 

 

씨앗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숙은처녀치마를 만난다. 처녀치마에 비해 잎이 좁고 짧은 점이 뚜렷한데, 이름과 달리 열매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곁에는 아직 꽃을 피워 보지 않은 듯한 처녀치마 어린풀들이 풀잎 치마를 곱게 펼치고 앉았다.

 

 

 

 

 

흰참꽃나무의 꽃을 만나서 뛸 듯이 기뻐한다.  마침 꽃들이 갓 피어난 모습이어서 하얀 꽃잎에 연지 같은 붉은 점들이 찍혀 있는 모습이 열 다섯 부끄러워 하는 소녀를 만난 듯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미역줄나무는 꽃대가 막 올라온 듯 좁쌀 같은 꽃망울이 성숙해 터지려면 좀 기다려야 할 듯 보인다.

 

 

 

 

눈개승마. 키도 낮고 잎도 작아서 노루오줌일까 하는 생각도 드니 내공의 얕음에 절로 혀를 차게 된다.

 

 

 

 

 

둥굴레로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치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잎사귀를 따라 양팔을 벌린 듯이 꽃이 달려 있지 않은가. 죽대이다.

 

 

 

 

누룩치, 또는 누리대로 불리는 왜우산풀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아서 아쉽다.

 

 

 

 

 

오르던 길 잠시 멈추고 다시 돌아서서 세석산장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새벽에 보았던 운해를 줌인하여 잡아본다.

 

 

 

 

촛대봉 아래 세석의 습지에는 동의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물론 꽃이 진 지는 오래이고 씨방이 성숙하여 더러는 씨앗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습지에 가득한 이 사초는 비늘사초로 봐야 하나, 아니면 흰사초나 삿갓사초 종류로 봐야 하나…. 늘 봐도 헷갈리는 사초 식구들.

 

 

 

 

 

울릉도 산지에 가득한 명이, 산마늘이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침 꽃이 피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한 개체만 보일 뿐이다.

 

 

 

 

바위에 붙어 자라고 있는 지의류가 신기해서 담아 본다.

 

 

 

 

종덩굴을 만난다. 톱니가 있는 잎모양을 보이 그냥 종덩굴은 아니고 세잎종덩굴이다.

 

 

 

 

풀밭 풍경을 잡아보았다.

 

 

 

 

촛대봉에 가까워질수록 쥐오줌풀 꽃이 더욱 싱싱한 모습이다.

 

 

 

 

 

파란 하늘, 환한 햇살에 서늘한 바람을 바람을 맞고 선 촛대봉이 눈 앞에 성큼 다가선다. 세석산장에서 빤히 보이는 촛대봉까지 풀꽃나무들을 하나하나 눈맞춤하며 오르다보니 1시간 반이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