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시대 건너 가기

[스크랩] 헌재 정당해산 결론 도출의 문제점 언론 보도

모산재 2014. 12. 24. 12:08

 

헌재, 이대로 둘 것인가

 

한겨레 사설 2014.12.22

 

헌법재판소는 자신을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 혹은 ‘국가권력의 자의적 권력남용을 통제한다’는 데서 헌재의 존재 의의를 찾기도 한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헌재에 대한 기대는 다른 어느 국가기구보다 높았다. 지금 헌재는 과연 그런가.

 

헌정사상 최초인 19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은 헌재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위상을 스스로 허문 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무엇보다 헌재가 ‘헌법’ 대신 ‘북한’을 판단의 근거와 기준으로 삼아, 헌법과 헌법정신의 유보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헌재가 밝힌 대로, 정당해산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분명할 때만,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돼야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국민주권주의,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복수정당 제도 등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내용으로 한다. 헌재도 인정하는 대로다. 그런데 헌재는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당장 얼마나 심각한 해악의 위험을 끼쳤는지 논증하는 대신, 시종 ‘북한 추종성’을 정당해산의 사유로 내세웠다. 북한과 연계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비슷한 주장을 폈으니 북한 추종의 ‘숨은 목적’이 있다고 추정했고, 일부의 북한 동조 발언이 있었으니 위험성이 드러났다는 논리 비약을 예사로 구사했다. 이석기 그룹 등의 형사처벌로는 모자라 정당해산까지 굳이 해야 하는지를 따지는 데서도, 헌재는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을 이유로 내세웠다. 그런 “비상상황”에서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가 없어도 국회의원직 박탈까지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 헌재의 주장이었다.

 

 

존재 부정한 ‘2류 헌재의 3류 판결’

 

북한만 내세우면 헌법까지 유보되고 포기돼도 좋다는 주장이야말로 유신이나 5공 등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헌재는 일부의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가 정당 전체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라는 극심한 논리적 비약을 함으로써 2014년의 대한민국을 긴급조치 시대의 비정상 국가로 퇴행시켰다. 그 결과가 법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한 국민주권주의의 무력화, ‘숨은 목적’ 따위를 따지는 자의적 사상검증으로 인한 표현과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의 심각한 침해, 관용과 다원성을 외면한 강제적 정당해산으로 인한 복수정당제의 퇴색이다. 그 하나하나가 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소이니, 헌재야말로 민주체제를 위태롭게 한 셈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종식으로 탄생한 헌재가 그랬으니 스스로 존립근거를 허문 것이기도 하다.

 

헌재의 다수의견이 법률 전문가의 논리라기엔 부끄러울 정도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 결정문은 정당해산의 엄정한 법리와 입헌민주주의의 원칙을 선언하면서도 정작 이를 사건에 적용하는 데서는 그런 원칙을 내팽개쳤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당해산의 법원칙과 규범을 의도적으로 적용하지 않았고,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예단과 추론을 남발했다. 일부의 행위를 당 전체의 활동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명백한 국제규범이고 사법적 판단의 기본인데도 헌재는 눈을 질끈 감고 침소봉대를 강행했다. 그런 결정이 결국 정치권력의 이해와 입맛에 맞는 것이었으니, 헌재가 국가권력의 자의적 권력남용을 통제하기는커녕 되레 권력에 힘을 빌려주며 영합한 게 아니고 뭔가.

  

 

기울어진 운동장의 편파 심판

 

