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내 고향 겨울 풀과 나무들 (5)

모산재 2006. 1. 31. 18:26


06. 01. 29. 설날 성묘를 마친 후


따스한 햇살에 이끌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 집 앞 개울길로 나섰습니다.


아직은 밤 공기는 차가워 생명들의 겨울잠은 끝나지 않았지만, 씨앗들의 기지개켜는 소리는 들리는 듯도 합니다. 개울물 소리는 한결 명랑합니다.


집 앞을 흐르는 개울을 따라 보이는 풀과 나무, 그리고 풍경을 담아보았습니다.

 

 


꼭두서니 열매


 



검은 열매가 꼭 쌍으로 달린다. 하나만 보이는 것은 이미 열매가 떨어졌기 때문. 예전엔 꼭두서니 뿌리로 붉은색 염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줄기는 네모나고 촘촘한 가시가 나 있다.


 


하늘타리 열매


 

 



시골 사람들은 '하늘수박'이라 부른다. 물가 언덕에 야생으로 자라는데, 예전엔 약재로 쓴다고 이 열매를 구하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걸 거두어갈 사람도 없는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뿌리는 고구마처럼 굵어 녹말을 식용으로 쓰고, 열매와 씨앗은 염증을 낫게하는 약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버들개지


 



갯버들이라고도 한다. 양지바른 개울에 솜털같은 수꽃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예전엔 이것을 따서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냥 풍경으로만 남았다.


 


배풍등


 

 



이 녀석들은 내 고향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개울가에서 처음 발견해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곳 외에는 아직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 종자를 받아 다른 데도 뿌려 놓았는데, 글쎄 싹이 나 잘 자라줄란가?


열매가 이렇게 아주 작지만 가을이면 가지꽃과 비슷한 꽃이 피는 가지과의 덩굴 식물이다. 예전에는 배탈과 설사를 다스리는 약으로 다려 먹었다고 한다. 또,  '설하홍(雪下紅)'이라 불릴 정도로 눈내린 덤불에 빨갛게 매달린 열매가 꽃보다 아름답다. 


 


개맥문동 열매




집 주위 논 언덕엔 조랑조랑 까만 맥문동 열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질긴 생명력이 까만 열매와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 아름다운 녀석이 지금은 도회로 불려나와  길거리나 정원 나무 그늘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지.


 


수영 열매




여름에 그 풀잎을 미리 확인해 두지 않으면 소리쟁이와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씨앗이 비슷하게 생겼다. 물론 수영도 소리쟁이 속이니 촌수로 그리 멀지 않으니 당연히 닮았을 수밖에... 어쨌든 열매가 참 탐스럽다.


 


고향 집과 마을 풍경




맨 오른쪽 뒤편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이미 문을 닫은 지 십수 년. 한때는 전교생이 400여 명이나 되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운동장이 잡초 덤불에 덮였다. 


 


닥나무

 



집 가까운 논 언덕 50여m 정도에 빼곡히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껍질은 한지(창호지 등)를 만드는 재료로, 한눈에 세로 방향의 섬유질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엔 이 녀석 질긴 껍질을 벗겨내어 팽이 채로 얼나나 많이 썼던가! 방패연 만드는 창호지가 되는 나무라는 생각에 또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던지...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인지, 나무가 교목으로 훌쩍 키자람한 채 숲을 이루었다.  

 



띠풀


 



닥나무들 서 있는 바로 옆 언덕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띠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봄이 되면 이 녀석들이 번식을 위해 통통한 이삭을 배는데, 옛날 시골 아이들은 그걸 뽑아서 먹었는데, 그게 바로 삘기다. 우리 고향에서는 '삐삐'라고 불렀다.

 



솔새


 

 



띠풀 언덕 아래엔 솔새 언덕이 진을 치고 있다. 양지 바른 곳이라 단풍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었는지, 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


 


솔새와 개솔새


솔새. 솔새는 이삭이 여러 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아주 통통하게 보이지만



 

개솔새. 개솔새는 이삭줄기가 가늘게 나와 아래 위로 갈라져 달리는데, 많이 가녀려 보인다.


 



언덕 아래서 바라본 마을 풍경




저 앞 언덕에 기대어 볕바라기를 하며 이 겨울날이면 방패연이며 가오리연을 얼마나 많이 날렸던가? 연 싸움도 지치면 바로 요 앞 개울로 나와 썰매를 탔었지... 물에 풍덩 빠지면 풀언덕에 불을 놓고 젖은 양말을 말리기도 했었지.


그리고 정월 대보름 저 오른 쪽 동녁 산에서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면, 겨우내 날리던 동네 연들을 다 매단 달집을 태우고 아이들은 쥐불놀이로 이 언덕들에 불을 옮겨 붙이며 삼태성이 이울도록 놀았다.


 


버들개지 핀 개울


 



집 앞에서부터 여기까지 흘러내리는 개울은 아이들의 겨울 놀이터, 썰매타는 곳이었다. 예전엔 개울 곳곳엔 물을 가둔 보가 많아 얼음지치기엔 안성맞춤이었는데, 지금은 경지 정리로 보를 다 파 버려 개울이 좁아졌고 물살도 급해졌다.


이젠 연 날릴 아이도, 썰매 탈 아이도 다 사라진 텅빈 시골...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버들개지 솜털꽃 간질이는 바람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