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사생이나물 내음 가득한 꽃섬, 풍도의 봄

모산재 2009. 3. 5. 21:15

 

사생이나물 내음 가득한 꽃섬, 풍도의 봄

2009. 02. 26~27

 

 

 

 

 

이른봄,

변산바람꽃, 노루귀, 붉은대극 등

꽃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주는 서해의 바다 위 작은 섬 꽃섬...

그러나 정작 꽃섬에 사는 사람들이 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육지 사람들이 '행운초'를 복수초라고 부르는 것도

'접시꽃'을 노루귀라고 부르는 것도

'메들뜨기'를 대극이라고 부르는 것도

겨우 3년 전에야 알았다.

 

 

얼마나 평화로웠던 섬인가,

몇 년 전 육지사람들이 꽃을 보러 밀려들기 시작하기 전에는...

 

 

 

동네 뒤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본 마을 뒤편에는

삿갓배미를 겨우 면한 몇 뙈기 밭들이 푸르게 짙어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섬 전체가 산지와 다름 없어

어업에 기대어 생존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던 꽃섬 사람들.

 

갯벌조차 별로 없는 섬의 자원만으로 살기 힘들어

겨울 한철 가축과 노인들만 남기고 솥단지와 이불을 배에 싣고

무인도 도리도에 건너가 굴과 바지락을 캐며 살았다고 한다.

 

변산바람꽃이 많이 피어

꽃에 호사취미를 가진 육지 사람들에게는 바람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온 산에 흐드러진 꽃을 빼고선 무엇 하나 넉넉한 것은 없는데,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아 '단풍 풍(楓)'자인 풍도이던 섬이

풍년 풍(豊)자인 풍도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은 지독히 가난한 섬의 역설인 셈이다.

 

 

 

마을 뒤 산을 오르다보면 곳곳에서 두릅나무밭을 만난다.

 

봄 한철 식탁에 오른 두릅순이

얼마되지 않은 밭의 푸성귀를 벌충해 주면서

겨우내 비린 음식에 물린 섬사람들의 미각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리라.

 

 

 

 

 

 

 

아직도 풀빛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마을 뒤 언덕에서

봄나물 캐러 가는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채소를 가꿀 농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섬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물 캐러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봄, 꽃섬에서 나물을 캔다는 것은

사생이나물(개사상자)을 캐러간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만큼 사생이나물은 온 섬에 지천으로 자란다.

 

 

길가 언덕에서 손가락보다 더 통통하게 새로 돋아난 뿌리잎이 싹뚝 잘려나간 흔적을 볼 수 있다. 

 

 

 

 

 

아주머니들이 알려준 사생이나물이 바로 이것인데,

통통한 숙근성 뿌리를 가진 것으로 보아 전호로 보인다. 

 

 

 

 

 

 

꽃 보러 왔느냐고 아는 체하는 이 아저씨도

바로 아래에 보이는 마른 덤불 사이로 들어가서 사생이나물을 캐신다.

 

 

 

 

 

늦은 오후 마을길을 지나며

뜯어온 사생이나물을 손질하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

 

 

 

 

 

 

 

민박집에서 점심 반찬으로 나왔던 사생이나물은

독특한 향이 강하면서도 상큼한 그런 맛이었다.

 

 

주말에 몰려오는 낚시꾼이나

봄한철 밀려드는 꽃탐사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섬마을은 대부분 욕실을 갖춘 현대적인 집들로 탈바꿈한 모습인데,

예전의 섬사람들이 살았음직한 섬집을 발견하고선 발길을 멈춘다.

 

 

초가 지붕 대신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시멘트를 바른 담벼락이긴 하지만

제대로 못 자란 신이대도 좁은 담벼락에 낙서처럼 얽혀 있는 담쟁이도

리어카 한 대 들어갈 수 없이 작은 대문도 모두 정겹기만 하다.

 

 

 

 

 

 

사생이나물 싱그러운 향기 실컷 맡았으니

이제는 짭쪼름한 바다 향기도 제대로 맡아보시라는 듯

갯바람에 꼬들꼬들 간간이 마른 생선이 빛깔도 곱게 내걸린 풍경을 만난다.

 

 

 

 

 

 

어둠이 깃드는 바닷가 넓은 마당에는

풍어를 꿈꾸며 그물을 짜고 있는 남정네들의 손길이 바쁘다.

 

 

 

 

 

이 섬에서 꽃게잡이 출어도 많이 한다는데

어두워오는 마을에 그물 손질에 바쁜 사람 붙잡고 물어볼 용기는 없고

그물의 모양을 봐서는 꽃게잡이 그물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작은 어선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반월형의 만에 마을은 포근히 안겨 있다.

 

 

 

맞은 편 가운데 초록색 지붕이 대남초등학교인데

운동장이 내가 살던 시골집 마당만 하다고 생각하면서 웃는다.

 

 

 

 

 

가까이 가서 본 초등학교 입구 모습이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말로는

전교생은 두 명뿐인데  모두 외지에서 들어온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 작은 학교에서 두 꼬마를 가르칠 선생님이 갑자기 부러워진다.

 

풍금소리에 봉숭아 꽃잎이 한장 두장 열리는 학교가 아니라

피아노소리에 노루귀, 바람꽃 꽃잎이 열리는 학교!

4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에

작긴 하지만 이렇게 학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꽃섬 풍도는 축복받은 넉넉한 섬이다.

 

산 속에 흐드러지게 핀 수천 수만 송이의

복수초보다도 변산바람꽃보다도 노루귀보다도

두 송이의 사람꽃이 더 환하게 섬을 밝히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10여 개 마을 수백 호가 사는 내 고향 마을에선

초등학교가 사라진 지가 20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 다른 글 / 풍도의 절경 붉배 이야기 => http://blog.daum.net/kheenn/15854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