헌재가 아무런 권한도, 근거도 없이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것도 심각한 월권이다. 헌법과 현행법으로 국회의원직 상실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제명이나 선거법 위반에 대한 당선·선거무효 판결로만 가능하다. 정당해산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헌법 교과서는 이에 더해 “공직선거법은 전국구 의원(비례대표 의원)의 경우에도 정당해산 시에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김철수 <헌법학개론>)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헌재는 “국회의원직을 그냥 두면 정당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며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이런 행위야말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국헌문란’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헌재는 이번 결정으로 무의미한 이념 대결을 종식시키자고 주장했지만, 갈등과 대립은 해산 결정 이후 더 확산될 조짐이다. 지금 같은 헌재가 헌법 문제의 최종적 판정자에 어울리느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헌재가 일반 시민들의 여론 분포나 법 감정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편향된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명과 구성 방식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보수 성향의 현직 고위법관이나 검찰 고위직 등 사법관료로만 헌재가 충원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과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법원장과 집권 여당이 재판관 9명 중 7명을 임명하는 방식으로는 보수성은 피하기 어렵다. 우리 헌재의 모델이 된 독일 헌재처럼 국회의 3분의 2 의결로만 재판관을 임명하도록 해 정치적 편향성을 줄이는 한편, 사법관료 외의 인사들도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다. 헌재 등 사법부에 정치적 현안과 중요한 일의 처리를 떠넘겨 핑계로 삼으려는 정치권력의 악습도 고쳐져야 한다.

 

 

 

헌재 결정의 논리적 문제점

 

경향신문 2014-12-21 장은교 기자

 

 

(1) 추측으로 판단한 ‘주도세력’

(2) 실질적 위험이 내부 폭력  ?

(3) 형사재판 논리, 진행은 민사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며 내놓은 결정문은 스스로 세운 엄격한 기준에 못 미치는 빈약한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일반 시민에게 ‘법 논리적으로 진보당이 해산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헌재가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형사재판 같은 논리를 펴면서 실제 진행은 민사재판 방식으로 진행한 것도 이런 ‘빈약한 논리’가 나온 원인으로 작용했다.

 

헌재는 결정문 앞부분의 정당해산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해야 할 필요성을 장황하게 기술했다. 헌재는 “유력한 진보적 야당이 등록취소돼 사라지고 말았던 불행한 과거를 알고 있다”면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한 소수파와 반대파의 우려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정당해산을 “일종의 극약처방”이라면서 “정치적 비판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용도로 남용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실 판단에 들어가면 헌재가 공들여 밝힌 전제들은 희박해진다. 헌재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는 ‘종북세력’이 진보당 주도세력이 됐으므로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은 위헌적이고 구체적 위험성이 발현됐다고 봤다. 당원이 10만명인 진보당은 당비를 내는 당원만 3만명이 넘는다. 헌재 결정문에 이 중 누구를 왜 주도세력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헌재는 과거 ‘주사파 대부’였다가 전향한 김영환씨의 진술을 주요 증거로 판시했다. 그러나 김씨는 법정에서 “이석기 의원 등 현재 진보당 간부들과 10년 넘게 연락을 한 적이 없다”면서 “지난 10여년간 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재판관 8명은 김씨의 ‘추측’을 정당해산 근거로 그대로 인용한 셈이다.

 

구체적·실질적 위험성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밝힌 구체적·실질적 위험의 기준은 ‘폭력·무력 사용’이었다. 결정문이 제시한 증거는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등이다. 하지만 내란음모 사건은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이를 둘러싼 당내 폭력 사건이 ‘정당을 해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구체적이고 위험한 폭력성’의 근거가 된 셈이다. 헌재는 “이런 사건들이 유사 상황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처럼 빈약한 논리는 헌재가 민사재판규칙을 선택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정당해산심판은 재판진행 방식에 관한 규정이 없다. 헌재는 지난해 6월 국회에 “정당해산심판절차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명시해달라”며 헌재법 개정을 요청했다. “헌재가 직접 증거자료를 강제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형사소송법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진보당 측 변호인단도 “정당해산은 사실상 정당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형사재판보다 더 엄밀한 증거입증이 필요하다”며 형사재판 방식을 요청했다. 헌재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재판관 협의’로 민사재판 방식을 택했다.

 

 

 

헌재 정당해산 결론 도출, 비밀은 퍼즐 맞추기?

아시아경제 2014.12.23 류정민 기자

 

 

법조계 토론회, 헌재 결정문 조목조목 비판…주장이 증거 둔갑, 엄격한 증거기준 무너져

 

“헌재 심리 과정에서 증거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그 증거가 담은 내용에 대해서도 거르지 않고 판단하는 결과가 초래됐다.”

