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풀꽃, 이슬, 그리고 햇살

모산재 2007. 11. 5. 22:26

풀꽃, 이슬, 그리고 햇살

2007. 10. 27.  제천 명암리

 

 

자고 일어난 아침 사과 농장의 뒷산 언덕을 오른다.

 

산으로 이어지는 묏등 언덕 풀섶은 이슬에 흠뻑 젖었다.

손을 내밀어 풀섶을 쓰다듬어 본다.

주르르 시리게 적셔지는 쾌감!

 

아, 이렇게 흠뻑 젖어 보는 것이 그 얼마만인지...

 

열 다섯 살, 까마득한 소년 시절 발목 적시며

서늘한 이슬에 젖어 연하디 연하게 자라난 풀,

잘 들게 숫돌에 간 낫으로 꼴보다는 이슬을 함뿍 베었던 그 때... 

 

특별하달 것 없는 풀밭이 넓게 펼쳐진 묏등,

찬 이슬에 젖은 풀꽃들이 오들오들 떨고 섰다.

그래, 오늘은 햇살 기다리는 녀석들의 표정을 담아보자꾸나...

 

 

아침 이슬에 하얀 솜털이 흠뻑 젖은 민들레 씨앗

 

 

 

멀리 산 중턱까지는 햇살이 퍼졌지만,

아직 그늘 속인 언덕의 왕고들빼기는 이슬을 한껏 머금었다.

  

  

 

 

드디어 가파르게 솟아 있는 앞산 능선에서 햇살이 비쳐들고...

 

 

 

따스한 햇살을 받고 왕고들빼기 싸늘한 몸이 기지개켠다.

  

 

 

꽃잎을 흠뻑 적신 시린 이슬에 떨고 있던 개쑥부쟁이도 햇살을 받으며 생기를 얻는다.

 

 

 

 

꽃 진 뒤의 모습이 흰 머리를 산발한 모습이라 '백두옹'이라고도 불리우는 할미꽃,

머리카락을 투명한 수정 구슬들로 장식한 듯... 

 

  

 

 

희미한 꽃잎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풀꽃,

따스한 햇살을 받은 망초 꽃잎에 보석처럼 맺힌 이슬이 드러났다.

 

 

 

 

가지 끝에 달린 작은 망초꽃이 이슬을 맞아 이처럼 아름답게 피었다.

 

 

 

 

  

 

꽃 진 자리, 꽃보다 아름다운 망초 꽃받침에도

얼음 알갱이처럼 시리게 매달린 이슬 방울

 

 

 

 

명아주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과 햇살

 

 

 

  

 

 

이 아침,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은

알알이 서러움이라기보다 멀어져 간 그리움이다.

 

세상을 향해 쏟았던 열정이 식은 자리,

철 없는 아이의 마음이 되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저 이슬, 

그 서늘함과 투명함에 무작정 빠져들고 싶다.

 

 

 

김용택이 '이슬'이라는 시도 썼군...

 

서리 낀 아침
들길을 걷는다.
너에게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발 밑에서
부서지는 언 지푸라기들의 비명소리,
흰 서리 가루들이 내 발등에서 녹는다.
사랑이란 이렇게 이슬이
서리가 되는 아픔이다.
서리가 이슬이 되는
그리움이다.

너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