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섬 여행

소매물도(1) 절벽이 되어 파도를 맞이하는 섬

by 모산재 2009. 2. 16.

 

섬이 되어 살다가 섬이 그리워져 남해의 외로운 섬, 소매물도를 찾는다.

 

 

 

누님

저 혼자 섬에 와 있습니다.

섬에는 누님처럼 절벽이 많습니다.

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해안가를 거닐다가

소매물도 다솔커피숍에 철없이 앉아

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들의 뿔 사이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봅니다.

누님이 왜 섬이 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룻밤 묵고 갈 작정입니다.

 

 

정호승 시인이 썼다는 소매물도 문 닫은 분교에 남긴 '소매물도에서 쓴 엽서'라는 시 한토막이다. 욕망과 욕망이 거센 파도가 되어 부딪치는 도시에서 외로운 섬이 되었다가 파도가 버거워진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섬으로 찾아든다.

 

서울을 떠나 육지의 끝을 향해 달려서 닿은 육지의 끝 통영, 다시 그곳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바닷길을 달려서 닿는 곳이 매물도다. 거제도에서 바라보일 듯 떠 있는 섬이어서 거제시에 속하는 섬인 줄 았았더니 뜻밖에도 통영시 소속이란다. 더 정확하게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소속이다. 알고보니 이 일대의 섬들이 대부분 통영시 소속이다.

 

 

▼ 뒤로 보이는 어유도와 대매물도

 

 

 

 

 

대매물도를 돌아서자 눈 안으로 들어서는 작은 섬 소매물도. 멀리 오른쪽 수평선 안으로 하얀 몸을 바닷물에 잠그고 서 있는 바위섬, 삼여도를 뒤로 하고 소매물도 선착장으로 배는 들어선다.

 

 

 

 

 

선착장에서 올라서면 해안 비탈에 가득 들어선 집들. 나중에야 확인한 것이지만 소매물도에 사람사는 유일한 마을이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일용품을 모두 준비해가야 어려움이 없다.

 

 

 

 

 

소매물도는 섬의 넓이는 겨우 0.33㎢, 11가구 26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소매물도는 원래 웃매미섬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어미섬인 매물도는 원래 말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마미도라 불렸다고 하는데, 마미도가 매미도로 바뀐 다음 다시 매미도가 매물도로 발음이 바뀌며 정착된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대매물도의 모양이 '매물' 즉 메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니, 어원이 확실한 것 같지는 않다.

 

 

▼ 돌아본 선착장 주변 풍경. 멀리 바위섬 삼여도가 보인다.

 

 

 

 

 

소매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금부터 160여 년 전이라고 한다. 1870년 경 김해 김씨가 섬에 들어오면서 유인도가 되었는데, 소매물도에 가면 해산물이 많아 굶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거제에서 들어와 살게되었다고 한다. 역사도 짧고 작은 섬이지만 당산제와 중당제로 이어지는 당제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고 하며, 산너머 골짜기에는 슬픈 전설이 깃든 남매바위도 있다고 한다.

 

소매물도 북쪽에는 어미섬인 매물도와 어유도가 있고 대덕도· 소덕도· 홍도 등이 늘어서 있다. 남쪽 16km 지점에 있는 홍도는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3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서쪽으로는 소지도· 국도· 삼여도가, 남쪽으로는 스쿠버다이버들의 천국인 굴비도· 등여도 등이 있다.

 

 

마을 중턱에 있는 허름하지만 전망 좋은 집, 지붕 밑 방이 우리의 숙소다. 민박집에 짐을 내려 놓은 우리는 섬 트레킹에 나선다. 주 트레킹 코스는 마을 뒤 언덕을 올라서 등대섬으로 가는 가는 길이다.

 

마을 뒤에서부터 섬의 능선에 오를 때까지 오솔길이 급하게 이어진다. 능선은 비교적 넓은 마당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11가구가 살았던 동네의 작은 학교, 이제는 취학 연령의 아이들은 자라서 육지의 대처로 사라져 버렸고 빈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빈 운동장에 이방인들이 모여 들어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고 있다. 폐교된 고향의 산골 학교 시절들을 떠올리며 잠시 섬을 잊는다.

 

내가 본 영화는 아니지만 이 분교는 사춘기 청소년의 첫사랑을 다룬 '파랑주의보'라는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이라 한다. 어느 날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섬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고2 동갑내기 친구 수호(차태현)와 수은(송혜교)이 설레는 가슴으로 머물렀던 곳.

 

그러나, 이제 이 분교 자리는 더 이상 학교도 영화 촬영소도 아니고 민박집 겸 까페로 사용되고 있다. 글 머리에 올린 정호승의 글도 바로 이 곳에 남은 것이다.

 

 

 

 

 

분교 앞쪽에는 소매물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 망태봉이 솟아 있다. 망태봉의 높이는 152m로 어미섬 대매물도의 장군봉 127m보다도 훨씬 높아 매물도의 최고봉을 이룬다.

 

다시 등섬으로 가는 오른쪽 허릿길로 접어들자 동백나무들이 늘어서 울을 이루며 그 너머 바다 풍경을 가리고 섰다. 동백꽃들이 송이송이 숯불처럼 피어났다.

 

 

 

 

 

동백숲을 지나면 망태봉의 왼쪽 허리를 타고 위태한 좁은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가파른 비탈이 흘러리다 일망무제의 푸른 바다속으로 두 발을 풍덩 잠그고 섰다.

 

그리고 그 발치에서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

 

 

 

 

 

 

바다에 높이 솟은 저 멋진 바위는 무엇인가. 나중에야 안 이름인데 이것이 공룡바위란다. 어떤 사람들은 고래등이라 이름 붙여 놓았다. 어떤 이름이라도 근사하기는 마찬가지다.

 

 

 

 

 

공룡바위가 바로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소매물도는 급한 비탈이 되어 좁은 목을 이룬 낮은 땅을 향하여 급히 내려선다.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등대섬을 바라보며 내려서는 길은 경사를 줄이기 위해 꼬불꼬불 이어진다.

 

 

▼ 목으로 내려와서 뒤돌아 본 길

 

 

 

 

 

▼ 공룡바위 건너편 언덕에서 바라본 공룡바위. 뒤에 보이는 섬은 어미섬인 대매물도

 

 

 

 

 

 

 

그리고 다시 낮은 구릉을 지나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등대섬이 눈부시게 들어온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금방 등대섬으로 통하는 해안 절벽길로 내려서게 된다. 내려서는 길에는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약 80여m 폭의 몽돌길로 이어진다. 이 바닷길을 가리켜 열목개라 부른다. 열목개는 바다 양쪽에서 파도가 밀어올린 몽돌들이 밭이랑처럼 솟아 길이 되었다.

 

주먹만한 몽돌이라기보다는 호박돌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듯, 파도가 궁글린 바위들은 호박덩이만하다.

 

 

 

 

 

 

▼ 등대섬에서 돌아본 풍경

 

 

 

 

 

 

언제라도 건널 수 있다면 등대섬은 섬이 아닐 것이다. 몽돌길은 하루 두번 썰물 때에만 열리는 '모세의 길'이다. 이때만 등대섬은 섬이 아니라 소매물도의 한 몸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