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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남도여행법> 손에 들고 남도로 여행 떠날까

모산재 2014. 8. 24. 12:01

 

티스토리 '바람흔적'을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김천령은 오마이뉴스 여행 기자 김종길,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글을 쓰는 여행 작가다. 이 사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의 친형이니까.

 

이 친구가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남도여행법>이라는 책을 냈다. 책을 낸다고 하기에 그 힘들고 귀찮은 과정을 견뎌야 하는 책을 왜 낼까, 싶었다. 몇 년 전 위를 다 들어낸 뒤 몸까지 바짝 말라 상태라 더욱 걱정되었다. 좁쌀보다도 훨씬 작은 점 하나가 암일 가능성 있다고 형제들과는 상의도 하지 않고 그 엄청난 수술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그 좋아하던 술과도 인연을 끊어버리고 사는 동네 진주에서 가까운  남해안 지역을 경전선 타고 부지런히 다닌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보내온 책, 장정이 내 맘에 꼭 들었다. 국판 크기의 작은 책, 녹색바탕에 군더더기 없는 흰 글씨의 책 이름...  

 

 

 

머리글에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경전선"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잘 모르거나 과장일 것이다. 내가 타 본 바이칼 관광열차는 달리는 게 아니라 걷는다. 걷다가도 경치 좋은 곳에서 수시로 관광객을 토해내고 적게는 10분 많게는 한 시간 반까지 자유시간을 준다. 80km 를 가는데 하루가 다 걸린다. 완전 게으름뱅이 기차다.

 

경전선은 입대할 때 타본 기억밖에 없지만 환바이칼 열차에 비하면 빛의 속도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경전선은 관광열차가 아니니까.

 

 

 

삼랑진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수많은 간이역에서 마을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고 시속 30km 정도로 달리는 경전선은 '빨리빨리'에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시간을 내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길이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곳에선 그만큼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시속 30km로 달리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시속 70km 만큼 물러서는 듯한 착시가 생긴다. 착시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충분한 힘이 된다.

 

시골 마을이라고 어찌 변화가 없겠는가. 그럼에도 경전선 간이역에서 내려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얼마나 낯선 세계 속으로 빨리 멀어지고 있는가를 절감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괜찮은 안내서라 생각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전선의 출발점인 삼랑진 이야기로부터 글이 시작된다.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시간이 멈춰버린(타임 슬립) 듯한 풍경, 과거로의 시간 여행으로 들어서는 느낌이 된다.

 

서점과 미용실과 보석방과 한약방과 택배회사와 식당과 철도관사를 하나하나 살피고, 택시기사와 동네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5일장인 송지시장을 둘러보고 성당과 교회까지 둘러본 다음 마을의 일본식 가옥과 정자와 비석까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걷는 거리가 8km. 뭐 이런 방식이 이 친구의 여행법이다.

 

 

그리고 매 여행지마다 둘러보는 법을 아래처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쌍봉사 운주사 등 절도 들르고 김동리 한용운 이병주 윤동주 매천 황현 <태백산맥) 등 문인이나 문학과 관련된 여행지, 차밭 청보리밭 코스모스밭 등 아름다운 풍경도 빼 놓지 않는다. 진주냉면, 해장국, 비빔밥, 메밀묵, 재첩국, 손두부, 소고기, 꼬막, 덕갈비 등 여행자에게 매우 소중한 맛집 소개도 잊지 않는다.

 

역전 다방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들어가서 이제 할머니가 된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70~8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내부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발소에 들어가서는 이발소 주인을 만나고 간이역장과 떡방앗간 주인과 농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살가운 대화를 나눈다. 

 

 

 

경전선 60개 역 중 폐역이 16곳,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10곳, 그래서 기차가 서는 역이 모두 34개란다. 이 역들이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경전선 복선화 공사와 함께 굽이굽이 느리게 달리던 기차길은 직선화되고 있다 한다. 주변 풍경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경춘선이 전철로 바뀌면서 수도권 여행자들은 속도를 얻고 풍경을 잃었다. 춘천에 이를 때까지 차창으로 굽이굽이 펼쳐지는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던 경춘선은 사라지고, 자리 먼저 차지하기 경쟁을 한바탕 치른 다음 오로지 터널 속을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굉음 속 어둠과 밝음의 교차에 어지럼증을 앓는 전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잃은 것이 어찌 풍경뿐이겠는가? 나는 지금 경춘선 기차가 사라진 것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 그 아쉬운 마음을 경전선에서 달랠 수 있을까.

 

속도를 통해 시간을 벌었지만, 정작 시간에게 소중한 것을 다 빼앗겨버리고 자기자신조차 잃어버린 삶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이 가을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기 위해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남도 여행이 하나의 좋은 방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도 여행은 여름보다는 가을부터 봄까지가 제격이다. 나도 이 가을 남도로 떠나볼 생각이다. 아우가 발로써 쓴 <남도여행법>을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