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꽃섬의 갈래등골나물(?), 털장대, 전호, 두루미천남성, 은난초, 병아리꽃나무, 풍도대극

모산재 2009. 6. 12. 23:10


꽃섬의 갈래등골나물(?), 털장대, 전호, 두루미천남성, 은난초, 병아리꽃나무, 풍도대극


2009. 05. 23. 토

 

 

 

일상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이제는 바다 건너 섬으로만 향한다.

 

주중 내내 지친 몸 잠이라도 맘껏 잤으면 좋으련만

평소보다도 더 일찍 새벽같이 일어나 인천행 전철에 몸을 싣는다.

 

예매도 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길,

표가 남아 있다면 자월도나 이작도 또는 승봉도 쪽으로 가보자.

 

도착한 여객선 터미널은 섬을 찾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가고싶었던 곳의 표는 모두 매진이고 덕적도와 단풍섬행 표만 남았다.

 

어떡하나 우왕좌왕하다 예약취소를 바라고 대기한 줄에 섰더니

바로 내 앞사람까지 받아 주고선 마감을 해버린다.

 

 

결국 2월 말에 찾았던 단풍섬을 다시 찾기로 한다.



 

한산하던 2월과 달리 승객으로 가득찬 선실,

벽에 등을 기대고 졸다 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말도 안 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네."

 

무슨 말이야,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웅성대고 문자를 주고 받고...

 

나도 수현 형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데

텔레비전에 보도된 걸로 보면 마을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된단다. 

 

아,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뜻밖의 너무 충격적인 사태에 말을 잃는다.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아, 그리고 야비한 최고 권력자와

그의 충실한 사냥개들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욕설.

 

선실엔 텔레비전이 켜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이어지는 뉴스특보에 고정된다.

 

 

그러구러 단풍섬에 도착했다.

 

어찌하겠는가,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일상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박집을 정하여 점심을 먹고선 바로 산으로 향한다.

 

 

 

마수걸이로 내 카메라가 잡은 녀석은 등골나물인데,

산발치 길을 따라 드문 드문 보이는 이 등골나물은

보통의 등골나물과는 달리 잎자루에 달린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의 등골나물은 내 고향의 산에서 본 이래로 처음 만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갈래등골나물(eupatorium chinense var. dissectum)'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기재문은 물론 표본이나 사진 자료도 제시되지 않고 있어 단정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위와 같은 형태의 등골나물이 갈래등골나물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무덤이 있는 풀밭에는 산달래들이 가득한데

땅심이 좋아서인지 높고 굵은 꽃대를 올리고 섰다.

 

 

그리고 털장대들이 군데군데 꽃을 피우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장대나물과는 달리 잎에 톱니가 있고 잎표면에는 잔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털장대와 어떻게 다른지 알려면 나를 보아라 하는 듯이

장대나물이 함께 어울려 자라고 있다.

 

 

  

잎과 줄기 모두 매끈하게 잘 빠진 이 녀석은

털장대에 비해서 색깔이 희미하고 작은 꽃잎 때문에 덜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우산나물 꽃대에는 꽃망울이 가득 달렸다.

 

 

 

 

조뱅이는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사생이나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녀석이

한창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어 가까이 다가서 보니

어라, 사상자의 딴이름으로 알고 있던 사생이나물의 꽃이 아무리 보아도 사상자가 아니지 않은가...

 

 

 

사상자의 꽃잎은 다섯 장 모두 크기가 같은데

이것의 꽃잎은 한두 장이 특별히 크니 영락없이 전호의 특징 아닌가.

 

 

 

그렇게 해서 정밀 탐색을 하는데

바로 잎자루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 바로 잎집을 살펴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빼곡한 흰털이 줄을 지어 무늬를 이룬 잎집이 사상자가 아니라 전호가 확실하다.

 

 

 

 

몇 뙈기 되지 않은 마을 뒤의 작은 밭에선 벌써 감자가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을 보면 마치 토마토나 고추, 감자와 비슷해 보이는데

감자가 가지과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메꽃도 꽃을 피웠다.

 

그런데 서울 주변에서 보이는 길다란 잎과는 달리

이것은 내 고향에서 보던 5갈래로 패인 잎모양을 하고 있다.

 

 

 

 

 

밭 주변엔 말냉이도 흔하게 피었고

더러는 원반 같은 열매를 조랑조랑 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숲으로 접어드는 길에는

잎에 하얀 무늬가 있는 으아리 종류가 눈에 띈다.

 

참으아리로 보면 되는 걸까.

 

 

 

 

서양민들레가 아닌 민들레

 

 

 

 

덕적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천남성,

둥근잎천남성으로도 큰천남성으로도 보기엔 애매한데

2개의 커다란 잎에 각각 작은잎이 다섯 달린 이 녀석의 정확한 이름을 부를 수 없어 안타깝다.

 

 

 

 

큰애기나리일까 했는데

줄기 끝에 매달린 열매가 5개씩이나 되니 큰애기나리(1~3개)는 아닌 듯하다.

