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제주도 (1) 환상의 숲길, 이승악오름 산책

모산재 2012. 4. 2. 14:41

 

제주도로 삶터를 옮긴 두 분 덕택에 제주도를 자주 찾게 된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저녁, 김포에서 15년 지기 일곱 사내가 이스타 항공에 몸을 실었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이 선생님 커플이 안내한 노형오거리 '우리집'이란 횟집에서 신선한 회와 한라산 소주로 맘껏 주말의 해방감을 즐긴다.

 

그리고 숙소인 애월의 중산간에 위치한 솔베이지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튿날 아침, 은정 씨가 마음 써서 특별히 챙겨온 황태국과 밥, 김치로 행복한 아침 식사를 한다.

 

 

 

제주에서의 첫 여행은 표선의 신 선생님이 안내해 주기로 약속된 모양이다.

 

걱정과는 달리 눈부신 햇살이 넘칠 만큼 쏟아져 내리고 있다.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과 서귀포 앞바다가 보이는 1115번 중산간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최고다. 돈네코를 지날 무렵부터 119번 도로로 접어든다. 성판악으로 가는 1131번 도로를 지나 신례 교차로에서 신 선생님이 손을 흔들고 있다. 

 

신례교차로 바로 서쪽 좁은 길을 따라 한라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한동안 구릉을 오르다 보니 이승악오름이 나타난다. 오르는 길 주변은 목장들...

 

 

이승악오름의 위치.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바로 동쪽에는 사려니오름이 자리잡고 있다.

 

 

 

 

 

한바탕 비가 지나간 탓인지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화창한 날씨.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 몹시도 심하게 불어 대는 바람에 몸이 날아갈 듯하고 한기는 칼날처럼 온 몸을 파고든다. 모두들 자켓을 찾아입고 중무장을 한다.

 

비로소 수인사를 나누고 신 선생님은 귤 한 알씩을 건네준다. 오렌지 맛이 나면서도 껍질이 얇은 일본 도입종 감귤, 청견...

 

사전 지식 없이 막연히 여느 오름과 비슷한 곳인 줄 알고 오름 산책은 시작되었다.

 

 

 

 

 

다 돌아본 다음에야 이 오름은 분화구가 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오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숲이 울창하여 흔히 기대하는 분화구의 모습을 전망할 수 없다.

 

유명한 비자림보다도 더 울창하지 싶은 원시의 숲길만 오로지 이어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하기에 가장 멋진 휴양림이라 할 수 있다.

 

 

 

※ 이승악오름 안내도

 

 

 

 

 

'목장 갈림길'에서 오름의 기슭을 두르는 490m의 평지 숲길을 걷다가 '이승악 등반코스 갈림길'에서 능선을 타고 630m를 오르면 이승악오름의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는 다소 허름한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고, 거기서 190m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서면 다시 평탄한 원시의 숲길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온갖 상록수들이 함께 자라는 난대림이, 다음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 숲이... 난대림 숲길에서는 한라산에서 날아온 화산탄과 그것을 안고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변 곳곳에는 숯가마터가 있고, 일제가 만든 갱도진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분화구가 터진 동쪽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산책은 끝난다.

 

 

 

이승악 오름으로 들어서는 입구, 아직도 마른 풀만 가득한 양지바른 언덕엔 왜제비꽃이 해맑은 보랏빛으로 곱게 피었다.

 

 

 

 

그리고 남산제비꽃도 피었다.

 

 

 

 

 

길은 금방 숲으로 이어진다.

 

 

 

 

제주에 흔한 개구리발톱도 피기 시작했다.

 

 

 

 

겨울을 지난 고사리삼도 종종 보인다.

 

 

 

 

고사리삼 어린풀일까...

 

 

 

 

 

오름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바람이 몹시 심하다. 바람에 꺾여 떨어져 있는 가지들도 보일 정도다.

 

 

앞서가던 이 선생님이 소리치는 곳을 바라보니 녹나무과의 새덕이로 보이는 꽃이 피었다. 처음으로 만나보는 꽃.

 

바람에 심하게 요동치는 높은 나뭇가지의 꽃 이미지를 담기는 쉽지 않다.

 

 

 

 

새덕이는 '서대기'란 바닷물고기가 나뭇잎이나 신바닥 모양으로 생긴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정상(539m)에 오르니 허름한 정자 하나가 있고, 북쪽으로 터진 숲길 너머로 한라산 정상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상 오른쪽으로 사라오름으로 보이는 오름이 보인다. 오른쪽 성널(성판악)오름은 숲에 가려졌다.

 

 

 

 

비고가 114m인 이승악(狸升岳)오름. 동쪽으로 말발굽처럼 벌어진 분화구가 살쾡이(狸)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울창한 상록수림에 시야가 막혀 조망하는 즐거움이 없어 아쉽다.

 

하지만 숲에서 내뿜는 독특한 향기와 신선한 공기는 그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는다.

 

 

 

북쪽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서자 다시 동쪽으로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그늘 곳곳에는 얼핏 다람쥐꼬리로 생각하기 쉬운 뱀톱이 자라고 있는데, 하얀 포자가 가득 달린 모습이 이색적이다.

 

 

 

 

 

그리고 갱도진지 안내판을 만난다.

 

 

 

 

태평양전쟁 때, 일제는 제주도를 미군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삼고 곳곳에 땅굴을 파서 요새화했다.

 

이곳에는 2개의 갱도진지 시설이 있는데, 하나는 갱도 내부까지 확인되었고 다른 하나는 굴착하다 중단된 것이다. 신례천을 사이에 둔 수악을 주저항진지로 하고 이승악은 전진 거점진지였다고 한다. 내부 진지의 규모는 총 길이 24.2m, 폭 2.6~3m, 높이 2.2m이다.

 

 

 

그리고 숯가마터도 산재되어 있다.

 

 

 

 

관음사 뒤 탐라계곡 숲에서도 볼 수 있었던 숯가마터... 숯은 제주도 지방 관아의 주요 공진 품목이었고, 조선 후기부터 산간지역에서 활발하게 숯을 구웠다고 한다. 숯 생산은 1981년까지도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연탄과 석유의 보급과 삼림 보호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다.

 

 

 

 

 

한라산에서 화산이 대폭발할 때 이곳에 떨어진 돌덩이가 화산탄인데, 숲은 화산탄 암석 덩어리들로 가득하다. 화산탄 지대에서 자라다보니 나무들은 뿌리로 돌덩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아래 사진처럼 아예 바위 덩어리 위에 여러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숲속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숲의 정령과 대화를 나누는 듯 묘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상쾌한 기운이 스며들어 찌든 심신이 한순간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느낌이다.

 

 

숲 곳곳에는 새덕이 붉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길은 어느덧 혼합 난대림에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삼나무 숲을 벗어나자 분화구가 터진 동쪽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능선으로 들어섰던 평지길과 만나 오름입구로 되나온다. 멀리 쇠소깍 앞바다의 지귀도가 오전의 찬란한 햇살에 흐릿한 모습을 보인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산록의 풍경이 정답다.

 

 

 

 

 

오름 하나 산책하고 나니 벌써 점심 때가 가까워졌다.

 

어느 작은 포구의 식당에서 성게칼국수로 점심 식사를 한다.

 

 

해안에는 보랏빛 갯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거센 바람을 받은 바다는 물고기비늘처럼 희번덕이는 물결로 출렁인다.

 

 

 

 

 

 

갈매기는 맞바람을 받아 비상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