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시대 건너 가기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죽이기, "전교조여 법을 지키라"?

모산재 2013. 10. 15. 11:25

 

9월 23일 오전, 고용노동부 국장과 3명의 직원의 느닷없는 전교조 본부 방문. 10월 23일까지 해직조합원 9명을 탈퇴시키라. 아니면 노조 설립을 취소한다.”는 최후통첩! “전교조여, 법을 지키라!” 박근혜 정권의 우렁찬 외침에 보수세력들이 즉각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졸지에  법을 어기는 단체라는 이유로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에 사형을 선고하고 나섰습니다. 과연 전교조가 불법을 자행하는 단체일까요?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민주화 이전 독재정권이 법의 이름으로 국민을 짓밟던 통법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판단일 것입니다. 다음은 법리적으로나 국제적 기준으로나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탄압이 보편성을 크게 잃고 있다는 근거를 정리한 것입니다.

 

노동부는 해직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전교조 규약이 교원노조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에 따라 이런 요구가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법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으로 종결된 것도 아닐뿐더러 OECD나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적·보편적 기준에도 어긋납니다.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노조 해산명령 법률은 과거 전두환 정권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지만 87년 민주화운동으로 폐지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88년 노태우 정권이 이를 기습적으로 대통령령으로 되살린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법률에 근거하지 못한 시행령만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무시한 명백한 위헌 조항입니다. 말하자면 극소수인 9명의 해직 조합원을 꼬투리로 삼아 수만 명이 가입한 조합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입법자는 입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효과적인 수단 중에서 가장 기본권을 존중하고 적게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최소 침해성’의 헌법 정신을 유린하는 과잉조치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조치는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전교조에만 적용하고 있어 형평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뉴라이트 자유교원조합도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대구경북자유교원조합 규약 제8조는 “조합원이 조합활동을 하거나 조합의 의결기관이 결의한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분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때에는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고…”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민원 회신 공문에도 한국교총의 회원 자격은 스스로 정할 사항임을 공식 통보하고 있습니다. 산별노조뿐 아니라 단위노조 가운데서도 해고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규약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소속 대부분의 노조에서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도 3년 전 해고조합원 보호와 노조설립취소 시행령 폐지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2010년 9월 30일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를 개정하고 정부의 노조 설립 취소권을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에 대해서는 삭제할 것을 권고하며, "대법원은 초기업별 노조의 경우 특정 사용자 종속관계를 조합원의 자격 요건으로 볼 수 없다고 했고, ILO(국제노동기구)도 해고자의 조합활동 금지는 반 조합적 차별 행위의 위험성이 있는 결사의 자유 위반 상황으로 규정했다"면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노조법 제2조 제1호를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인권위는 "시정 요구 불이행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은 법에 의해 설립된 노조에 대해 일체의 지위 자체를 원천 부정하는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면서 "해당 조항은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를 노동부는 모르쇠해오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 노동탄압부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유독 전교조만 문제삼아 설립 취소를 압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전교조가 진보적 가치를 확산하는 중심에 서 있고 현정권의 보수 일변도의 권위주의적 정책을 밀고나가는 데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뉴라이트를 앞세워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군부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박근혜 정권에게 자신들의 원죄적 치부인 친일과 독재를 따갑게 비판하는 전교조가 고울 리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버지 박정희는 친일과 독재 모두 상징적 존재 아닌가요?

   

해고자를 노조에서 내쫓는 이런 후진적인 노동 정책에 국제사회의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89개의 ILO협약 중 한국정부가 비준한 협약은 고작 28개, 185개 ILO 가입국 중 세계 120위의 노동 후진국입니다. 결사의 자유(제87호) 등 핵심 협약 4개 모두 가입하지 않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7개 나라뿐인데 한국은 중국, 브루나이, 피지, 몰디브, 마셜제도, 투발루 등 노동후진국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ILO는 지난 3월 단결권을 부정하는 전교조 해고 조합원 배제 명령과 노조 설립 취소 위협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OECD 노조자문위원회와 EI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할 당시 한국 정부는 교사와 공무원 결사의 자유와 이들의 노조 활동 보장을 약속했다"며 "전교조 노조 등록 취소는 국제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전교조 설립 취소를 하지 말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조합원 자격 배제 요구를 지속적으로 지적·비판해온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OECD에 가입할 때 한 국제적 약속에 따라 공무원의 권리를 존중하고 전교조의 노조 등록을 유지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전교조 해직 조합원들은 일제고사 반대, 사립학교 비리 고발 등 정권과 사학 권력의 권위주의적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쫓겨난 교사들입니다. 해직 교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 마땅할 정부가 오히려 해고 조합원의 권리를 조직에서 내치라는 몰염치의 협박을 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선과정에서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부르짖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국민통합과 정반대로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을 몰아내는 '국민분열'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녀가 말하는 ‘국민통합'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4.19교원노조를 짓밟고 ‘국민총화’를 외치며 독재정치를 꾀했던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리 봐도 박근혜가 외쳤던 ‘국민통합’의 실체는 권위주의적 통제를 거부하고 진보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있는 껄끄러운 전교조를 짓밟고 독재로 회귀하려는 박정희식 ‘국민총화’가 아니었을까요?

 

 

※ 그런데 어제, 지난 1월에 이미 교육부가 고용노동부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독촉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교육부가 자리 깔고 노동부가 칼을 들며 정권 차원에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