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초여름의 지리산 풀꽃나무 산책 (2) 피나무, 노각나무, 애기바늘사초, 함박꽃나무, 뱀톱, 쥐털이슬

모산재 2009. 7. 10. 18:59

 

초여름의 지리산 풀꽃나무 산책 (2) 


2009. 06. 27. 토요일

 

 

바람폭포를 지났을 때였던가, 계곡 등산로에 커다란 피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가지를 골짜기로 드리우고 있었다. 햇살조차 은총처럼 환하게 내리는 골짜기에서 피나무는 신목처럼 빛난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에서 자작나무가 그러하듯이….

 

 

 

 

등산로는 다시 오른쪽으로 꺾이고 좁은 산길을 따라 걷다가 이제 갓 꽃을 피우기 시작한 며느리밥풀꽃을 만난다. 한여름에 들어섰다는 증거다. 

 

 

 

그리고 오후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각, 드디어 가내소폭포에 이르렀다.

 

등산로 바로 곁에 흐르는 폭포이지만 짙은 숲그늘에 숨겨져 있어 신비감을 더하는 풍경이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 곳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소(沼)가의 서늘한 냉기가 산객의 발길을 얼어붙게 한다. 

 

  

 

 

입구에는 가내소에 얽힌 전설을 기록한 안내판이 섰다. 열두 해나 수도를 하던 도인이 폭포 위로 매었던 밧줄을 타고 건너다 마고할미 셋째 딸의 유혹에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도닦은 일이 허사가 되자 "나는 가네."하고 떠나가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퍼런 소의 이름이 '가내소'가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심한 가뭄이 들면 마천 사람들이 이 가내소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사실도 함께 기록해 놓았다.

 

 

↓가내소폭포가 시작되는 물줄기

 

 

 

산꿩의다리가 바위 끝에서 서서 흘러내리는폭포수를 굽어보며 하얀 꽃을 피웠다. 

 

 

 

폭포 곁에서 열매가 모기골보다도 더 모기를 닮은 사초류를 만나는데, 지리산 산행을 하는 내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늘사초류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냥 바늘사초인지 아니면 애기바늘사초인지 그도 아니면 개바늘사초인지... 기재문을 확인해보니 지리산에 애기바늘사초가 분포한다고 되어 잇다. 잎이 1mm 정도로 아주 가는 점을 보면 애기바늘사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각나무 시든 꽃들이 폭포주변 등산로를 덮을 정도로 떨어져 있는데, 나무를 올려다보니 아직 몇 송이 꽃들이 달려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만나는 오층폭포, 물줄기가 몇 번씩이나 방향을 틀며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는 풍경이 편안하고 아름답다. 시간에 얽매임 없다면 맑은 물에 흐린 눈 씻고 물소리 들으며 며칠이고 쉬어갔으면 좋으련만….

 

    

 

 

 

 

바위 틈 곳곳에 몇 송이 되지 않은 꽃을 피우고 있는 호골무꽃, 꽃의 색상이 엷어서인지 또렷한 영상을 잡기 어렵다.

 

 

 

골짜기 주변 곳곳엔 혼인색을 띠는 물고기들처럼 쥐다래들이 희고 붉은 무늬를 담은 잎사귀를 달고서 벌나비들을 유혹한다. 잎사귀 뒤에 꽃이 피었다는 광고이다.

 

 

 

잠시 골짜기를 벗어나 능선을 돌아가는 산죽밭 가에서 꽃망울을 맺고 있는 갈퀴를 만난다. 꽃이 피지 않아 아쉬운데 잎 모양으로 보면 개갈퀴(갈퀴아재비)가 아닐까 싶다.

 

 

 

전국의 산이 다 그러하듯 이곳 지리산도 조록싸리의 계절이다.

 

 

 

금마타리 어린풀일까. 그렇다면 지금쯤 꽃이 피어야 할 텐데 이 녀석들은 어째서 아무도 꽃대를 올리고 있지 않는 것일까.

 

 

 

계곡 상류로 오를수록 청초한 함박꽃이 싱그러운 얼굴로 나타난다.

 

 

 

꽃이 거의 지고 있는 죽대 한 포기가 나타난다. 둥굴레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꽃이 아래로 드리우는 둥굴레와 달리 실처럼 기다란 꽃자루 끝에 달린 꽃이 잎과 같은 방향으로 양팔을 벌리듯 달려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잎자루에 흐르는 듯한 넓은 날개를 달고 있는 이 녀석은 두메담배풀이다.

 

 

 

습기 있는 낙엽이 쌓인 곳에는 큰잎덩굴초롱이끼들이 자라고 있다.

 

 

 

관중으로 보이는데 잎몸이 한뼘도 안 되게 작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보고 싶던 왜갓냉이의 군락이 나타났지만, 꽃은 벌써 지고 없고 그 자리엔 바늘처럼 긴 씨방이 달렸다.

 

  

 

잎모양이 눈에 익었다 싶은 땅꼬마 풀들의 군락을 만났는데, 나중에야 이것이 쥐털이슬임을 깨닫는다. 꽃이 피었을 때의 모습만 보다가 좁쌀보다도 더 작은 꽃망울을 갓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낯선 탓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뱀톱도 드문드문 보인다.

 

  

 

잎이 둥근 두메갈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부분 꽃이 진 상태인데, 어쩌다 남은 꽃들은 꽃부리가 세 갈래로 갈라진 것도 있고, 네 갈래로 갈라진 것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개별꽃은 하나같이 왜소한 것이 지리개별꽃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게 한다. 뿌리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캐보았더니, 아래에서 보듯 땅속 덩이줄기들이 여럿 엉켜 있고 가는 줄기로 이어져 또 덩이줄기를 만드는 것이 지리개별꽃임을 확신하게 한다.

  

 

 

느릿느릿 풀꽃탐사를 하며 산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하늘빛에 어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해질 때가 가까와졌나 싶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내리던 햇살이 사라지고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다. 기상대 예보대로 비라도 오려는 건가.

 

이제 세석평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인지 오르는 비탈길이 더욱 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