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고향 뒷산의 돌가시나무,쥐깨풀,누린내풀,좀담배풀,쇠풀,나도기름새,쥐꼬리새,감태나무

모산재 2009. 9. 29. 23:46

 

내일이 집안 조상님들 산소 벌초하는 날이라 두 주일만에 또 고향을 찾았다.

 

삼가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는데, 타고 보니 전에 없이 미터기로 요금을 받는다. 지금까지 8,000원 받던 요금이 갑자기 14,000원으로 급상승이다.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알았더라면 20분만 더 기다려 완행버스를 탔을 것을... 그나저나 시골 어르신들 장 보러 나왔다가 '시간차'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이젠 요금 부담 너무 크게 되었으니 어쩌나...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어디 가셨는지 방문이 닫혀 있다. 아직 해는 안산 위로 두어 발 남짓 남아 있어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호야 형네 집 뒤로 오르다가 호야형을 만난다. "누구냐?"  같은 동네 한 해 선밴데 나는 알아보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내가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라고 하니 그때서야 "모친, 동네 나무 그늘 밑에 노시더라."라고 귀띔해 준다. 

 

어린시절 소먹이러 다니던 낯익으면서도 낯선 산길을 들어선다. 많은 산들이 밤나무 과수원으로 바뀌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밤나무가 심어진 산에는 밭에서 자라던 잡초들과 외래종 풀들이 번성하여 이제 산 고유의 식생을 찾아 보기 어려워졌다. 

 

 

 

임도 주변은 미국가막사리나 도깨비바늘이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도깨비바늘이란 놈, 꽃이 참 재미 있다. 꽃잎을 다섯 개를 온전히 갖춘 것은 드문데, 이렇게 두 개를 갖춘 게 일반적이고 더러는  한 개나 세 개, 도는 네 개를 달고 있는 모습이다. (다섯 개의 꽃잎을 다 갖추었다면 털도깨비바늘일 가능성이 높고, 한 개도 없다면 울산도깨비바늘일 것이다. 더러는 꽃잎이 흰 것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남부지방에 드물게 나고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아주 흔하다.)

 

 

노란 꽃잎도 이쁘지만 가운데에 꽃잎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대롱꽃을 좀 들여다봤으면...

 

 

 

 

개솔새 꽃밥이 한창인 모습이다. 검붉은 꽃밥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그네를 타고 있다. 

 

 

 

 

 

열매가 붉게 익어가는 땅찔레가 아직도 꽃이 하나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해서 만지니 꽃잎이 떨어져 버린다.

 

표준어로는 돌가시나무라고 부르는데, 겨울에도 풀섶에서 파란 잎을 보여 주는 반상록성 덩굴나무이다. (용가시나무는 낙엽관목이고 산방꽃차례를 이루는 점에서 구별된다. 용가시나무의 작은잎이 5~7개이고 땅가시의 작은잎이 7~9개인 점도 차이점이다.)

 

 

 

 

 

아직도 잘 구별하지 못해서 어려운 풀을 만난다. 들깨풀 쥐깨풀 산들깨가 그것인데, 잎이나 줄기의 특징으로 이런 저런 동정키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범주 속에 명쾌하게 들어맞지 않은 모습을 한 녀석들이 많으니...

 

줄기가 붉은 걸 보면 산들깨나 들깨풀 쪽인데, 포의 모양이 바소꼴이니 달걀형인 산들깨는 아니고 긴 잎자루와 몇 안 되는 톱니 등 잎모양을 보면 쥐깨풀로 봐야할 듯하다.

 

    

 

 

 

뜻밖에 누린내풀을 누린내풀꽃을 만나니 놀랍고 반갑다.

 

누린내를 맡았던 풀잎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어도 꽃에 대한 기억이 왜 없는지... 산 모퉁이에 가려 햇살이 숨어 버린 곳에서 꽤 오래 이 녀석들 담느라 애쓰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마을 뒷산 가장 높은 봉우리인 벼락꼭대기로 이어지는 진먼당('긴 등성이'란 뜻의 사투리)으로 올라서니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며 숲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점차 붉은 가운을 더한다.

 

 

 

등성이 메마른 땅에는 한뼘도 안 되는 이런 작은 풀들이 잔뜩 자라고 있다.

 

비노리와는 달라 보이는데 뭘까 싶은데, 벼과 사초과 쪽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하늘지기님이 쇠풀이라고 알려주신다. 꽃이 핀 모습인 듯한데 하도 희미하여 잘 보이지는 않는다.

  

 

 

 

 

 

딸기는 보이지 않고 하얀 피부의 복분자가 덩굴을 치고 있다. 작은잎이 7개인 것이 전형적인 복분자 잎이다.

 

 

 

 

등성이 솔숲 그늘을 따라 담배풀 식구 하나가 군락을 이루며 납작한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이 피었는데도 뿌리잎들이 그대로 싱싱하게 남아 있어서 천일담배풀일까 했더니 좀담배풀이란다. 

 

  

 

 

 

맞은편 높은 산언덕을 비추던 햇살도 사라지고 골짜기를 내려서서 돌아오기로 한다.

 

 

내려오는 길 산소 풀밭에는 나도기름새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이미지를 담으려 하니 잘 잡히지 않는다.   

 

 

 

   

 

  

개도둑놈의갈고리는 꽃이 거의 다 지고 있고 한쪽에서는 이미 도둑놈 선글래스 같은 열매를 잔뜩 달았다.

 

 

 

 

 

다소 습한 평평한 골짜기에는 쥐꼬리새가 이삭을 달고 있는 모습이다. 그다지 쥐꼬리 모양을 닮은 듯하지는 않은데 이삭이 잿빛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커다란 감태나무가 길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내가 본 감태나무 중에서는 이렇게 큰 나무는 없었다. 푸른 열매부터 붉은 기운이 있는 열매, 검게 익은 열매까지 다양하게 달렸지만, 이미 어둠이 깃드는 상태라 아쉽기만 하다. 

 

  

 

 

 

어둠 속 무덤가 풀밭에서 세 갈래의 길고 하얀 암술을 빼물고 있는 장구채 꽃이 유난하여 담아 보았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황혼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는 왕거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야말로 가장 예스런 시골 풍경 아니겠는가.

 

 

 

 

그 사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자식 먹일 저녁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가 반가이 맞아 주신다. 두 주만에 찾았으니 마음이 편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