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1) 여행 출발지, 란저우 황하 유람

모산재 2014. 9. 10. 15:00

 

● 2014년 7월 25일 금요일 오후, 란저우

 

 



아직도 채 밝아지기 전에 일어나 빵과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5시 반 공항버스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인 6시 반이다. 아직 사람들이 안 왔는지 지영 샘만 보인다. 환전하고 오니 그새 사람들이 다 모였다. 우리 일행 13명 외에도 경모씨를 따라온 군산의 두 여대생, 그리고 여행 마니아인 노장 여성 두 분이 합류하여 모두 17명에 경모씨까지 모두 18명.

 

 


8시 15분 동방항공 이륙. 아침 기내식으로 닭고기밥이 나온다.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다 먹고 나서 보니 고추장을 담은 작은 용기가 있었다. 10시 20분(한국시 11시 20분)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하여 11시 20분 란저우 행 비행기로 옮겨 타고 또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창가 좌석(42A)에서 환상적인 구름 풍경을 즐긴다. 란저우에 가까워지며 고도를 낮추자 구름 사이로 장엄한 산들의 윤곽이 보인다.

 



 

저 서쪽 구름 아래로 오늘부터 11일간 우리가 여행할 칭하이 동티벳 고산 초원과 호수들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샤허의 라부렁스 사원

허쭤의 밀라레빠 불각과 천장터

감숙 사천 랑무스 사원과 천장터

퉁런의 우툰스(롱우스) 사원

시닝의 타얼스 사원

 

그리고 중국 최대 호수인 청해호

염전 호수 차카염호

이가협과 칸불라대협곡

구이더의 단하지모

......

 

 

구름 속에 잠겨 있을 티베탄들의 땅 청해성 일대 티벳사원과 고산초원,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상상하며 절로 맘이 설렌다. 8월 5일까지 11박 12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2시 40분, 드디어 란저우 중촨 공항(兰州 中川机场)에 착륙하였다. 꽃다발처럼 무더기로 핀 국화과 꽃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현지 가이드 이국평씨가 마중 나왔다. 30대 중반의 조선족, 듬직한 체구에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예의바른 청년이다. (청년이지만 결혼한 아이 아빠다.)

 

 


중촨공항 청사 앞에는 '마답비연(馬踏飛燕)' 또는 '마도비연(馬跳飛燕)' 상으로 널리 알려진 청동상이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 길이 45cm 높이 34.5cm의 작은 청동상. 이름 그대로 천마(한혈마)가 날아가는 제비를 사뿐히 밟으며 내달리는 형상이다.

 

1969년 우웨이(武威) 한나라 장군의 묘인 뇌대고묘(雷台古墓)에서 출토된 동분마(銅奔馬)를 본뜬 조각이다. 공사(公社) 직원이 방공호를 파다 발견한 것이 방치되다 다음해에 간쑤성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71년 곽말약이 방문하였다 일류의 예술 진품이라고 극찬하며 '마답비연(馬踏飛燕)'이라고 명명하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천마는 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리고 할떡이고 있으며 꼬리가 치켜져 있다. 질주하는 세 발이 공중에 떠 있는데 오른쪽 뒷발만이 제비의 등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날아오르는 제비가 말발굽에 등이 밟혀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모습이 리얼하다.

 

고대 예술가의 낭만적 상상력과 섬세한 기교가 놀랍다.

 

 


 

바로 버스를 타고 란저우 시내로 향한다. 시내는 공항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거리에 있다.

 




란저우로 가는 길가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인데, 마치 등고선을 그리듯 계단식으로 깎아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그런데 곳곳에 스프링쿨러가 물을 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열악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려는 중국인들의 집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시간 정도 달리자 차량들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요금소가 나타난다.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황하를 건넌다.

 


지금부터 꼭 14년 전인 2000년 여름, 기차를 타고 시안에서 둔황으로 갈 때 보았던 란저우 풍경과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다. 기차 차창밖으로 보았던 란저우는 꾀죄죄하고 쓰레기들이 산더미를 이루었던 더러운 도시였는데, 지금 보는 란저우는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고 거리도 깨끗해 보인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망과 함께 짧은 시간에 빠르게 변신하는 중국은 늘 나를 놀라게 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각상. 낙타를 끄는 대상을 표현한 것일까...?

 




저우는 시안에서 둔황으로 가는 하서주랑의 길목에 있는 실크로드의 교통 요지. 하지만 란저우는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던 기간이 길었던 곳이었다.

