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2

나주목사 내아, 금학헌(琴鶴軒)

나주곰탕집에서 곰탕 한 그릇 후딱 먹은 뒤 바로 부근에 있는 나주목 수령의 살림집 내아(內衙)를 돌아본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나주목사가 집무를 보던 동헌은 사라지고 없고, 관아의 정문인 정수루(正綏樓)와 관사인 내아가 남아 있다. 2층 누각 정수루 오른쪽 뒤편 고목이 서 있는 곳에 바로 나주목사 내아가 자리잡고 있다. 정문 이름 '정수(正綏)'는 갓끈을 단정히 한다는 의미로 관아에 들어서는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표현한 것이다. 정수루 누대 위에는 커다란 북이 걸려 있는데,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선생이 47세이던 1584년 나주목사로 부임할 때 설치하여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는 신문고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내아는 정수루에서 서쪽으로 약 70m 되는 곳에 있다. 문간채 중앙으..

눈내리는 날의 나주목 객사, 금성관(보물 제2037호 )

동료들이 나주곰탕집에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보물 제2037호 나주목 객사 금성관(錦城館)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갑자기 눈발이 빗기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는 눈이 강한 바람에 실려 눈보라가 되어 렌즈를 덮친다. 사진을 찍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객사의 정문은 망화루(望華樓).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형태의 팔작지붕집이 웅장한데, 전라도에서는 전주부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였던 나주목의 위엄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2003년에 복원한 모습이라 한다. 이곳 망화루 앞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천일이 출병식을 거행했던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그 외에도 영조 때 나주괘서사건, 단발령 의거, 일제강점기 항일학생운동 등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정문을 지나니 너른 뜰 가운데 내삼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