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시대 건너 가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 뒤에 숨는 윤 정부

모산재 2023. 2. 11. 07:45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 뒤에 숨는 윤 정부

주간경향 2023. 2. 10.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그’가 있다. 지난 300여일 ‘그’는 여전히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던 바람은 정권 재창출 실패라는 ‘원죄’에 가로막혔다. 직접 등용한 사람에 의해 부정되며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드라마’의 주인공도 됐다. 퇴임 1년이 가까워졌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위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과거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던 정적들이 나서 애타게 불러대고 있다. 잊힌 ‘그’로 남고 싶다는 바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누릴 수 없는 꿈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정부 ‘뒤집기’에 나섰다. 적폐청산은 전임 정부 인사에 대한 사법 처리와 정책 전환이라는 두 가지 차원이 혼재된 상황에서 진행됐다. 박근혜씨에 대한 재판이 사법 처리라면 집권 두 달여 만에 시작된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의 원점 재검토는 정책 전환의 신호탄이었다. 이는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집권 초반의 높은 지지율은 정책적 선택에 대한 뒤집기마저 ‘적폐청산’으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문 전 대통령의 집권 1년차 지지율은 최저 68%에서 최고 81%를 오갔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집권한 역대 정부 중 해당 시기 지지율 최저치가 가장 높았다. 문 전 대통령 역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시대정신이 적폐청산에 있음을 강조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국민을 통합해야 할 정부가 심판자가 됐다. 정의의 이름으로 시행한 정책에 속도 조절이나 철회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국민적 피로감만 쌓여갔다.

비록 0.73%포인트 차에 불과했지만, 국민은 문재인 정권의 연장을 바라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민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 인사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누가 적폐인가’라는 논란을 만들며 공정이라는 시대 정신과 정권의 도덕성마저 흔들었다. 정책적 선택까지 정의와 불의로 나눠 다투는 상황은 탈이념화된, 일 잘하는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그 결과 국민은 한 번도 정치를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인물을 선택했다. 문제는 국민이 새로 선택한 대통령도 선과 악을 가르는 데만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정의라고 믿었던 것들이 다시 청산 대상이자 적폐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 탓’?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발언이 ‘정치 보복’을 예고했다는 해석을 낳자 적폐청산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 이 단어가 다시 등장한 건 2023년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는 자리에서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1일 제12차 비상경제 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잘못된 제도, 이런 적폐를 청산하고 제도 개선을 하기 위한 개혁을 가동시켜야 된다”고 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비정규직 철폐’, ‘주 52시간 노동’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들을 포함하는 영역이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두 차례의 적폐청산은 같은 단어지만 발화의 맥락, 의미가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적폐청산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두 가지 사안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용한다. 주의해서 보면 발화자의 의도가 보인다. 실정법을 어긴 경우에 처벌하는 ‘진짜’ 적폐가 있다. 사법정의를 적용하는 시기를 놓고 여야 간 다소 견해차가 있지만, 법치국가라면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권 스스로 옳다고 믿는 사안을 추진하는 ‘명분’으로서의 적폐다. 기존의 것은 다 잘못됐고, 새롭게 추진하는 일이 옳음을 강조할 때 해당 단어를 사용한다. 정책 뒤집기가 대표적 사례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각기 생각이 다른 개개인을 ‘대화와 타협’으로 묶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한 토론과 설득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생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거의 것은 잘못됐다, 현재의 문제는 과거 때문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특히 전임 정부 비판만큼 정권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정책선회의 명분을 얻는 확실한 방법도 없다. 집권 후 300여일이 지났건만, 북한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위를 넘나들어도, 난방비가 올라도, 심지어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려도 이게 다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기-승-전-‘문(文)’이다.

정치권의 ‘전임 정부 탓’이 윤석열 정부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여야 간 정권이 교체된 경우 ‘전임 정부 탓’은 늘상 있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목적은 정책 선회의 정당성 확보와 지지율 제고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뀌면 복지, 노동, 남북·한미관계 등에서 정책변화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전임 정부를 비판하고 차별화해야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며 “다만 단기적 책임 전가로 인한 지지율 제고 효과는 장기적 정책 제시로 유지해야 하는데 여기서 정부의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탓’에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탓’을 해도 반등 없는 지지율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는 매달 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 일종의 정기조사다. 조사 항목 중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전·현 정부 국정평가 비교’ 항목이다. 쉽게 말해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 중 국정운영을 어느 쪽이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새 정부 집권 후인 지난해 7월 말부터 시작한 조사는 그해 9월 한 차례를 제외하고 2023년 1월까지 매달 진행됐다.

