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전주 여행 (2) 한옥마을 전통놀이, 쌍륙· 고누· 쌍륙· 승경도· 장치기

모산재 2010. 11. 30. 15:08

 

전동성당에서 나와 경기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길 건너편 경기전 담장 밖 너른 마당에는 하얀 천막이 줄 지어 있고 판소리 창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린다.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모양이다. 

 

호기심에 끌려 마당으로 들어서니 중앙 무대 위에서 고수의 장단에 '춘향가'를 부르는 소리꾼의 아니리가 신명이 붙고 있다.

 

 

 

 

 

 

무대 뒤에는 '2010 전북시민문화축제'라는 축제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침 토요일과 맞아 떨어진 한글날을 기념하여 마련한 축제인 듯 싶다.

 

 

 

 

 

천막은 무대 앞 양쪽으로 늘어섰는데, 한쪽으로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전통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른 쪽으로는 여러 가지 만들기 체험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민속놀이는 승경도 · 고누 · 쌍륙 · 저포놀이 등 네 가지 놀이 마당으로,  만들기는 호신용 압화 호루라기 만들기 · 나무공작 · 여치집 만들기 · 천연비누 만들기 · 천연염색 등의 체험 마당으로 구성해 놓았다.

 

 

 

 

 

 

토요일 오후라선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붐비는데, 전통놀이에 대한 호기심도 만만찮아 놀이마당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특히 아이 어른 함께, 가족끼리 앉아서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정겹다. 나 또한 호기심에 잠시 들여다보기로 한다.

 

민속놀이 중 고누는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배워 동네 아이들과 많이 두어본 것이다. 산에 소먹이러 가서 소들을 산골짜기로 몰아 넣은 다음 평평한 너럭바위나 무덤 상석 위에 색돌로 수레고누나 참고누판을 그리고 놀았던 놀이다. 이렇게 노는 것을 '꼰 둔다'고 하였다.

 

그런데 쌍륙이나 저포, 그리고 승경도 놀이는 이름만 들어 보았을 뿐 낯선 놀이라 구경하고 싶어졌다.

 

 

 

 

■ 두 개의 주사위로 노는 쌍륙(雙六) 놀이

 

연인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청춘이 마주 보고 앉아 쌍륙 놀이를 하고 있다.

 

진마판을 펼치고 한 편에 15개씩 30개의 말을 5,3,5,2개씩으로 마주 진열하고 두 편이 2개의 주사위를 번갈아 던지며 말을 진군시키며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다.

 

 

 

 

'쌍륙놀이'는 고려 중기에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의 안방놀이로 성행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명맥이 끊어진 놀이가 되었다.

 

윷놀이처럼 이렇게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놀 수도 있다.

 

 

 

 

쌍륙놀이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로도 남아 있어 흥미를 끈다.

 

 

 

 

■ 고누 놀이

 

고누는 말을 진행시키며 상대방의 말을 가두어 따내거나 상대방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기는 놀이다. 게임의 원리가 단순하고 맨 땅이나 너럭바위, 또는 종이 위 등 어떤 곳에서도 말밭을 그려 놓고 즐길 수 있으니 아마도 전통 놀이로서는 가장 서민적인 놀이가 아닐까.

 

이곳에는 귀여운 '초딩'들이 참고누판을 앞에 두고 한판 붙었다.

 

 

 

 

바둑처럼 '약자 선수(弱者先手)'로 수가 낮은 사람부터 시작한다. 고누에는 밭고누·강고누·네줄고누·곤질고누·패랭이고누·줄고누·호박고누·참고누·네바퀴고누·팔팔고누·포위고누·장수고누·왕고누 등 참으로 다양하다.

 

 

 

 

■ 저포(樗蒲) 놀이

 

엄마 아빠와 마주 앉아 꼬마가 저포놀이를 배우고 있다. 색판으로 된 저포 놀이판과 다섯 개의 윷가락이 먼저 눈길을 끈다. 

 

김시습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다섯 편 중 첫번째 소설이 '만복사 저포기'이다. 소설의 주인공 양생(梁生)이 부처님과 저포 내기를 하여 이겨서 혼령인 처녀와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그 저포 놀이이다.