 

원래는 서역 강족(羌族)의 땅이었지만 기원전 6세기에 진나라에 편입되어 한무제 이후에는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로,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부족 국가들의 수도가 되었다. 4세기, 5호 16국 시대에는 잠시 전량의 수도였지만 북위와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편입되었다. 763년에 티베트족에 점령되었다 843년에 당나라로 편입되었지만 11세기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의 손에 들어간 후 1041년에 송나라가 차지하였다. 1127년 이후 여진족의 금나라에 들어갔고 1235년 이후에는 몽골족이 차지하였다. 명, 청대를 거쳐 1864~1875년의 감숙 후이족 반란 때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중국의 땅으로 굳어진다.




강을 건넌 버스는 황하가 보이는 길가에 멈춰섰다. 

 


모두 내려서 황하 강변 뚝길을 따라 황하 구경에 나선다.

 

제방 산책길은 아름드리 버들이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곳곳에 놓여진 벤치에는 많은 시민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해 휴식을 즐기고 있다. 시민들의 표정은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란저우 시는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황하가 이를 가로질러 남북으로 나누고 있는 형세다.

 

지금 우리는 '황하제일교'로 널리 알려진 중산철교로 향하고 있다. 강 건너편 산은 백탑산(白塔山)이라 부르는데, 현재 백탑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백탑산과 마주보는 남쪽에 우뚝 솟은 산은 오천산(五泉山)으로 역시 오천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란저우는 오천산공원과 백탑산공원 사이를 황하가 흐르며 강줄기를 따라 동서로 길게 형성된 도시라 할 수 있다.

 

 


건너편 백탑산 꼭대기(해발 1700m)에 솟아 있는 탑이 바로 '백탑사 백탑'이라고 한다. 아래로는 옛 양식의 여러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도교사원도 있고 이슬람사원들도 있다. 철교 왼쪽 건물들은 지도로 보니 '란저우 비물질 문화유산 진열관'이란 건물인 듯하다.

 

 

 


거세게 흘러내리는 황토 강물을 거슬러 쾌속정들이 달리고 있다.

 

 

 


황하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였다고 하는 중산교(中山橋). 그래서 '황하제일교'라 불리기도 한다. 1907년에 준공되었다고 하니 100년이 넘었다. 프랑스인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중국의 국부라고 하는 손문의 호를 따 지은 이름이라 한다.

 

 

 


길이 240m 너비 8m의 철교. 지금은 차량 출입이 통제되어 인도교로만 사용되고 있다.

 

 

 


중산교 하류 방향.

 

거세게 흘러내리는 누런 강물은 란저우를 지나면 곧장 북류하다 다시 방향을 틀어 발해만으로 흘러들게 된다.

 

 

 

 

 

출처 : 두산백과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백탑산공원에 올라 보았으면 좋으련만...

 

인도교만 건너갔다 돌아오는 것으로 끝낸다.

 

 

 

 

 


백탑사로 불리던 절은 청나라 때에 확장하여 자은사(慈恩寺)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백탑산 백탑(白塔山 白塔)은 17m 높이의 8각 7층탑이다.

 

출처 : 매일경제 2012.08.19

 


원나라 때 칭기즈칸을 알현하러 가던 티베트 살가파(薩迦派) 라마승이 란저우에서 병사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나라 조정에서 세운 탑이라 한다. 지진으로 무너진 탑을 명나라 때인 15세가 중엽에 중건하였다.

 

탑 아랫부분은 인도식 복발형으로, 윗부분은 중국식 8각 누각형으로 만든 것이 독특하다. 정사각형의 기단부 위에 높게 쌓은 수미좌(須彌座)가 있고, 그 위에 반원형의 복발식 탑신을 세운 뒤 다시 8각형의 누각식 탑을 세웠다. 

 

 


다시 황하의 서쪽, 상류 방향으로 이동.

 

 

 


이곳은 양가죽 뗏목을 타는 곳.

 

하지만 강물이 불어 물살이 거세어 이를 타기엔 위험해 보인다. 유목민들이 양을 잡을 때 목을 자르고 가죽을 벗겨낸 뒤 뒤집어서 풍선처럼 만들어 만든 뗏목이다. 옛날 흉노족들이 황하를 건널 때에는 저 양가죽 뗏목을 이용했으리라.

 

 


 

거센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쾌속정...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 <서유기>의 인물을 형상화한 조상

 

 

 

 


수차원(水車園). 물레방아는 황하의 물을 퍼 올려 농업 용수로 사용하는 시설. 명나라 때부터 만들어진 수차는 1952년까지 모두 252개가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꼭대기의 저 건물은 란저우비림(兰州碑林)인 듯하다. 전망대 구실을 하는지 황하제일각(黄河第一阁)이라고도 부른다.