가장 최근 조사는 지난 1월 30일부터 31일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가 더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8%, ‘문재인 정부가 더 잘했다’는 응답이 53%였다. 10%는 ‘모르겠다’거나 ‘기타’에 속하는 응답이었다. 1월 조사 결과가 특별했을 수 있다. 지난 5차례의 결과도 살펴봤다. 지난해 9월을 제외한 7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단 한 번도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앞선 적이 없었다. 같은 시기 ‘문재인 정부가 더 잘했다’는 응답이 50% 아래로 내려온 적도 없었다(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지지율 통계는 사안에 따라 변동폭이 크고 잦다. 특정 시점 결과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지율 관련 통계는 추세, 경향성을 확인하는 용도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리서치뷰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에 대한 직무 긍정도’와 ‘윤석열 정부가 더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동조화된다. 즉 통계에 ‘편견(Bias)’이 개입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잡음을 제거하기 위해 총 6차례 조사를 단순 추세 확인용으로만 좁혀봤다. 이 방식을 적용해도 적어도 여론조사에 참여한 국민에게는 ‘현 정부가 전임 정부보다 일을 잘한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경향성이 확인된다.

여론조사 진행 기간에 ‘문재인 정부 탓’이 노골화된 시점도 있었다. 극명한 사례가 난방비 인상 문제가 불거진 지난 12월 말~1월 말이다.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가스요금 인상 시기를 놓쳐 발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난방비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 ‘윤석열 정부가 더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2월 말 역대 최고치 40%에서 1월 말 38%로 다시 하락했다. 전임 정부 비판으로 인한 반사이익은 사실상 없거나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소환되는 경우는 주로 정부·여당이 설명하기 곤란하거나 비판받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과거처럼 정보 공유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유도한 방향으로 여론이 쏠렸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보를 갖고, 해석할 수 있는 민간 전문가들이 자료를 찾아 반박하다 보니 오히려 정부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300여일 동안 정부 인사 문제, 남북관계(북한 무인기 사태), 전세보증금 사기, 난방비·전기세 인상 등이 쟁점이 됐다. 이때마다 정부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 탓’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다. 해당 문제의 원인이 정말 문재인 정부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여론조사 등으로 확인되는 민심은 ‘전임 정부 실책을 둘러싼 진실게임’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라는 점에 맞춰져 있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이하에서 정체를 보이는 현상은 이를 방증한다. 지지율 반등을 원한다면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달라는 요구다.

‘문재인 정부 탓’이 가린 것 실제로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 문제에 대한 해법보다 ‘문재인 정부 비판’이 부각되는 상황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특히 새 정부 집권 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이 남북관계다.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서울, 강화, 파주 등 상공을 5시간 넘게 비행한 이른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 군은 북한 무인기 격추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공군 원주기지(제8전투비행단) 소속 KA-1 경공격기 1대가 이륙 중 강원도 횡성 일대에서 추락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당시 북한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근처를 비행했을 가능성을 부인했다가 “무인기의 항적을 추가 분석한 결과 (대통령실이 포함된) 비행금지구역의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바꿨다. 또 합참이 실시한 북한 무인기 대응작전에 대한 전비태세검열 결과에선 각급 부대 간 상황 보고·전파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해당 사건의 쟁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우리 군은 무인기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육군 군단급 무인기 ‘송골매’ 2대를 군사분계선 북쪽 상공까지 보내 정찰 비행을 했다. 국방부는 “자위권 차원의 상응 조치로, 유엔 헌장이 보장하는 합법적 권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을 조사한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지난 1월 26일 북한 무인기가 수도권 영공을 침범한 행위와 이에 맞대응해 한국이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낸 행위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무인기 침공 사건으로 국방, 외교 등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이 쏟아졌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문재인 정부 탓이냐, 아니냐’의 정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불을 댕겼다. 사건이 발생한 하루 뒤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보여주고 더 강도 높은 대비태세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해준 사건”이라며 “2017년부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전무했다는 것을 보면, 북한의 선의와 군사 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 국민이 잘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발언만으로는 국방을 책임진 현 정부의 잘못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오히려 사건의 주어가 ‘문재인 정부’로 바뀌면서 무인기 침공 사건은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따지는 사안이 됐다. 당장 민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9월 이미 육군이 드론봇 전투단을 창설했다”며 “초소형 드론을 잡는 무기체계도 2021년 6월 시범 운용을 시작했다. 경찰도 드론 테러 대비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있는 시스템도, 전투단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잘못”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본질은 사라지고 ‘네 탓이냐, 내 탓이냐’의 정치 공방만 남았다.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문재인의 군대, 윤석열의 군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 발언으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무인기 침투에 대한 준비를 전혀 못 했다는 점만 노출한 셈”이라면 “무인기 대응 체계를 알고도 전 정부 탓만 했다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정말 인수인계를 못 받았다면 그 자체로 무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지난 5년간 북한의 선의와 군사 합의에 의존했다고 지적하는 것 역시 같은 시기 한국 국방력이 세계 군사력 지수 6위로 평가받았다는 객관적 지표를 무시한 인상평가”라며 “비판이 공감을 얻으려면 적어도 평가기준을 명확히 밝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말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을 두고 한 예비역 장군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공체계 전반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은 이스라엘 아이언돔과 같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인데 애초에 북한군이 쏘는 미사일, 장사정포와 이를 잡는 데 사용하는 미사일이 가격 측면에서 수십, 수백 배 차이가 나는 비대칭 상황”이라며 “여기에 값싼 무인기까지 추가되면 화력이 아닌 경제력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고 보는 태도는 비단 남북관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불거진 난방비 문제도 그렇다. 한국은 ‘원료비 연동제’라고 해서 난방에 사용하는 도시가스의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변동에 요금을 맞추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원료비 연동제는 정책적 재량 없이 기계적으로 무조건 적용되는 제도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서민 경제위기가 본격화되자 2020년 7월부터 원료비 연동제 시행을 유보했다. 해당 결정이 현재 정부와 여당이 비판하는 ‘제때 가스비 인상을 하지 않고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상황에 따라 가스비 인상을 억제한 것은 문재인 정부 때만의 일도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2008년 3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32개월간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했다.

