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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기타

칼바람 속 따스한 천변 산책

by 모산재 2007. 11. 22.

칼바람 속 따스한 천변 산책

2007. 11. 18.  일요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뜬 아침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아침 방바닥의 온기가 너무도 감미로워

기지개를 켜면서도 이불 속의 온기를 더 붙들고 싶어집니다.

 

오랜만에 푹 자고난 충만감과 나른한 쾌감에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뒹구는 맛이란 바로 천국입니다. 

 

 

띠리링~

휴대전화 벨이 울립니다.

('띠리링'과는 다른 소리인데, 기억을 하지 못해서 대충...) 

늘 시계 역할만 하던 것이 전화 역할을 해 줍니다.

 

반가워라,

가끔 연락되는 선배님이 별일 없으면 나오라고 합니다.

반가운 후배님이 찾아왔으니 천변 산책이나 하자는 겁니다.

 

 

등산복 겨울 자켓까지 다 갖춰 입고 현관을 나서니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영하 3도의 칼바람입니다.

올들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진 날씨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두 분을 만나 탄천으로 이동합니다.

두 여인과 함께 걸으니 부자된 느낌입니다.

 

나 혼자서였으면 이 매운 바람 속을 나섰을까 싶습니다.

귀가 얼얼하니 시리고 손가락이 곧아옵니다.

 

 

활활 타오르던 단풍인 채 물기 말라버린 물억새 밭 사잇길로

걷는 연인의 풍경이 마른 풀빛처럼 따스해서 좋습니다.

 

 

  

갑자기 몰려온 찬 바람에

쑥부쟁이와 구절초 꽃들은 풀이 죽어 버렸는데

저 노란 산국들은 오히려 더 생기를 발하는 듯합니다.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저 하얀 억새꽃은

비질하듯 연신 서늘한 바람을 걸러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저렇게 환하게 반짝이면서

맑은 바람에 흔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강길을 따라 매서운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기도 하고 시리기도 합니다.

 

멀리 둑 너머 '강남자원회수시설'이라는 이름의 쓰레기 소각장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파란 하늘 속으로 그림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기실 알고보면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는

인간의 거대한 욕망이 낳은 죽음의 연기일 텐데,

한동안 맑은 바람 속에 슬그머니 자신을 풀어놓아 버리는

이 연기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겨 버립니다.

 

마치 평화로운 산골마을 굴뚝의 풍경을 만난 것처럼...

 

추함을 감추고 있는 욕망의 화려한 전시를 욕망하는

우리의 욕망이란 게 이렇게 얄팍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산책로 바닥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붙었는데 

어제까지도 싱싱했을 풀들이 저렇게 얼어서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늦가을까지 꽃을 피워대는 저 서양등골나물(사근초)도 별 수 없이 줄기부터 허물어지는 모습입니다.

 

 

 

큰개여뀌는 작은 꽃잎이 얼어버렸지만

그래도 기 죽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는 듯합니다.

 

 

 

 

수크령도 이제 씨앗에게 삶을 넘겨 주어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이렇게 이삭이 갈라진 녀석이 드러 눈에 뜨입니다.

 

갈라진 양쪽을 잡고 당겨보니 이렇게 줄기가 반으로 갈라지는군요.

 

 

 

 

양재천과 탄천에는 박하가 유난히 많습니다.

 

볕이 따스한 곳이라 가을 늦도록 꽃을 피워대는데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 별 수 없이 대부분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제법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예년처럼 서늘하게 흐르는 물 위에는 청둥오리떼들이 유유히 물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둑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위로 낮달이 떴습니다.

 

 

 

응달인 탄천을 두 시간이나 걸어오다 보니

몸이 으슬으슬하니 따스한 공간이 그리워집니다.

 

두 여인이 춥지 않아요 라고 묻는데

별로 춥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빨리 주점이나 찾아 뜨끈한 국물에 소주나 한 잔했으면 생각하면서도...

 

 

웬일일까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산책로 언덕

포플러 가지 위에 장끼 한 마리가 앉았습니다.

 

 

 

이 녀석들은 참새일까요.

겨울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두 여인이 내 맘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저 시린 풍경을 뒤로 하고, 우리는

굴뚝이야 없는 곳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곳으로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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