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은 양진당 앞 길 건너편에 서쪽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밖에서 바라보는 행랑채(대문간채)는 모두 12칸으로 길게 늘어서서 안채와 사랑채를 가리고 있다. 대문을 중심으로 왼쪽 8칸 오른쪽 3칸이다. ■ 충효당(忠孝堂) = 서애종택 / 보물 제414호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 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선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