 

 

 

 

 

중국에서 전래되어 백제에서 성행했던 놀이로 주사위 같은 것을 던져서 겨루던 놀이인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놀이다. 인도의 ‘차우파’와 발음은 물론 놀이 방법까지 비슷하여 인도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놀이 방법을 알아낸 모양인지 이곳 전주와 부여 등에서 체험 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저포놀이의 말판은 324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 바둑판을 연상시킨다. 두 편으로 나눠 번갈아 윷을 던지는데, 목편(윷가락)은 다섯이고 여섯 말을 붙인다. 윷에서 나온 숫자만큼 이동하는데 처음에는 앞줄을 따라 놓다가 우측으로 돌아서면, 처음에 놓았던 자리에서 좌측으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만약 모서리에 닿으면 대각선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기도 하고, 몸(중앙)을 통과해 서쪽(다리)을 통과하면 말 하나를 뺄 수 있다. 두 개가 모두 독이면 한 번 더 놀 수 있다. 윷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말을 거꾸로 이동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가는 것도 있다.

 

 

 

 

■ 승경도(陞卿圖)놀이

 

조선시대 벼슬놀이인 승경도는 넓은 종이에 옛 벼슬의 이름을 품계와 종별에 따라 써 놓고 알을 굴려서 나온 끗수에 따라 벼슬이 오르고 내림을 겨루는 놀이다. 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退官)하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니 벼슬을 꿈꾸는 학생들이 즐겼던 놀이이다.

 

놀이를 주관하는 분이 꼬마들에게 놀이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넓고 큰 종이에 벼슬 이름을 품계(品階)와 종별에 따라 차례대로 적어넣은 승경도판(陞卿圖板)에 박달나무로 5각이 지도록 깎은 알을 던져서 나온 글자에 따라 관등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최고 관등으로는 영의정이 있고 최하 관등으로는 파직이 있었다.

 

이 놀이의 시초는 잘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 전래된 '궐희(闕戱)'라는 놀이가 있었는데, 이는 성균관의 유생들이 공자를 왕으로 받들고 사신들이 왕래하는 놀이였다. 승경도놀이는 이러한 궐희라는 놀이의 변천이 아닌가 생각된다.

 

 

 

 

■ 장치기, 하키를 닮은 민속놀이

 

경기전 서편 담장 안쪽 마당에는 하키를 닮은 '장치기'라는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장치기는 말을 타고 하는 격구와 거의 비슷한데, 필드하키처럼 양편으로 나누어 나무채로 나무공을 쳐서 상대편 종점선까지 몰아가는 공치기 전통 놀이이다.

 

 

 

 

 

장치기라는 말은 막대로 공을 친다는 뜻인데, 말을 타고 하는 격구와는 달리 격렬한 신체 활동이 요구된다. '봉희'(棒戱)라고 하며 지방에 따라서는 '공치기' 또는 '타구(打毬)놀이'라고도 한다. 장치기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행해지던 것이 점차 단순한 대중 놀이로서 변화된 것이다.

 

 

 

이렇게 민속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발길을 옮기니 분에 담은 화훼를 전시하고 있다. 비록 야생화는 아니지만 또 한동안 구경을 한다. 추명국, 숫돌담고사리, 사자머리일엽초 등 특이한 식물들을 처음으로 만나며 살펴보고 있으니 소장자인 아주머니는 반가워하며 아는 대로 친절히 설명해 준다.

 

 

나중에 알고보니 '2010 전북시민문화축제'라는 이름의 이 축제는 '시민행동21'이라는 시민단체 연합이 주관한 행사이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이 가슴에 다가오는데, 공허한 관념 투쟁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실천해 내는 모습이 참 괜찮아 보인다.

 

'시민행동21'에 함께 하는 단체는 들꽃사랑 『꽃다지』, 하천연구회 『여울』, 전통문화보존모임 『전주문화지킴이』, 자원봉사활동모임 『희망지기』, 『전통놀이연구회』, 양서류보존모임 『올챙이 뒷다리』, 『사물놀이패』, 사진모임 『무지개』 등인데 환경과 문화 모임이 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저녁 프로그램으로는 가을밤 달빛 음악회, 사물놀이 공연, 대금 연주, 풀피리 연주, 가을 시낭송, 포크송 가수, 살풀이, 판소리 등으로 채운다고 하니 전주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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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륙 놀이

 

중국에서 전래되어 백제시대에 널리 행해졌다. 쌍륙은 두 사람 이상이 쌍륙판 앞에 마주보고 앉아 편을 가르고 주사위 두개를 던져 나오는 숫자만큼 말을 움직여 먼저 궁에 들여보내는 놀이이다. 주사위의 가장 큰 숫자가 6이므로 던졌을 때 두개 모두 6이 나오면 이길 확률이 크므로 놀이의 이름을 쌍륙(雙六)이라 지은 것이다.

