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하루만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진주로 내려갈 때만 해도 일요일인 오늘은 꼭 내 시간을 가지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게 뜻처럼 되지 않는다.
병원 면회 시간에 찾아온 이종들을 만나고,
함께 저녁을 먹다가 결국은 밤을 진주에서 보내기로 한다.
자고난 아침 면회 시간에 맞춰 다시 아버지를 찾는다.
더 이상 수척할 수 없을 지경의 앙상한 몸에
기도삽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까지 비치는 모습...
점심 때쯤 이종들과도 헤어져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다.
춘분이 얼마 남지 않아 해가 많이 길어졌다.
찌푸둥한 몸과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을 찾아 나섰다.
맑은 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다.
산등성이로 올라서는데 낮달이 나뭇가지 끝에 걸렸다.
멀리서 보는 묏등 언덕은 여전히 퇴색한 겨울빛 그대로인데
보물 찾기하듯 살펴보다 보니 볕바라기 좋은 언덕배기에
드문드문 양지꽃이 샛노란 불길을 피워 올리고 있다.
제비꽃이나 조개나물이 꽃피지 않았을까 싶어 두리번거려 보지만
꽃이든 잎이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누렇게 퇴색한 풀밭에서 푸른 빛은 거의 찾을 길 없는데
개쑥부쟁이가 앙증스런 털복숭이 잎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저렇게 어린 쑥이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고
무릇이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잔 모양의 수상지의류가 눈길을 끌어 담아 보았다.
할미꽃이 있던 자리들을 더듬다보니
이제 겨우 고개를 내밀고 꽃의 형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푸른 것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는 황량한 풍경에
조팝나무 파릇한 새싹 내민 모습이 싱그럽기만하다.
꿩의밥도 꽤 보일 만한 때가 되었다 싶은데
이 한 녀석만 만나고는 더는 찾지 못한다.
가을 폐쇄화를 달았던 대궁 자리를 따라
솜나물 꽃 소식을 탐문해보니
아직은 대부분 좁쌀 같은 봉오리의 흔적만 있는데,
그 중 이 녀석만 제법 꽃봉오리의 형태를 갖추었다.
수영은 아직은 공기가 차갑다고 느끼는지
어린 잎이 붉게 달아올랐다.
해가 서산 너머로 숨을 즈음에 산 등성이로 넘어서는데
노란 개암나무 수꽃이 주렁주렁 달린 풍경이 눈에 띈다.
설마 수꽃만 달렸을라고, 싶어
샅샅이 살피다가 붉은 꽃술을 내밀고 있는 암꽃도 발견한다.
해가 다 지고 어둠조차 깃들때쯤에야
점점이 노란 꽃등을 밝히고 있는 생강나무를 발견한다.
에구, 생강나무꽃이 핀 줄 알았다면 이곳으로 먼저 달려왔으련만...
깃드는 어둠이 원망스럽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느린 셔터에 정성으로 담아본다.
메마른 등성이에서 산마늘 잎이 이들이들 잘도 자랐다.
아까 보았던 낯달이 어두운 숲 위에 높이 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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