 

 

 

 


 

동서로 길게 조성된 황하 강변공원은 산책로 주변으로 넓은 휴식공간이 차지하고 있는데,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여서 춤을 추고 있고, 또 전통악기 연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공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 또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찐빵 같은 둥근 모자를 쓴 후이족(回族)이다. 후이족은 란저우 시민의 약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후이족은 원래 아랍계 혈통이지만 중국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한족의 언어와 문화에 많이 동화되어 있지만,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이 깊어 문화적 차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위구르인들과도 차이점과 공통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란저우의 상징이라고 하는 '황하모친 조상(黃河母亲雕塑)'에 이르렀다.

 

 



하악(何鄂)이라는 여성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비스듬히 누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으로, 아이는 중국을 상징하고 황하는 중국을 낳고 기른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다. 간쑤성 채색도기에 사용되었던 원시 문양인 물결무늬와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황하강의 탯줄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붉은 색의 화강암으로 새겼다.

 

 

 


주변 곳곳에는 박주가리와 아주 닮은 덩굴풀, 가는털백미꽃이 하얀 꽃들을 피우고 있다.

 

 

 


'좀구기자'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은, 잎과 꽃이 아주 작은 구기자도 꽃을 피우고 있다.

 

 



 

황하를 돌아본 다음 여행 첫날의 숙소인 금륜빈관(金轮宾馆)으로...

 

 



 

4성급 호텔이라고 하였는데, 프런트가 있는 홀만 4성급일 뿐 객실은 우리 나라 모텔보다도 못하고 화장실은 아주 여인숙급도 못되는 것 같다.

 

 

 

숙소 앞에는 금륜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아파트 너머로는 북쪽으로 백탑산과 마주하고 있는 오천산(五泉山)이 높이 솟아 있다. 그런데 이 오천산에는 기원전 2세기 한무제 때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곽거병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곽거병 5만 군사들이 란저우에 주둔할 때 병사들이 마실 식수원을 구하지 못하였다. 곽거병이 우물을 찾다 말이 발굽으로 땅을 파므로 그곳에 칼을 꽂으니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다섯 곳의 우물을 팠는데, 그래서 산 이름이 오천산(五泉山)이다.




지금도 오천산 아래에는 혜천(惠泉), 감로천(甘露泉), 국월천(鞠月泉), 모자천(摸子泉), 몽천(朦泉) 등 다섯 개의 샘에서 맑은 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곽거병은 이곳 란저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취안(酒泉)에서 흉노를 격파하고 이모부인 한무제로부터 어주를 하사받는다. 그 술을 샘물에 부어 병사들과 나눠 마셨다는데, 이로부터 주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

 

모, 국평 씨가 안내한 곳은 호텔을 돌아 동쪽으로 10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청진식당인 양고기집.

 

 

 


최고의 고기맛을 자랑하는 식당이라며 양고기 갈비 수육을 듬뿍 시켜 주었는데, 입이 짧은 나는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부담스러워 한 대만 먹고 몇 가지 볶음요리로 식사를 대신한다.

 

 

 



란저우는 우육면(蘭州牛肉麵)이 유명하다는데 그것을 먹지 못해 좀 아쉬웠다. 쇠고기와 무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수타면을 말아내 우리 입맛에도 잘 맞다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담은 먹자거리 풍경

 

 

 

 


청과 시장

 

 

 

 


이 여름에도 연 날리기를 즐기는 후이족 사람들

 

 

 


호텔 앞 금륜광장에는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룹들마다 저마다 다른 춤을 추고 있는데, 이들의 댄스 열기는 참으로 부럽고 감동적이다. 축제라 해도 이만할까 싶게 모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툭 트인 광장에서 남녀를 굳이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이들의 춤. 클럽이나 캬바레와 같은 닫힌 공간에서 상업주의와 결합해 술을 마시고 흐느적 거리는 우리의 음습한 춤 문화와 좋은 대조가 된다.    

 

 

 

 


연세 드신 할머니들도 그 연세에 맞는 편한 동작의 춤을 춘다.

 

 


 

호텔 방(704호)에 들어와서도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광장의 활기찬 풍경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다.


생활 속에 밀착된 흥겨운 삶이 부럽다. 술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생활 스포츠 풍조가 우리 나라에도 생겨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성수 형이 사 온 시원한 주를 몇몇이 모여 가볍게 한 잔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