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꽃샘추위 속 봄꽃 소식 1

모산재 2006. 3. 22. 09:35

 

누군가가 기웃기웃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누굴까? 그리고 눈길이 자꾸 창문 너머로 향한다면 당신 마음에 봄이 왔다는 증거이다.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고 바람까지 몹시 심하게 분다. 겨울보다도 더 매워 꽃샘추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날씨에 집에 앉아 있자니 좀이 쑤셔 봄 소식을 찾으러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살을 에는 듯하다. 괜히 나섰나, 피었던 꽃들도 다 얼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지난 주 토요일 복수초다, 변산바람꽃이다,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속속 당도하건만 온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서울의 꽃소식을 찾으러 대모산을 넘었다. 산 속은 생명이라곤 미동도 없는 낙엽 쌓인 겨울 풍경 그대로이다.

실망한 마음으로 대모산을 되넘어 내려오다 자연학습원을 돌아보기로 한다. 입구 풍경은 산수국 마른 이삭들만 보이는 여전한 겨울 모습인데, 산괴불주머니가 푸른 싹을 제법 키우고 있다. 꽃 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 산괴불주머니
ⓒ 김희년
그래도 아쉬워 불국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비탈길 양옆에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생강나무꽃이 벌써 피었나, 아니, 산수유가 피었구나! 하고 다가가 보니, 생강나무도 산수유도 아니고 풍년화가 피었다. 탐스러운 꽃이 풍년을 연상하게 해서 붙여진 그 이름 풍년화! 봄기운이 더욱 완연해진 따스한 날씨에 풍년화엔 무수한 벌조차 잉잉대고 있다.

▲ 풍년화. 일본에서 들여온 조록나무과의 관상수로 생강나무나 산수유나무보다도 더 이른 봄에 꽃이 핀다.
ⓒ 김희년
올봄 가장 먼저 풍년처럼 풍성한 꽃소식을 접한 기쁨에, 또 다른 꽃 소식을 맞으러 일주일이 지난 오늘 다시 대모산을 넘는다. 여전히 등산로 주변은 겨울 풍경 그대로다. 양지바른 쟁골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뒷밭 언덕에 꽃다지들이 희미한 노란 꽃을 내밀고 있다.

▲ 꽃다지. 이름없이 살아가는 민초를 닮은 정겨운 꽃이다.
ⓒ 김희년
한 송이 꽃으로는 너무 작지만, 꽃대가 길게 자라 여럿이 어울리면 제법 작은 유채꽃밭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꽃이다. 민중가요의 서정성을 넓힌 김호철의 '꽃다지'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르며 지난날에 대한 감상에 잠시 젖어본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도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진정 그리움이 무언지
사랑이 무언지 알 수 없어도
퀭한 눈 올려다본 흐린 천정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언덕엔 무덤이 있다. 지난 가을 조개나물 어린싹이 많이 자라고 있었건만, 비교적 이른 봄에 핀다는 조개나물은 생명의 흔적조차 없다. 다만 양지꽃만이 곧 꽃을 피우려는지 꽃망울이 부풀고 있다.

▲ 양지꽃. 볕 좋은 땅을 좋아해서 양지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김희년
쟁골에서 길 없는 산허리를 가로질러 교수마을로 들어선다. 교수마을 동쪽 무덤이 많은 언덕바지 양지쪽에 양지꽃 한 포기가 홀로 촛불인 듯 샛노란 꽃을 피우고 영하의 찬 바람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양지꽃
ⓒ 김희년
진달래도 꽃봉오리가 벌어지려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다만 몇몇 꽃봉오리들이 아래의 사진처럼 붉은 꽃잎을 살짝 내밀고 있을 뿐….

▲ 진달래꽃
ⓒ 김희년
마을 가까운 양지바른 텃밭에는 돈나물이 풍성히도 자랐다. 이처럼 싱그러운 봄빛이 또 있을까 싶게….

▲ 돈나물. 돌나물이 표준어이지만 돈나물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
ⓒ 김희년
마을 밭과 길가 언덕바지엔 어느새 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 봄을 가장 먼저 알려 주고서는 소문 없이 씨앗을 맺고는 조용히 사라지는 꽃이다.

▲ 별꽃
ⓒ 김희년
못골까지 이르는 길가 언덕엔 냉이꽃도 군데군데 활짝 피었다. 이 녀석은 걔 중에서도 가장 실하게 자랐다. 잎사귀도 너풀너풀 풍성하게 자랐고 꽃도 크고 시원스럽게 피었다.

▲ 냉이
ⓒ 김희년

지난주에 피기 시작했던 개불알풀 꽃들은 소문 없이 지고 있다.

이제 대모산을 되넘어가서 양재천의 꽃소식을 맞으러 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