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실크로드(12) 우루무치에서 투루판 가는 길, 달판성과 왕뤄빈, 위구르 민속 춤

모산재 2014. 8. 11. 12:32

 

8월 4일 금요일 오전  / 투루판-우루무치

 

 

 

카슈가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새벽 2시 무렵에 우루무치에 도착하여 네 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오늘은 트루판으로 이동하는 날. 10시경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11시쯤 버스를 타고 투루판으로 출발한다.

 

 

우루무치를 떠나 왼쪽으로 천산산맥을 끼고 한시간 반쯤 달릴 무렵, 트루판의 유명한 세계 최대 풍력발전기 단지를 지난다.

 

 

 

 

 

트루판은 해저 분지 지형이라 솥단지처럼 뜨거워 화주(火州)라고 불리지만 풍주(風州)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천산산맥의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달리는 기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간혹 국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2007년 2월 28일 새벽 우루무치를 떠나 아커쑤로 가던 열차가 투루판을 지나 전주취안(珍珠泉) 구간에 들어서면서 때마침 불어온 초속 60m 이상의 강력한 황사 폭풍에 11량의 객차가 탈선해 뒤집히기도 했다.

 

 

 

출처 : 경향신문 2007. 02. 28

 

 

일년 내내 부는 이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처음에는 네덜란드제 풍차를 도입해 돌렸는데 지금은 자체 생산으로 풍력발전기를 돌린다. 초속 13m 이상 되는 바람만 불면 발전기 한 대가 시간당 750㎾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우루무치 지역에서 필요한 전력의 20%를 공급하고 있다.

 

 

 

※ 우루무치-투루판 안내도

 

 

 

 

 

그리고 이내 우루무치 최대의 호수인 차이워바오 호수(柴窝堡湖)를 지나고 이어서 염호(盐湖)를 지난다. 호숫가에는 하얀 양떼와 검은 소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초원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염호는 강우량보다 증발량이 많은 기후 때문에 소금 농도가 바다의 20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금호수는 식용으로보다는 공업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면적 17㎢인 이 호수 밑바닥에는 1억t 이상의 세제 원료가 매장되어 있다. 우리 나라 기업도 진출하여 한국 화약은 지난 1996년 한화염호화공(주)를 설립하여 기초 화공품인 무수망초(황산나트륨)를 연간 10만t을 생산하기도 했다.

 

 

 

염호가 끝나는 지점,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 천산의 달판성(다반청) 자락에 자리잡은 중국의 인민음악가 왕뤄빈(王洛賓, 1913~1996) 기념관에 도착하였다. 2,000년 실크로드 첫 여행 때도 들렀던 곳, 어제 본 듯 반갑기만 하다.

 

기념관 앞에는 왕뤄빈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왕뤄빈은 서부 민가 전파자로서 중국 현대 가곡의 왕이라 불린다.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1931년 북평사범학교 예술학과에 입학하여 러시아인 홀와트(Harwath)부인에게서 성악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937년 작가 정령(丁玲)이 인솔하는 서북전선봉사단에 참가하여 전투 생활 가운데서 <빨래노래(洗衣歌)> <고향친구 전선으로 나가네(老乡上战场)> <풍릉도의 노래소리(风陵渡的歌声)> 등 가곡을 창작했고, 1938년 작가 소군(萧军), 시인 사이크(塞克) 등과 신강으로 파견되어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의 민가(民歌)에 빠져든다.

 

이곳에서 그는 어느 위구르인 운전기사가 들려주는 투르판의 민가 <달판성(达坂城)>을 듣고 소박하면서도  활발하고 명쾌한 선율에 매혹되어 그 노래를 다시 개편하여 <마차부의 노래(马车夫之歌)>를 만들었다. 그가 수집 정리한 최초의 소수민족 가곡인 이 노래는 왕락빈의 창작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마차부의 노래(马车夫之歌)

 

 

 

기념관 뜰에는 아마도 <마차부의 노래>를 형상화한 듯한 아름다운 조각상이 조성되어 있다.

 

 

 

 

 

 

달판성과 왕뤄빈의 이야기는 중국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한다.

 

 

 

특히 유명한 노래는 <달판성 아가씨(達坂城的姑娘)>!

 

달반성 돌길은 단단하고 평탄하며 수박은 크고 달아요.

저기 가는 아가씨, 머리칼은 길고 두 눈은 맑고 예쁘네요.

그대여 시집 갈 땐 다른 사람 말고 부디 내게 오세요.

혼수를 가지고 자매와 함께 마차를 몰고 서둘러 오구려.

 

 

위 가사 중 "혼수를 가지고 자매와 함께 마차를 몰고 서둘러 오구려."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왕뤄빈은 유머러스하게 "이슬람의 코란 경전에 한 남자는 네 명의 아내를 맞이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그래서 그녀의 여동생까지 같이 데려오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왕뤄빈은 가는 곳마다 민가를 수집했다. 위구르족 민가 <카슈가르무곡(喀什噶尔舞曲)><아라무한(阿拉木汗)>, 까자흐족 민가 <유랑의 노래(流浪之歌)> <저는 그대를 내일까지 기다려요(我等你到明天)>등 심미적 선율로 가득한 노래를 수집하는 한편, 많은 민가를 개편했다. 그 중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장 유명한 곡은 <저 아득히 먼곳에서(在那遥远的地方)>이다. 이 작품도 까자흐 민가 <결백한 이마(洁白的前额)>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달판성 아가씨(達坂城的姑娘)>

 

<저 아득히 먼곳에서(在那遥远的地方)>

 

 

그런데 이 곡 뒤에 숨어 있는 일화는 더욱 낭만적이다.

