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와 씨앗

파란 하늘에 붉은 산수유 열매

모산재 2006. 12. 16. 22:45

 

영하의 찬 바람이 파고드는 날 찾은 폐사지 고달사, 그 한켠에 빨간 산수유 열매가 시린 가지에 매달려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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