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녘 지리해수욕장에서 국화리로 넘어가는 도중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길가에서 초분을 만난다.
지난 해에 돌아가신 분의 초분이라는데 처음 만나는 초분에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에 젖으며 우연히 현장에서 만난 이장 님으로부터 초분이라는 장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는다.
초분은 이름 그대로 '풀무덤'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나 관을 땅 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 등으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는 풀무덤이다. 초분을 하는 이유는 상주가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갑자기 상을 당하거나 죽은 즉시 묻는 게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될 때, 또는 뼈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민간 신앙 등의 이유로 행해졌다. 전염병으로 죽거나 객지에서 죽었을 때, 익사자의 경우 시신의 물을 빼기 위하여, 집안이 가난해서 장지를 구하지 못하거나 어려서 죽었을 경우, 또 공달(윤달)이 든 달에 죽으면 전염병이 돈다 해서 땅속에 묻지 않고 초분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초분의 형태는 평지장인 뉘움초분, 돌을 쌓고 시신을 올려두는 고임초분, 초분에서 육탈된 뒤에 특별한 사정으로 유골을 매장하지 않고 백지에 싸서 대설작이나 종이상자에 넣고 새끼나 노끈으로 동여매는 세움초분, 파묘에서 거둔 유골을 빠른 기일 내에 이장하기 위해서 편의상 하는 방법인 유지방이초분이 있다.
근대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남해와 서해의 섬 지방은 물론 육지에서도 많이 행하여졌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위생법 제정으로, 새마을운동으로 금지되며 지금은 일부의 섬 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초분을 한 지 2~3 년이 지나면 남은 뼈를 씻어(씻골) 땅에 묻는데 이장은 대개 2월 영등할머니가 오는 달이나 '공달', '손 없는 달'이라 하여 윤달에 많이 한다. 간혹 초분을 태워서 뼈를 추리기도 했다 한다.
현재까지 초분 풍속이 행해지는 지역으로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여수시 금오도·안도·개도, 고흥군 나로도, 신안군 증도·도초도·비금도, 영광군 송이도, 전라북도 군산시 무녀도, 부안군 계화도 등이 있다.
청산도 청계리의 초분(출처 : 웹사이트 '청산도' )
풍장 5
황동규
까마귀들 날고 떠들며
머리맡에서 서성댈 때
한눈팔다가 한 눈 파먹히고
팔 휘둘러 쫓으며 비스듬히 누워
한 눈으로 보는 세상.
고개 숙이고 나무들이 나직이
주고받는 말 들린다.
저녁 바람이 차다고
가을의 한가운데가 방금 지나가고 있다고
가을의 한가운데, 저 외마디 구름장을 뱉어내는
더 작은 구름장,
자지러지며 다시 내 눈을 뱉어낸다.
뛰고 날고 참 잘들 논다!
아직도 흥이 남아 있다니!
슬며시 돌아누워 날개 달린 자들에게
나머지 한 눈까지 내어맡길까.
아니면 헌 신발을 머리에 얹고
덩실덩실 춤추며 내려가볼까.
저녁 이슬에 아랫도리 적시고
한쪽 눈으론 웃고 다른 한쪽은 캄캄히 타오르며
맨발로 덩실덩실 내려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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