쌍륙판에는 1~6의 숫자가 4개 그려져 있다. 놀이 방법은 편을 갈라서 쌍륙판을 가운데 놓고 검은 말과 흰 말을 각각 16개씩 쥔다. 그런 다음 말들을 배치하여 전진과 후퇴를 하면서 겨룬다. 검은 말들을 자기 앞 오른쪽의 1자를 쓴 금 안에 2개, 5자 금 안에는 3개, 6에는 6개로 전부 11개를 세운다. 상대편도 마찬가지로 배치한다. 이렇게 배치된 말들은 양편이 번갈아 던지는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상대편이 숫자를 쓰지 않은 넓은 공간에 주사위를 던지는데 말의 진행은 전적으로 주사위 던지기에 의해 결정된다. 말판을 잘 움직여야 이기므로 옛 기록에는 쌍륙을 군사들을 움직여서 싸우는 전법(戰法)이라고까지 했다.

         ↓ 신윤복의 쌍륙삼매(雙六三昧)

쌍륙은 아주 먼 옛날인 B.C 3바빌로니아의 아브라함 성지에서 발견되어 그 시초로 보이며 이후 나일강변의 피라미드나 고대그리스 로마제국 시대의 여러 유적과 폼페이 유적 등지에서 놀이판이 발견되고 있다. 2세기경 인도 방면인 천축(天竺)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고 수당(隋唐)시대까지 인기를 누려왔다.

중국의 고문헌 <오잡조(五雜俎)>에 전하여 오는 이야기로 흉노의 왕(胡王)이 자신의 동생이 죄를 짓자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하였다. 동생은 형인 왕이 어떻게 하면 화를 풀고 자신을 살려줄까 하고 고심하다가 '악삭(握槊)'이라는 놀이를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악삭은 말이 홀로 있으면 상대편에게 잡혀먹는 위험에 처하지만 두개 이상이면 상대편 말에게 쉽게 먹히지 않으므로 자신이 꼭 필요할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을 접하게 된 왕은 동생의 의도를 느끼고 동생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호국에서 만들어진 쌍륙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삼국시대에 전해진다. 일본의 정창원(正倉院)에 쌍륙판이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끄는데 이는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전해준 것으로 '목화자단쌍육국(木畵紫檀雙六局)'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중국을 통하여 백제로 전해진 쌍륙이 신라로 전해졌고 신라에서 일본으로 전하여 졌음을 알수 있다. 조선중기까지는 놀이를 즐겼던 계층과 그것이 행해졌던 장소가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부원군(府院君), 빈(嬪)과 공주들, 형조판서 등 비교적 상류계층이 즐겼던 놀이였다. 그러나 풍속화가인 신윤복(申潤福)과 김득신(金得信)의 그림을 보면 평범한 차림새의 여인과 선비가 쌍륙을 두고 있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후기로 가면서 좀더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수천 년을 통하여 전세계에 걸쳐 발전하여 왔기 때문에 시대와 나라에 따라 놀이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나,1920년경 미국과 유럽에서 '백개먼'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규칙이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1931년에는 국제규칙이 제정되었으며, 1964년에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최종 승부는  주사위의 숫자를 따라 이동한 말들이 가운데 경계선을 중심으로 진군, 상대방의 말을 모두 빼내면 끝난다.  쌍륙놀이는 2,4,6,8,10명식 짝을 지어 단체게임을 할 수도 있는데 보통 한 판이 끝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50분 정도이다. 지방에 따라 놀이 방법이 약간씩 다르다는 기록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놀이 규칙은 같은 원리이다.

