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제주 올레 6코스 (3) 섶섬, 보목하수처리장-검은여쉼터-소정방폭포-제주올레사무국

모산재 2011. 10. 4. 15:31

 

제지기오름(절오름)을 뒤로 하며 보목항을 지나 마을을 동서로 나누는 정술내(보목천)를 건넌다.

 

 

내의 동쪽 동네는 낮은 지대라 해풍의 영향으로 수목들이 잘 자라지 않으므로 주로 어업에 의존해 살고, 서쪽 동네는 지대가 높고 토질이 비옥하며 숲이 우거져 농업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섶섬(숲섬)이 한층 가까워 보인다. 절오름(제지기오름)에서 1km 정도 떨어진 섶섬은 난대림으로 덮여 천연기념물 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특히 파초일엽의 자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하며, 녹나무, 아왜나무, 호자나무, 북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동굴볼레나무 등 10여 종의 상록수를 포함하여 450여 종이나 되는 난대 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다.

 

 


길은 해안 언덕을 띠처럼 두르고 있는 숲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다시 큰길로 나오며 섶섬은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이 섶섬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 온다고 한다.

 

옛날 이 섬에는 커다란 귀가 달린 새빨간 뱀이 살고 있었는데 그 뱀은 용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그 뱀은 매달 음력 초사흘날과 초여드렛날이면 한결같이 용이되게 해 달라고 용왕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기를 3년 동안이나 계속했더니 정성에 감복하여 용왕이 "섶섬과 지귀섬 사이에 숨겨둔 야광주를 찾아내면 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뱀은 그날부터 섶섬과 지귀섬 사이의 깊은 바다 속을 뒤지기 시작하였으나 야광주를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백년 동안이나 계속하였지만 끝내 야광주를 찾지 못하고 그 뱀은 원한을 묻은채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비가 오려면 섶섬의 봉우리에 안개가 끼었고 사람들은 뱀신의 조화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곳 섶섬에 당을 짓고 어부들이 매달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고, 뱀신을 모시는 당을 여드렛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해안의 굽이를 돌아서며 넓은 해안 풍경 속에 다가서는 구두미포구.

 

 

 


멀리 서귀포 앞 문섬도 시야에 들어섰다.

 

용암이 만든 특이한 너럭바위

 

 

 

 

띠처럼 형성된 해안 숲길은 해안도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잠시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이렇게 올레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간이카페가 눈에 띄기도 한다. 

 

 

 

때로는 갯가로 난 길을 따라 바다를 보면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돌담길을 따라 걷기도 하며

 

 

 

정오의 찬란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바다와 물결과 갯바위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더러는 이렇게 숲의 형태를 이룬 길을 걷기도 한다.

 

 

 

그렇게 한 해안을 돌아드는 만곡부에서 우거진 숲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보니 스킨스쿠버를 즐기러 온 사람들. 봉고차에 싣고온 산소통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그 해안의 언덕, 계단을 올라서니 보목하수처리장이 나타난다.

 

 

 

하수처리장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풀밭에서 비슷한 크기의 잎을 가진 세 가지 풀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다.

 

 

 

추자도에서도 보았던 풀, 피막이(제주피막이?)와 병풀과 아욱메풀이 한데 어울려 있다. 병풀과 아욱메풀은 이 지역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풀이다.

 

 


하수처리장에서 해안 숲길을 지나자 다시 환히 열린 공간이 나타나고 '백록정'이란 간판에 가건물이 식당처럼 보인다.  여기서 점심이나 먹을까 하고 다가가니 이건 뭔가... 뜻밖에 국궁장이다.

 

힘차게 활시위를 당기는 사진 속 아주머니에 따르면 제주도의 국궁 동호인들이 모이는 곳이란다. 전국적으로  340여 개의 국궁장이 있는데 바다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국궁장이란다.

 

 

 

막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간 뒤라 활터 마당이 무너져 내리고 건물 내부도 바닷물에 쓸리어 어수선한 모습이다.

 

지나서 본 국궁장. 과녁 뒤 숲속에 보목하수처리장이 있다.

