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인도 (16) 카주라호, 동부 자이나교 파르스바나트 사원, 아디나트 사원

모산재 2016. 2. 9. 10:35

 

산디나트 사원을 지나자, 지금까지 봤던 힌두사원들과 비슷한 사암 건축물인 파르스바나트 사원(Parsvanath Mandir)이 모습을 드러낸다.

 

 

첫눈에도 우뚝하게 솟은 시카라가 흘러내리며 작은 시카라가 중첩된 성실 지붕이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이 사원은 10세기 중엽에 세워졌는데, 마하만다파 출입문에 새겨진 명문과 락슈마나 사원과 닮은 점 등으로 건축 시기는 950~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원래 1대 티르탄카라(Tirtankara)인 아디나트에 바쳐진 사원이었는데, 1860년 23대 티르탄카라 파르스바나트상을 봉안하며 파르스바나트 사원이 되었다.

 

 

파르스바나트 사원은 자인교 사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사원 기단의 넓이는 20×11m. 규모는 서부사원군에 비해 작지만 건축 기법이 빼어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은 서부 사원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 사원은 서부사원군 건축물들과 달리 발코니가 전혀 없다. 자이나교 사원이지만 외벽에는 수많은 비슈누파의 힌두신들이 새겨져 있다. 

 

 

힌두 사원들과는 달리 출입구가 양쪽으로 있는데, 두 개의 성실(聖室)에 두 분의 존상을 모시고 있는 모습이다. 두 존상은 이 사원을 지을 때부터 모셨던 아디나트 존상과 19세기에 봉안한 파르스바나트 존상인 듯하다.

 

 

바로 이곳에 모셔진 존상은 1대 티르탄카라인 아디나트인 듯...

 

 

 

 

존상 아래에 새겨진 상징 동물이 황소상인 것으로 보아 아다나트상으로 판단된다. 자이나교의 개조로 흔히 '리샤바' 또는 '리샤바나트(Rishabhanath)'라 불리기도 한다.

 

 

 

 

파르스바나트 사원은 금욕을 최고의 도덕률로 내세우는 자이나교 사원이라 힌두교 사원에서 보이는 에로틱한 미투나상은 없다. 그럼에도 외벽에는 3단으로 육감적인 여성(수라순다리)상, 포옹하고 있는 커플 등 힌두 신들을 표현하는 장식적 조각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원래는 힌두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상의 모습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담은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데,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 눈 화장을 하는 여인, 발에서 가시를 뽑는 여인, 발목 벨을 채우는 여인 등의 조각상이 유명하다.

 

 

 

 

 

반대편 현관으로 들어가면 자이나교 23대 티르틴카라 파르스바나트 존상을 모신 성실(聖室)이 있다.

 

 

 

 

현관(아르다만다파) 입구

 

 

 

 

현관 천장

 

 

 

 

자이나교 23대 티르틴카라, 파르스바나트 상. 1860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성실 주변의 조각상들

 

 

 

 

외벽의 다양한 신상들. 풍만하고 요염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첩첩이 새겨진 아름다운 시카라. 힌두 신들이 거하는 성산 카일라스산을 상징한다.

 

 

 

 

위의 벽면에 새겨진 신상 중 뭉뚝한 코와 원만한 얼굴선 등으로 몽골리안으로 추정되는 여신상

 

 

 

 

앵클벨(ankle-bells)을 차는 여인

 

 

 

 

눈 화장을 하는 여인상

 

 

 

 

 

주변의 작은 사당들

 

 

 

 

 

 

파라스바나트 사원 바로 옆에는 제1대 티르틴카라를 모시는 아디나트 사원(Adinath Mandir)이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건축 양식은 바마나(Vamana) 사원과 유사하다. 하지만 시카라는 바마나 사원보다 더 단순하고 균형 잡힌 모습이다.

 

 

 

 

외벽 조각은 3단으로 되어 있지만 맨 위의 단은 시카라를 받치고 있는 듯 좁게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 2단의 입상으로 새겨진 인물상과는 달리 좌상으로 새겨져 있다.

 

조각된 신상들은 조각 수법이 정교하여 매우 아름답다.

 

 

 

 

 

 

아디나트(Adinath) 존상

 

 

 

 

아디나트는 산스크리트어로 'First Lord'란 뜻으로 자이나교의 개조인 최초의 티르탄카라 리샤바나트(Rishabhanath)를 가리킨다. 100명의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왕국을 맏아들 바라타에게 물려준 뒤 암자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인도 여인들

 

 

 

 

 

 

오후 3시 무렵, 동부 자이나교 사원을 다 돌아보는 것으로 카주라호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카주라호 동부사원 앞 라자카페로 나와 라자카페에서 라씨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 릭샤를 잡아 타고 숙소 라마다 호텔로 돌아와 배낭을 꾸리고 다음 여정인 오르차로 출발 준비를 한다. 

 

 

배낭을 메고 나오니 승합차 기사 "가자 빨리빨리"라는 말을 반복한다. 여행지에서 한국사람들이 쓰는 "빨리빨리"란 말을 참 자주 듣는다. 인도인 기사에게도 가장 익숙한 말이 된 듯하다.

 

 

 

오후 4시 30분을 지날 무렵, 승합차 3대에 나눠 타고 출발...

 

해가 기우는 오후& 카주라호를 벗어나는 길, 아름드리 가로수가 우거진 풍경은 고즈넉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마을 사람들과 하교하는 학생들 모습이 다정스럽고...

 

 

 

 

 

소들이 무리를 지어 도로를 걸어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노면 상태가 아주 엉망인 길이 시작된다. 차량 천장에 머리를 자주 부딪치며 소리를 지르는데, 역시 인도인 기사는 "노 프로블럼"을 외친다.

 

 

 

 

잔시를 지나 오르차(Orchha)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쯤...

 

숙소 아마르 마할(Amar Mahal) 호텔에 들어서자 정원 중앙 무대에서 악사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무희는 춤을 추며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영해 준다.

 

 

 

 

 

짐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습관처럼 라씨를 주문하여 마시고 그리고 간단히 식사...

 

 

 

 

 

밤 11시 무렵, 우리 방(112호)에 모여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하루의 정담을 나눈다. 모두가 돌아간 시간 가이드 조성모와 함께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