 

윤판나물로 보자고 하여도 꽃이 달리는 갯수는 큰애기나리와 같은 것이니...

 

 

 

 

봄에 찾았던 숲은 휑하기만 했는데

오늘 찾은 숲은 사생이나물과 온갖 풀들이 무성하다.

 

 

신선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숲의 여기저기엔 명주달팽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만큼 건강한 숲이라는 증거일 것.

 

 

 

 

 

변산바람꽃의 열매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대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던 곳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꽃이 진 지 이제 두 달도 지나지 않았건만 흔적도, 그림자조차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복수초는 이런 모습의 열매를 남기고선 여름을 지나 줄기와 잎은 시들어 사라지고

이듬해 봄 다시 화등잔처럼 샛노란 꽃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은난초를 만나다.

 

은대난초만 수없이 만났는데

이곳에서 은난초를 마주 대하고 보니 그토록 구별이 어려웠던 은대난초와의 차이점이 단번에 느껴진다.

 

 

은대난초에 비해 몸집이 전체적으로 많이 작고 아담한데

잎이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느낌...

 

 

윤노리나무지 싶은 녀석은 그렇게 꽃을 보고 싶었던 꽃이 피지 않은 모습이어서 나를 애태운다.

 

 

 

 

이것은 무엇일까,

어딘가 본 듯도 한 모습인데, 무릇일까 싶다가도 뭔가 석연치 않고...

 

 

 

 

노란장대일까 싶은 녀석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섰는데

보통의 노란장대의 잎이 예두 예저의 장타원형인 점과 달라서 자꾸만 헷갈린다.

 

 

 

 

그리고 뜻밖에 만나는 낯익은 풀들, 

아무리 보아도 금방망이로 보이는 녀석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서해안의 섬들에서 촬영했다는 금방망이 사진들을 종종 보기도 했지만

이곳에도 자생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비짜루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난 초봄에 찾았을 때

가시 달린 나목을 보고선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던 녀석은 꾸지뽕나무임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 녀석 모습을 담다가

그만 내 비싼 등산복 바지가 가시에 걸려 무릎쪽이 쫘악 찢어지고 말았다. 

 

 

 

 

무슨 천남성이 잎은 두루미천남성인데 꽃차례가 저리 이상하게 생겼나 싶었던 녀석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바로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 두루미천남성이 맞다.

 

꽃차례가 처음 올라올 때에는 저리 어정쩡한 자세를 가지는 모양이다.

 

 

 

 

 

이것은 새콩의 어린풀일까.

 

 

 

 

너덜바위가 많은 얕은 골짜기에서 병아리꽃나무가 자생하는 것을 확인한다.

 

 

 

 

병아리꽃나무를 담고 있는데 어디선가 거칠게 우는 염소들,

무엇에 쫓기는지 울음소리가 불안하고 급하게 들린다.

 

숲 사이로 언뜻 황소만한 숫염소들이 씩씩대며 강아지만한 암소들을 쫓고 있는 장면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 놈들이 번식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섬에 사는 대극은 씨방에 돌기가 없는 붉은대극 종류인데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열매에 털이 나 있어 따로 풍도대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씨방에 털이 없는 붉은대극의 열매 모습도 종종 보여

풍도대극과 붉은대극이 아주 분명한 종차를 보이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 섬에 흔하게 자생하는 굴피나무의 잎은 아직 여리기만 한 모습이다.

 

 

 

 

크지도 않은 섬의 서쪽은 두부모 베듯이 크게 잘려 나가고

그 상처난 자리에는 중장비와 아직도 덤프트럭이 다니고 있어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까마득한 절개지 낭떨어지 위에서

아까 얼핏 보았던 염소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숨바꼭질하듯 얼른 숨어 버린다.

 

 

 

 

멋쟁이나비와 함께 나란히 앉아

나무 줄기에서 진을 빨고 있는 저 커다란 곤충은 무엇일까.

 

 

 

어찌나 큰지 말벌에 비해서도 몸집이 3배는 커 보인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반디지치는 꽃으로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꽃이 없는 어린 풀로만 만나니 아쉽기 그지 없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무언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는데

나중에 사진을 들여다보면서야 아하 계요등이구나 싶었다. 

 

 

 

 

이것은 인동일까 했는데, 아무래도 덩굴성이 아닌 것이 길마가지나무 어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숲 군데군데서 만나는 은난초를 몇 번이나 담아 보다가

다시 산을 넘어 숙소로 돌아온다.

 

골짜기를 내려오며 만난 애기나리 하얀 꽃이 예뻐 담아 보는 것으로

오늘의 풀꽃나무 탐사를 모두 마치기로 한다.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아 있어 바닷가를 한 바퀴 돌며 풍경이나 담아 볼까 하다가

마음도 무겁고 피곤하기도 하여 일찍 숙소로 들어 버린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켜고선 이어지는 속보를 보며

아프고 우울한 밤을 외딴 섬에서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