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자료 16

제주 4.3의 슬픈 증언 (11)

​다음 글은 제주 4.3의 아픈 진실을 공유하기 위하여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43059을 퍼온 것입니다. 1~10회의 글은 '한국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 4.3을 더 잘 알려면 굴렁쇠님의 홈페이지(http://blog.ohmynews.com)를 방문하시는 게 더 좋을 것입니다. ▲ 제주 표선면 가시리 마을. 4.3의 아픔을 파묻은 채 59년의 세월을 버티어 왔지만 그날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 중산간마을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비운의 마을. 이 마을에서 무려 500여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 폭염도 이 슬픔을 녹일 수 없다. 쏟아지는 땀도 이 노여움을 대체하지 못한다. 중산간마을을 찾아다닐 때마다..

제주 4.3의 슬픈 증언 (10)

다음 글은 제주 4.3의 아픈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굴렁쇠 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40616을 퍼온 것입니다. 1~9회분은 '한국 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잃어버린 마을, 제주 화북 곤을마을 전경. 별도봉 산자락 바닷가에 70여 가호가 모여살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지척에 두고도 찾아갈 수 없었다. 이별오름 별도봉을 걸어다녔던 수많은 시간동안 먼발치서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가슴만 쓸어내렸던가. 제주 4.3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화산섬 검붉은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마을. 저 살육과 폐허의 현장 속으로 피울음만 남기고 58년 전의 시간에서 그대로 멈춘 제주 화북 곤을마을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텅빈 수레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대량살육..

제주 4.3의 슬픈 증언 (9)

아래 글은 제주 4,3의 이픈 진실을 알리기 위해 굴렁쇠님의 글 http://blog.ohmynews.com/rufdml/136538을 퍼온 것입니다. '한국근현대사 자료' 카테고리에서 1회에서부터 8회까지 퍼온 글을 볼 수 있습니다. ▲ 조천 선흘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다가 집단총살 당했던 목시물굴. 여긴 내 집이 아니라네 내가 거처할 곳이 아니라네 잠시 살러온 것 뿐이라네 저기,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두 참 남짓 멀지 않은 곳이라네 굴에서의 삶은 입에 곡기가 없었다네 굴 속에서 끌려나온 나의 몸이 총탄을 실컷 먹었다네 그건 나의 집의 밥이 아니었다네 그 위에다 휘발유, 내 몸 위에 불이 얹어졌다네 그건 나의 집의 온돌이 아니었다네 그 위에 나의 시신 위에 살아남은 자들이 흙을 덧씌워줬다네 그건 나의 집..

한승조,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

한승조, "일본의 식민지배는 축복" /2005년 3월              자유시민연대·고려대'사과문'수습 나서 일 네티즌들 반색 "한국인들도 바른 역사 배워야" [데일리안 이주영 기자]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글을 쓴 것이 알려지자 파문이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자유시민연대는 4일 “우리는 한 교수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특히 일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나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대수롭지 않은 일인양 주장한데 대해서는 분노를 느낀다”고 사과문을 내걸었다. 또 자유시민연대는 비난이 폭주하자 대책회의을 여는등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학교도 이날 한 교수에 대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기로 결정했다...

"친일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스크랩]

“친일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시사IN | 기사입력 2008.08.14 10:24 | 최종수정 2008.08.14 11:36 광복 63주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에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는 속설이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과연 현실은 어떨까. 은 이 속설이 믿을 만한지 알아보기 위해 그 실상을 직접 들여다보기로 했다. 조사 범위는 매국 조약 체결 등에 가담해 그 대가로 귀족 작위와 은사금, 은사 토지를 하사받은 매국형 친일파 10여 명과 그 후손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또 일제 식민지 통치기구의 국회 격이라 할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참의를 지낸 상당수 친일파 후손도 살펴보았다. 대표적 친일파 명단을 놓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족보를 추적해 확..

제주 4.3의 슬픈 증언 (8)

이 글은 4.3의 진실을 널리 알리고 있는 굴렁쇠님의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rufdml/130384에서 퍼온 것입니다. 65여 년 전 그날의 아픔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기를 바라며... 통곡마저 사치스러운 절망의 땅에서 ▲ 아픔의 현장을 찾아가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 길목마다 수없이 세워져 있다. 제주 모슬포로 가는 길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싸늘한 기운이 마중 나와 있었다. 수없이 이 길을 걸어 다녔지만 다시 찾을 때마다 명치끝을 찍는 아픔은 여전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왔던 땅, 이재수 민란의 거점지, 제주민중의 아픈 속살처럼 태평양 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몰골을 드러낸 곳. 아, 그리고 통곡마저 사치스러운 제주 4.3의 아픔이 한국전쟁까지 이어진 절망의 땅. 짙은 ..

제주 4.3의 슬픈 증언 (7)

이 글은 굴렁쇠님이 쓴 글(http://blog.ohmynews.com/rufdml/128018)을 퍼온 것입니다. 4.3의 아픈 진실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천명 / 강요배 그림 섬, 그 민중의 뿌리가 초토화 되다 제주도를 '빨갱이섬'이란 딱지를 붙인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화산섬 제주를 '피의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섬, 그 민중의 뿌리는 대량학살의 광풍으로 흔들리고 뽑히고 짓이겨졌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전개된 '초토화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주 4.3에서 가장 참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이 강경진압작전은 송요찬 9연대장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10월 17일, 송요찬 중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