① 말판과 흑백 각 15개의 말, 그리고 2개의 주사위가 필요하다. 말판에 갑은 검은말, 을은 흰말을 각각 15개씩 배치한다. 갑은 검은말들을 1자를 쓴 금안에 2개,6자 금안에 5개, 5에는 3개, 1에는 2개 등 모두 15개를 놓는다. 반대로 을도 갑과 같이 자기 자리와 상대의 자리에 15개의 말을 배치한다.
② 각 편의 말들은 던지는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움직이는데, 갑이 던진 주사위의 숫자가 3,4라고 하면 합해서 7이 되므로 자기의 검은 말 한 개를 일곱 칸 전진시킬 수 있다. 또는 한 말은 세칸 다른 말은 네칸을 움직일 수 있다.
③ 쌍륙은 갑의 말들이 자기 앞의 오른쪽 6자리 안에, 을은 왼쪽의 앞 6자리 안에 집결시킨 다음 그것을 먼저 내 보내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④ 예로 3,3이 나왔다면 말 두개를 세칸 이동시킬 수 있으며, 4,4가 나오면 말 두 개를 네칸을 움직일 수 있다. 이때 옮겨가는 자리에 상대편 말이 두개가 있으면 그것을 한꺼번에 잡을 수 도 있다.
⑤ 서로 잡고 잡히면 잡혔던 말들을 다시 출발점에서 출발시켜야 하는 등 상대의 말들과 계속 충돌을 일으키며 갑의 말들은 갑의 앞으로 을의 말은 을의 앞으로 다 건너보낸 후에도, 모아세운 말들을 나가게 하므로 놀이의 긴장은 계속된다.

 

 

※ 장치기 놀이

 

장치기는 음력 정초나 농한기에 주로 젊은이들이 즐겼다.복잡한 설비 없이 너른 마당이 있으면 어디서나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공은 솔방울이나 나무토막을 다듬어 쓰며 장대는 지게작심 같은 것을 쓴다. 편을 갈라 중앙 기점으로부터 공을 빼앗아 각각 자기편 종점선까지 몰아가는 것이다. 총점수로 승부를 결정짓지 않으며, 한 경기에서 여러 가지 경기를 진행한 뒤 어느 편이 몇 가지를 이겼는가에 따라서 승부가 결정된다. 경기의 가짓수는 보통 10여 가지가 되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장치기는 원래 페르시아(波斯)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과 인도를 거쳐 우리 나라에는 당태종 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아마도 하키와 기원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이나 인도가 하키 강국임을 생각해 보면...)

고려 초기에도 궁전에서 격구를 실시할 수 있는 구정(球庭)이 있었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세종실록>에는 "병조에 계하되 고제를 삼가 살피니 당의 격환을 곧 황제가 만든 축국의 유제이다. 그런 이유는 다 놀이로써 습무(習武)하는 까닭이다. 고려 번성시에 격구의 놀이는 사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격구를 잘하면 가히 기사를 잘하고 창도 잘한다. 이제부터 무과에서 격구로써 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으라 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국방적인 필요와 무인 출신인 태조와 태종에 의해 행해진 격구놀이는 세종대에 이르러서는 격구가 무과 전시의 과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선의 문치주의에 군사적 의미를 띄던 격구는 조선 중기 이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놀이로서 장치기가 보급되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일제시대에는 '전 조선 얼레공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장소는 넓은 풀밭이나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고 길이 40∼50미터, 너비 30∼40미터 정도의 장소에 가운데에는 공이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하나 파놓는다. 놀이는 두 편으로 갈라 하되 한편을 10명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 네모로 사방에 구역을 만들고 가운데에 중앙선을 정한다. 축구장 같은 골문은 없고 다만 축구처럼 중앙선 가운데서 시작되어 공채로 공을 쳐서 상대방의 골라인을 많이 넘기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이 놀이를 시작하는 방식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아래짱은 중앙선 가운데에 파놓은 구멍에 공을 놓고 양편이 동시에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웃짱은 공을 제3자가 위로 똑바로 던진 다음 떨어지는 공을 서로 쳐서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소래기(소래기치기)는 이긴 편이 공을 위로 던지면 양편이 한바퀴 돌면서 떨어지는 공을 쳐서 시작하는 방법이다. 놀이 방식에 따라 격문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기본 방식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놀이에도 반칙과 벌칙이 주어지는데 그 내용은 공이 몸의 일부에 닿는 것, 상대편의 공채를 몸으로 막는 행위, 상대편의 몸을 공채로 치거나 치려고 하는 행위, 상대편의 경기 활동을 몸으로 막는 것, 공을 격장의 선 밖으로 쳐내는 것, 공을 횡선 밖으로 쳐내는 것 등이다. 그리고 벌칙으로는 물레공 즉 몸을 한바퀴 돌려서 공을 치는 것, 공을 굴려주는 굴러공, 구멍공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