 

 

 

동쪽으로 서귀포 앞 문섬은 더욱 가까워지고 범섬도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태풍 무이파가 쓸어올린 바닷물로 팔손이나무들이 염해를 입어 죽어가고 있다.

 

 

 

갯바위 사이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인

 

 

 

 

해안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오른쪽 칼호텔 방향으로 꺾여진다.


 

그 지점 2층 건물의 아래층에 '검은여쉼터' 있다. 어촌계에서 운영한다는 쉼터란다.

 

 

 

여기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였는데...

 

차와 음료수에 해물파전과 막걸리, 캔맥주 정도밖에 없는 집이라서 그냥 지나치고 만다.

 


그래도 배가 아주 고픈 것은 아니었는지 메뉴판의 파전과 막걸리보다는 구석에 기대어 있는 판넬에 적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한 편의 시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다.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를 이런 외진 바닷가에서 만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의 나타샤는 실존인물!

 

평생 모은 재산 천억 원대 전통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만든 여인,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다. 백석이 자야(子夜)라고 불렀던 여인. 1930년대에 시 쓰는 영어 선생과 춤추고 노래하는 권번 기생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 이별해 있던 시절 백석은 이 시를 썼을 것이다. 

 

깊은 산골 '마가리'(오두막)에 살자고 생각하는 백석, 눈이 푹푹 내리는 산골에 사랑하는 나타샤는 나타났을까.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좋아서 울어 주었을까.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그의 다른 시가 대답이 될까...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나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몽환을 꿈꾸면서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위안하는 백석의 시를 떠올리며 터벅터벅 걸어가자니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를 죽어라 낸다.

 


 

검은여쉼터에서 해안길은 막혀 칼호텔 담장을 끼고 돌아간다. 칼호텔 담장을 따라 우회하는 ㄷ자길이다.

 

낮은 담장 너머로 잘 가꾸어진 호텔의 정원이 들여다 보인다.  

 

 

 

 

길섶에는 꽃이 져 버린 애기달맞이꽃이 눈에 띈다.

 

 

 

도로를 만나 길은 다시 한번 구부러지고

 

 


 

다시 ㄷ자로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해안 쪽으로 내려 가노라면 '화락원(和樂園)'이라는 '이승만 기념관'이 있는 파라다이스호텔을 지난다.

 


이곳은 원래 이승만의 겨울 별장이었던 곳이라 한다. 4.19혁명으로 쫓겨난 뒤 잠시 정부 소유로 있다가 개인 기업으로 넘어갔다 한다. 소정방폭포와 그 너머 정방폭포 주변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이다.

 

 

 

별장이라고 하지만 하필 이곳에 이승만 기념관이라니, 게다가 화락원(파라다이스)이라니...

 

천하 절경의 명소이지만 정방폭포는 4.3항쟁 당시 80여 명의 제주민을 굴비처럼 엮어 총살하고 추락시킨 집단 학살의 비극이 있었던 곳이다. 4.3 양민 학살의 최고 책임자의 기념관이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니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직 멀었다. 

 

 


화락원을 지나자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나타난다.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은 금방 작은 절벽을 만나 바다로 떨어진다.

 

작은 정방폭포라는 뜻의 '소정방폭포'에 도착한다.

 

 

 

 

높이 5m의 아담한 이 폭포는 물맞이 폭포로 서귀포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폭포는 그리 신통할 것 없어 보이지만, 주변의 해안 절벽은 가히 일품이다.

 

 

 

 

 

 

 

 


소정방 폭포 서쪽 바위 벼랑 언덕을 오르니 아름다운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예전에 '소라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건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올레 사무국이 입주하였다.

 

 

 

이 건물은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인 고 김중업씨가 설계한 것인데, 절벽이 안전하지 않다고 하여  2003년 재해 위험지구로 지정되면서 '소라의 성'이란 식당이 2007년 문을 닫았다 한다.

 

식당 부속건물 2채는 철거되었지만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검토 결과가 나오면서 현재는 제주올레 관련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제주올레 정보센터로 제주올레 테마 사진전, 미술전 등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라는데, 간략한 전시물이 있을 뿐이다.  

 

 

 

※ 제주올레 6코스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