정부가 정책 재량권을 갖는 이유는 ‘국민 생활, 경제가 무너지지 않게 돕는다’는 대원칙 때문이다. 선의든, 지지율 제고를 위함이든 이전 정부들은 권한을 이해하고 사용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스요금 인상을 정책으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원칙은 같아야 한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사실상 ‘적자’)이 누적돼 반드시 ‘지금’ 해소해야 한다면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등의 조치를 취하고 선제적으로 문제를 알려야 한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 탓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을 해야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 및 여당 관계자의 난방비 인상 관련 행보는 ‘대책’보다는 ‘탓’, ‘어쩔 수 없으니 참아보라’는 식의 요구가 주를 이룬다.

특히 난방비 문제는 돌고 돌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비판과 연결된다. 의구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 7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난방비 폭탄의 원인이냐’는 질의에 “일정 부분 영향은 미쳤다”며 “LNG 비중이 줄고 원전 비중이 늘면 당연히 가스나 전기요금 부담은 경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국내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은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오히려 늘었다. 정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론과 재반론거리만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셈이다.

과거 결정에 대한 타당성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제에 대한 미래의 대책이다.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요금을 인상할 것이고, 서민 부담 경감을 위한 장기적 대책은 있는지, 대책이 있다면 언제부터 혜택을 볼 수 있는지’ 등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 철학’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탓’만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대책 도출과 이를 검증할 논의는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은 무엇인가 사회적 문제가 전·현 정부 간 정쟁으로 비화되는 상황은 근원적 의문을 갖게 만든다. 첫째는 ‘문재인 정부 탓’이 지지율 반등 효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왜 임기도 끝난 정부를 계속 소환하느냐는 점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5년차 4분기 지지율은 42%였다. 직선제 이후 들어선 정부 중 임기 마지막 분기 지지율이 가장 높다. 같은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1년차 1분기 지지율이 50%, 2분기 29%, 3분기가 30%였다. 전·현 정부 간 지지율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전임 정부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절대적 비토(veto)층만 두껍게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이 교수는 “지지율 상승이 아닌 하락 측면에서 효과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정권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 탓을 언급해 30% 이하로 내려갈 뻔했던 지지율을 방어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이를 보다 구조적으로 세분화한다. 윤석열 정부의 ‘전임 정부 탓’이 겨냥하는 것은 사실 국민 일반이 아닌 보수층으로 국한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진영 간 대결구도가 첨예화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에게 투표한 약 48%만 뭉친다면 국정을 운영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정치적 확장성보다 결집을 통한 권력 수호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정부의 ‘문재인 정부 탓’은 앞으로도 반복, 지속될 확률이 높다. 이는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의 유효기간은 집권 후 6개월 정도”라는 일부 전문가들 분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운다. 배 소장은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며 사실상 ‘레임덕’에 빠지지 않는 이상 기존 방식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오히려 지지율이 빠질 때마다 ‘문재인 정부 탓’을 하는 구조가 관행처럼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전 정권 탓하기가 현 정권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막는 안전판으로 작동하고 있어서다.

 

 

 

 



지지율과 연결해 정부 행보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의 분석도 유사하다. 박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비토층이 두꺼워 아무리 잘해도 전체 지지율이 최대 55%를 넘기기 어렵다”며 “특히 중도층에서는 비토층이 60%를 넘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핵심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얻은 약 48% 정도의 지지층을 지켜내는 일인데 이들은 첫째는 문재인 정권의 정책을 다 바꿔달라, 둘째는 정치적 태도를 반대로 해달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적어도 윤 대통령의 문재인 정부 ‘뒤집기’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둘째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탓’을 부각시키다 보니 대결 외에 현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 방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권 내부에서 통용되는 국정운영 철학은 외부에서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효능을 발휘한다. 주간경향은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외부’ 전문가들에게 ‘집권 1년여를 앞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 철학을 무엇으로 보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없다(모르겠다)”, “일단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달린다”, “전형적인 보수정권 모습에 가깝다”, “자유”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중 윤석열 정부가 세운 국정운영 철학이 없다면 정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안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독특한 것은 과거 정부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신들만의 국정운영 철학이나 가치를 가지고 국민의 평가를 받았는데 이 정부는 ‘윤석열 표’라고 할 만한 시대정신이나 정책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며 “(여소야대 상황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정부와 여당이 국정주도권을 쥐고 가야 함에도 스스로 문재인 정부를 소환해 과거의 향수만 자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굳이 국정철학을 찾는다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한 ‘자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인지는 설명이 잘 안 된다”라며 “국회도, 정당도, 언론도 지금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