 

 

1941년 봄, 왕뤄빈은 영화 촬영팀을 따라 장족의 서북 지역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줘마라는 장족 아가씨가 영화에서 양치기 소녀로 분하였고 촬영팀의 책임자는 왕뤄빈에게 줘마를 도와주게 했다. 줘마는 활발했고 아름다웠으며, 불그스레한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띠었다. 또한 그녀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가졌으며, 사람들을 바라볼 때, 대담하고 열정적이었다. 수많은 장족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길고 까만 머리카락을 많고 가느다란 변발로 땋아 늘어뜨렸다.

어느 날 촬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줘마는 금실로 두른 칼라의 장족 치마를 입고 있었고, 치마 아래로는 한 쌍의 붉은 장족 장화가 보이며 말 위에 타고 있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녹색의 초원, 그녀는 양을 치는 채찍을 손에 들고 양을 몰고 있었다. 양들이 그녀의 주위에서 “음매 음매”하며 울고 있었고,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 마치 하늘의 하얀 구름이 떠가는 것 같았다. 이 때, 왕뤄빈은 무의식 중 말을 채찍질했다. 말은 갑자기 놀래어 맹렬히 위로 뛰어 올랐고 줘마는 말위에서 떨어질 뻔했다. 아가씨는 화가 났고 채찍을 들어 말을 향해 갈겼다. 하지만 이 채찍질이 마침 왕뤄빈의 몸에 맞았다. 왕뤄빈은 놀래고도 이상하여 어찌 해야 할 줄 몰라 할 때 귀에는 줘마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가씨는 나는 듯 채찍을 휘두르며 갔고 장족 치마 위의 장식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초원의 정적을 깼다. 멀어져 가는 줘마를 바라보며 왕뤄빈은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한번의 채찍질이 감정을 자아낼 줄 생각 못했다. 나중에 그 둘은 자주 말 한 필에 올라타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말이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달리게 했고,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바람은 가볍게 불었고, 야생화의 향기는 바람에 간간이 실려왔다……그들 간에 비록 언어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서로 통했다.

이별의 날이 어느덧 다가 왔고 촬영팀이 떠나날 때 줘마는 멀리까지 배웅을 했다. 천천히 사라져가는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편의 아름다운 선율이 왕뤄빈의 마음에서 흘러 나왔다.

 

그녀의 그 분홍빛 얼굴
마치 붉은 태양 같네.
그녀의 감동적인 아름다운 눈
마치 저녁에 맑고 아름다운 달빛 같네.
나는 한 마리 양이 되어
그녀의 옆에 있고 싶네.
나는 그녀가 그 가느다란 채찍으로
끊임 없이 스치듯 나를 건드렸으면 좋겠네….

- 출처: http://koyono.blog.me/140050859728

 

 

 

2000년에 찾았을 때 처음 보며 신기해 했던 풀들이 생각나서 잠시 풀들을 살펴본다.

 

그때 채집했던 풀들이 여전히 마당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 보지 못했던, 남가새 꽃이 피어 있다.

 

동남아에서도 보았던 꽃으로 나중 우리 나라 거제도와 제주도 등지에서도 자생하고 있음을 알게 된 풀이다. 

 

 

 

 

 

사막과 초원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씀바귀꽃과 닮은 국화과의 꽃. 건조한 사막에 적응하기 위함인 듯 잎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왕뤄빈 기념관에서 휴식을 끝내고 다시 투루판을 향해 출발한다.

 

주변 건물에 "不求急功近利 但愿天長地久"라고 적어 놓은 구절이 눈에 띈다. "쉽게 공과 이익을 구하려 하지 말고 하늘과 땅처럼 영원함을 추구하라."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광막한 하늘과 땅, 사막과 초원이 주는 교훈인 듯하다.

 

 

 

소떼와 양떼들이 풀을 뜯는 넓은 초원이 한동안 이어지고, 초원 너머로 멀리 하얀 만년설을 인 천산산맥의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루무치를 떠난 지 세 시간 쯤 지나서 투루판에 도착하였다.

 

 

투루판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한증막에 들어선 듯한 열기가 온몸으로 화끈 스며든다.

 

투루판은 천산산맥의 보그다산(博格达山)과 줴뤄타산(觉罗塔山) 사이에 둘러싸인 분지로, 태양열이 솥단지를 달구듯 분지내 지형을 달구고 있다. 연 강우량 16mm, 증발량이 3800mm 라니 얼마나 건조한지 알 수 있다. 투루판의 가장 밑바닥인 아이딩호수는 해저 154m 아래 지점에 위치해 있다.

 

 

 

투루판호텔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다. 손님은 우리뿐이다.

 

쿠처에서 그러했듯 이곳 식당에서도 오직 우리 일행만을 위한 위구르인들의 환영 민속춤 공연이 펼쳐졌다. 특유의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과 아름다운 위구르 여인의 춤은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달판성의 꾸냥'이라는 노래에 맞춰 춘 춤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