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난 뒤에 섬의 서쪽인 개머리 구릉으로 오르기로 한다. 개머리 구릉은 아래쪽으로는 숲이 두르고 있지만 위쪽은 숲이 거의 없고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일러주는 대로 해수욕장 서쪽을 따라 이동한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해안으로 내리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니 덥지는 않다.
평탄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완만한 큰말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넓게 펼쳐지고, 토끼섬으로 건너가도 될 만큼 물이 많이 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섬의 곳곳,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에는 이렇게 모래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바람이 해안의 모래를 실어 올려 만든 지형이 아닐까 싶다. 이보다 훨씬 대규모인 대청도 모래언덕(사구)이나 신두리 모래언덕도 바닷바람이 만든 것이리라.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가서 모래 미끄럼을 타기도 하는 모양이다. 둔황의 명사산 모래썰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작은 모래언덕도 탐방객에겐 신기한 존재일 것이다.
모래언덕을 좀 지나자 개머리 구릉으로 오르는 길의 흔적이 나타난다. 바다를 뒤로 하고 오르는 숲길은 작고 아늑하고 호젓하다. 숲은 거의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곳의 뚝갈은 육지의 것에 비해 잎이 유난히 넓고 톱니도 커다란 느낌이다.
숲속에 나래새로 보이는 것이 많아서 찍어 보았다. 숲속이지만 여전히 심하게 바람이 불어서 상이 좀체로 잡히지 않아 애를 먹는다.
한뼘도 안 되는 꼬맹이 파리풀이 귀여워서 사진 한방 서비스한다.
산 중턱까지의 짧은 숲을 통과하자 금방 환하게 광활하게 펼쳐지는 초원지대로 들어선다.
너머 쪽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풀밭이 넘실거리는데, 기대했던 대로 금빛 꽃송이들을 환하게 피운 금방망이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섰다.
내려다본 해수욕장과 토끼섬. 토끼섬은 이제 걸어가도 될 정도로 물이 빠진 모습이다. 왼쪽 뒤로 보이는 섬은 문갑도
해수욕장과 그 뒤로 보이는 도로, 산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덕적도
토끼섬,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도와 각흘도, 그 뒤를 지키고 선 선갑도
금방망이
산박하
능선으로 접어드는 곳, 전망이 툭 트인 곳에서 사방을 둘러 본다. 문갑도가 보이는 동쪽 방향
가도, 각흘도, 선갑도가 나란히 포개어져 보이는 남동 방향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세 개의 바위섬 선단여가 보이는 남쪽 방향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 구릉의 바위 위에 염소가 보여 클로즈업해 보았다. 풍도가 그랬듯이 이 섬에도 방사한 염소가 야생화하여 다니고 있다.
선단여를 클로즈업시켜 보았는데, 역광에 눈이 부셔 비스듬히 담긴 걸 몰랐다. 풍랑이 거셈을 하얀 물결에서 읽을 수 있다.
기지국이 보이는 북쪽 방향은 그여말로 망망무제로 섬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북서쪽 구릉 너머로는 연평봉(지형이 공룡을 닮아 공룡산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이 살짝 보이고, 동뿌리 덕물산이 보인다. 그 너머로 보이는 덕적도.
금방망이
쑥방망이
광활한 초원의 구릉을 따라 걸으니 마치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 가운데 있는 알흔섬을 걷는 듯 환상에 빠져든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의 억새와 금방망이 꽃물결. 남쪽의 홍도, 흑산도, 관매도, 청산도, 거문도, 매물도 다 가보고 서해의 선유도, 국화도, 백령도, 덕적도 다 가 보았지만 이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에 젖어들게 하는 섬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을 왜 여태 모르고 지냈을까.
바다의 빛깔도 저 바이칼 호수를 연상시키지 않느냐...
금방망이
CJ는 내후년에 착공하여 바로 이 개머리 구릉을 밀어버리고 2013년까지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섬의 98%가 CJ 수중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이 아름다운 천혜의 섬은 이제 풍전등화의 위기에 섰다.
시민단체, 환경단체에서는 골프장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인천시와 옹진군과 손잡은 CJ의 밀어부치기가 예사롭지가 않다. 현정부의 포크레인 경제정책이 또한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는 현실...
어찌할 것인가.
※ CJ 그룹의 탐욕으로 천혜의 자연 유산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 굴업도
<골프장 건설로 인한 굴업도 훼손 예상도>
평탄한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섬의 서쪽 구릉부는 거의 절토하여 생태계는 물론 지형까지 거의 파괴되는 모습이다. 먹구렁이나 왕은점표범나비 같은 희귀종은 섬의 동쪽으로 이주시켜 생태 보존을 하겠다는 게 그들의 아이디어란다. 그리고 섬의 다른 한쪽 멀쩡한 생태지역을 깎아서 생태학습장을 만들겠단다.
<사진 출처 : 한국녹색회 홈페이지>
CJ그룹의 계열사인 C&I 레저산업은 2005~2006년 덕적도 출신 주민 29명으로부터 굴업도 전체 면적의 98.5%를 사들였다. 당시 땅값은 평당 2~10만 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C&I레저산업(주)은 사업 진척을 위해 3.3㎡당 25~30만 원을 주고 땅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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