 

 

23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정당해산 결정의 문제점과 민주주의의 미래’ 토론회에서는 헌재 판단의 근거가 된 증거기준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또 정당해산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퍼즐맞추기’ 형태의 논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토론회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법과사회이론학회 등이 주최했으며 법조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발제를 담당한 전영식 변호사는 “헌재 심리 과정에서 증거능력을 배척했어야 할 증거들이 받아들여졌다”면서 “엄격한 증거 채택의 기준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증거로 채택해 판단기준으로 삼은 내용들은 검증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누군가의 주장을 사실관계 확인 과정도 없이 정당해산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은 판단에 대한 객관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헌재가 형사소송법이 아닌 민사소송법을 준용할 때부터 예고됐다. 헌재는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사건을 판단하면서 엄격한 입증을 요하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완화된 증거주의를 채택한 민사소송법을 준용했다.

 

발제를 담당한 이재화 변호사는 “당의 '주도세력' 인물로 기재된 몇 사람은 당 활동과 관련해 직책을 맡은 바가 없다”면서 “헌재는 법무부 측 청구서나 법원에서 배척된 공소장 등을 전제로 사실관계를 확정해 결국 엉터리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상고심 판결을 앞둔 대법원을 압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결정문에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직접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들의 회합 논의 내용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본 부분은 내란음모 혐의를 심리 중인 대법원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발제를 담당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몇몇 당원들의 의심스러운 행동에서 통합진보당이라는 단체의 '숨겨진 목적'을 추정해 내는 전형적인 심정형법의 과오를 되풀이했다”면서 “여기서 합리성이나 개연성과 같은 헌법의 전문용어들은 도저히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아니 짜 맞추자고 작정한 그 퍼즐조차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상희 교수는 “참고인 진술을 한 헌법전문가도 찾아내지 못한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인식조차도 하지 못하는 위험을 퍼즐맞추기라는 기상천외한 기법을 들먹이며 가공해냈다”고 지적했다. 

 

 

 

 

판검사 출신이 장악한 헌재…사회 다양성 대변 못하는 구조

 

경향신문 2014-12-21

 

학자들 “정당정치 위축 우려…재판관 자격 요건 바꿔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놓고 학자들은 설득력도, 정당성도 없는 판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헌법재판관의 보수·고위 법관, 검사 중심의 인적 구성도 큰 문제라고 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종북 낙인찍기가 확산되고, 정당정치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당해산 결정문에서 보여준 헌재의 보수성은 다양한 출신의 헌법재판관을 뽑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9명 재판관 중 7명이 고위 판사, 2명이 고위 검사 출신이다. 애초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구조였다. 먼저 판검사 출신을 줄이고 노동·인권 분야에서 활동한 재야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관련법을 개정해 헌법재판관 임명 자격 요건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교수, 행정부 공무원, 외교관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일본에서 대법관은 한국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역할을 동시에 한다. 판검사들이 민형사 사건에서 쌓은 경험보다 인권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

 

■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는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가 전체 9명 중 7~8명에 이른다. 표면적으로 대법원장 3명·국회 3명·대통령 3명 몫이지만, 대법원장 추천 몫도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 몫도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이다. 헌법재판관 인적 구성상 헌재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이런 구조에선 국민의 기본권과 소수자를 보호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기 어렵다. 독일처럼 모든 헌법재판관들을 국회로부터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의 판단은 이념적으로 양분화된 민감한 사안의 논쟁을 종식시킬 설득력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판결로 이념 논쟁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휘말렸고, 헌재의 신뢰와 권위를 깎아내렸다. 헌재는 인권·민주주의를 다수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인데, 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번 판결은 논리적 설득력, 사법 절차가 갖춰야 할 엄정성을 잃었다. 헌재가 판결 초반에 밝힌 보편적 헌법원리를 적용하면 이번 사안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 대치 상황’에 있다는 이유로 장황하게 설명한 보편적 법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자의적으로 판단했다. ”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의 이번 판결은 헌법 해석의 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판결이 아니라 ‘파쇼적인’ 판결이다. 벌써 조짐이 나타난다. 법무부와 경찰이 진보당 관련 집회를 못하게 선언했고 보수단체에서 진보당원들을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에 있어 무한대의 재량권을 갖게 됐다. ‘발언의 외향이 북한과 같으면 일단 의심해야 하고, 의심한 결과 찾아봤더니 불온한 목적이 있더라’는 논리가 헌재에 의해 정당화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민들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헌재를 비판할 때 ‘나는 진보당원은 아니지만’, ‘이석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긴급조치 시대와 유사한 일이다. 공안의 눈으로 헌법을 판단한 결과다.”

