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꽃샘추위 속 봄꽃 소식 2

모산재 2006. 3. 22. 09:49

 

못골 마을 앞 개울가에는 산수유나무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샛노란 꽃이 생강나무 꽃과 사뭇 닮았다. 꽃잎이 5장인 생강나무와는 달리 산수유 나무의 꽃잎은 4장인데, 맨눈으로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꽃과 사뭇 닮아 헛갈리기 쉬운 꽃이다.
ⓒ 김희년
김종길 시인은 '성탄제'라는 시에서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라고 했지만, 이 나무는 산 속에서 자라는 야생이 별로 없다. 생강나무가 대개 산에서 절로 자라는 데 비해, 산수유는 주로 민가 주변이나 밭 주변에 약용으로 재배한다.

대모산 너머 쟁골과 교수마을, 그리고 못골의 들판을 돌아본 후 다시 겨울 풍경인 대모산을 되넘는다. 개포동으로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갑자기 숲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아…. 거기에 그토록 기다렸던 생강나무 노란 꽃이 점점이 불을 밝히고 있다.

▲ 생강나무. '알싸한 향기에 취하게 만든 김유정의 '동백꽃'이 바로 이 꽃이다.
ⓒ 김희년

▲ 생강나무. 잎과 꽃이 생강 맛과 향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김희년
'점순이'가 '나'를 떠밀어 '알싸한 향기'에 아찔하게 만들던 김유정의 그 '동백꽃'이 바로 이 생강나무 꽃이다. 사진에 담기 전, 본능적으로 코를 꽃술에 대본다. '알싸한 향기'에 멀어져 가는 시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등산로 곁에 만든 화단에선 비비추 새잎들이 힘찬 생명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올 봄에 만난 가장 싱그럽고 풍성한 푸른 잎. 양지에서도 겨우 땅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있었는데, 바람이 없는 곳이어선지 응달인데도 잘도 자랐다.

▲ 비비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요즘 원예용으로 많이 심는다.
ⓒ 김희년
대모산을 내려와 양재천으로 향해 걷는데, 얼어붙은 가지에 송이송이 핀 해맑은 매실 꽃이 눈에 들어온다. 개원중학교 담장 밖에는 매화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어쩌자고 이 나무만 꽃을 피우고 있다.

▲ 매화. 매실나무로 많이 불린다.
ⓒ 김희년
"매화의 한 살이는 추울지언정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같은 혹한에 맞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오연한 기품이 대견스럽다.

양재천 풍경도 멀리 봐서는 아직 겨울 풍경 그대로 퇴색한 갈색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개울가에는 제법 싱그러운 풀잎들이 한뼘씩 자라 녹색 지대를 넓히고 있다.

▲ 양재천 물가에 푸르게 자란 풀.
ⓒ 김희년
이렇게 강 언덕에 짙어가는 풀을 바라보면 정지상의 '송인'이라는 시가 절로 떠오른다. 파릇파릇 자란 것이 어찌 풀이겠는가.

비 갠 강 언덕엔 풀잎이 파릇파릇
임 보내는 남포 나루엔 슬픈 노래 사무치네.
대동강 푸른 물은 그 언제 다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산책로 주변 언덕에도 마른 풀 속에 숨어 애기똥풀들이 제법 파랗게 자랐고, 배암차즈기, 지칭개, 달맞이꽃들도 잎들이 너풀너풀해졌다. 양재천의 북쪽 뚝방에 올라서자 개나리꽃이 노란 꽃들을 터뜨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미동도 없던 개나리가 아파트를 배경으로 따스한 볕바라기를 맘껏 해서인지 군데군데 환하게 피었다. 다 피지 않은 것도 곧 터질 듯 꽃봉오리들이 부풀어 올랐다.

▲ 개나리. 머지않아 노랑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풍경화를 그릴 듯이 꽃봉오리들이 벙글고 있다.
ⓒ 김희년
산책로 주변에는 큰개불알풀 꽃들이 지고 있다. 볕이 따스햇던 탓인지, 땅에 붙어 자라는 이 녀석만 꽃을 일찍 피우고, 꽃잎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 있다.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기도 한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참 잘도 붙인 이름이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꽃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는가.

▲ 큰개불알풀.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리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 김희년
언덕받이엔 쇠뜨기 생식경도 쏘옥 쏙 솟아 올랐다. 쇠뜨기라는 이름은 소가 뜯어 먹기 좋아해서 붙여진 것이다. 봄 언덕이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의 하나가 파랗게 자란 쇠뜨기 밭에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운 모습일 것이다.

▲ 쇠뜨기의 생식경. 풀잎이 나기 전에 번식을 위해 메마른 대지 위로 솟아 오른다.
ⓒ 김희년
개울가에는 버들개지도 탐스런 꽃을 피우고 있다. 남쪽에서야 2월에도 한창 꽃을 피우는데, 양재천의 버들개지는 지금이 한창인 듯 보인다. 갯버들이라고도 불리는 이 버들개지야말로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해 주는 꽃이다.

▲ 버들개지. 버들강아지, 갯버들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 김희년
풍년화만 만발했을 뿐, 대부분의 꽃들은 이제 피기 시작했을 뿐이지만 서울 하늘 아래에도 봄은 성큼 들어서고 있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생명은 쉼없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