 

■ 현재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판결도 나지 않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 영역을 축소하고 사법관료 등 전문가의 영향력을 키울 것이다. 헌재의 보수적 편향은 민주주의 작동방식을 왜곡하고 한국 정당체제의 보수성을 더욱 강화한다. 헌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여러 형태의 정치적 결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가뜩이나 취약한 정당체제가 더 한쪽으로 쏠려 이념 지형을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염려가 크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후폭풍을 우려한다

서울신문 2014-12-24 / 문소영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소속 국회의원직 박탈”을 발표한 12월 19일 오전 10시 30분 TV 생방송 중인 법정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지만 담담했다. 헌재는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을 위헌 결정할 때 조선시대 이래 서울이 수도라서 ‘관습헌법’에 어긋난다는 기막힌 논리를 개발해 냈던 기관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한국의 법체계는 불문법(관습법)이 아니라 성문법에 기초한 나라인데 말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로 1988년 헌법재판소가 최초 설립됐으니 “그래도 헌재가…”라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모양인지라 일부는 해산 결정이 나오자 “헌재가 존속살인을 했다”거나 “개헌해 헌재를 폐지해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했다.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던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 중 하나가 헌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런 반응을 한 것이다. 헌재가 “북한식 사회주의 추종의 해악”을 청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진당 해산’을 결정함에 따라 ‘당신 종북이야’ 하면 누구나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커졌다. 지난해에도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던 나라가 ‘우리’나라다.

 

사실 그 우려는 하늘이 무너지면 어찌할까와 같은 기우가 아니다. 헌재의 결정이 나자마자 고영주 변호사 등은 통진당 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을 했다. 고영주 변호사의 이력이 특이한데, 그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1981년 부산 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부림사건은 33년 만인 지난 9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고 변호사는 어떤 사과나 반성도 없이 “좌경화된 사법부가 자기 부정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니 검찰이 통진당원 3만여명에 대해 국보법을 적용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 헌정 사상 초유라는 정당 해산은 필연적으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1956년 공산당 해산을 결정한 뒤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큰데 독일은 공산당원 12만 5000명에 대한 공안수사를 했다.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 이후 사람들이 헌재를 비판하는 발언의 양식은 이러하다. “나는 통진당을 지지하지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반드시 앞에 붙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적 색채를 공중 앞에 명확히 하려는 욕구를 왜 갑작스럽게 갖게 된 것일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종북 사냥’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의식·무의식적 발로가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헌재의 결정이 오히려 헌법 정신을 왜곡·굴절시켰다는 증거가 아닐까.

 

헌재재판관 8대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정당 해산이 결정났지만, 소수 의견을 낸 김이수 헌재재판관의 주장에 관심이 더 쏠린다. 김 재판관은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으로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통진당 해산의 원인인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선동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그런데 헌재가 먼저 ‘통진당은 종북 집단’이란 낙인을 찍은 것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일각에서 12월 19일 헌재 결정이 당선 2주년 축하 선물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은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BBC 등 외신에서 “박근혜 정부가 정치인을 종북으로 몰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에서 ‘헌재 해산 결정문’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베니스위원회는 정당 해산의 근거를 폭력의 행사 등으로 엄격하게 하고, 당원 개별 행위를 정당에 책임을 묻지 못하는 등의 규정을 1999년 발표했다. 검찰의 산케이 기자 기소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외신의 비판을 받았다. 이제 헌재 결정이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될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