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새해초 고향의 산과 들의 풀꽃 산책

모산재 2008. 2. 5. 21:08


아버지 생신이라 형제자매들과 가족들 30여 명이 모두 고향으로 모여들었다.

 

해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부모님을 뵙는 일은 참 마음 아픈 일이다.

작년 하지 동맥이 막혀 큰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가 별로 좋지 않아서 언제나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차례대로 집으로 들어서는 자손들을 보며 아버지의 입가에는 모처럼의 미소가 번진다.

 

어두워지는 저녁 30리 떨어진 삼가의 어느 식당으로 이동하여

자형이 주선한 쇠고기 파티로 생신 모임을 대신한다.

 

 



이튿날 아침나절 햇살이 맑아 동생들과 매제와 함께 뒷산을 산책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소 먹이러 다니는 산등성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동네 뒷산 밤나무들이 들어선 언덕,

어치라는 녀석이 밤나무 가지에 앉아 꺅꺅 소리를 내지른다.

 

 


 

털깃털이끼를 가발처럼 두른 썩은 그루터기에

운지버섯으로 보이는 녀석이 운치있게 자라났다.

 

 

 


동네 뒤 '모래등'이라 불렀던 등성이에 서 있는 느티나무,

지금은 주위에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지만

어린 시절 이곳은 동네 아이들이 소를 몰고 모여드는 작은 광장이었다.


이곳에 모여서 매일 번갈아가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소를 몰고 가게 된다.

 

맨 꼴찌로 도착하는 아이가 앞장서서 소떼를 이끌어야 했기에

가파른 언덕 위의 이 정자나무를 향해서 꼴찌를 면하려고 소 볼기짝을 회초리로 치면서 달렸지...

 

 

 


저 앞의 '벼락꼭대기'까지 등성이가 길어서 '진먼당'이라고 불렀던 곳을 오르다 돌아서는데

 

 


 

어라, 이게 웬일,

이 한겨울에 쑥부쟁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서 있지 않느냐!

 

 

 


 

산부추는 열매를 맺은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저기 멀리 등성이 아래에 월계(月溪)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야말로 워낙 골짜기라 두둥실 보름달만 보이는 골짜기이다.


그 동네 아이들은 이 산길을 걸어 우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앞에 보이는 능선은 공동묘지에 여우굴이 가득한 곳,

저 곳에서 해거름이나 비오는 날 소를 몰 때 머리털이 서는 듯하던 무서움을 떠올려 본다.

 

 


 

'망개'라고 불렀던 청미래덩굴 열매가 조랑조랑 알뜰히도 달렸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저렇게 많은 열매가 남아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먹을 것 없던 시절에 시큼달착한 저 열매도 괜찮은 간식거리였으니까...

 

 

 


 

백중날 '소모꼬지'라 해서 소를 위해 산신께 제를 지내던 장소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늙은 모과나무가 한 그루 서 있던 바위언덕 자리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숲이 사라지고 밤나무 과수원으로 변해 버린 산은 경운기 다니는 임도로 패어져 어지럽다.

 



이건 고비가 마른 모습이겠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를 들러본다.


400여 명이나 다니던 학교가 폐교된 지 20여 년인데

측백나무 울타리가 사라지고 유리창은 부서져 달아났다.

 

 


 

추석을 지날 무렵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 다 모여들어

함성과 만국기 휘날리던 운동장은 밭으로 바뀌었다.

 

시골사람들의 거의 유일하던 문화공간이었던 곳이

이제는 어느 외지인의 개인 소유로 넘어가 버렸다.

 


 

다시 들길을 잠시 거닐어 본다.

 



논언덕에 좀가지풀이 아직도 단풍인 채로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런데 중부지방에서는 이 녀석을 왜 그렇게 보기 힘든 것일까...

 

 


 

돌나물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잎이 주거처럼 둥근 것으로 보아 마키노돌나물이 아닌가 싶은데,

외래식물이 여기에까지 널리 퍼진 것이 놀랍다.  

 

 


 

개울 건너 언덕 가죽나무 가지 위에 귀여운 딱새 한 마리가 눈길을 붙든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지저귀는 앙증맞은 모습이 너무 예뻐서 수십 번이나 셔터를 누른다.



 

 


시리도록 푸른 개맥문동 잎과 견고한 까만 열매,

이 겨울에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논언덕 가득 마른 풀잎 모습이 얼핏 띠풀인가 했는데

이삭의 모습이 아니올시다!

 

아마도 새인 듯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저마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차비를 한다.



여든에 가까워진 어머니는 일곱 남매와 가족들에게 들려줄 보따리들을 꾸리시느라 정신이 없다.

 

양파, 대파, 양념거리, 된장, 간장, 참기름, 김치, 떡국거리 등등...

바리바리 싼 것들을 필요없다며 챙기지 않으려는 자식들이 섭섭하다.

 

냇가를 따라 난 길을 걸어 다리께에 주차한 곳까지 와서 손을 흔들어 주는 어머니,

불편한 몸에 집모퉁이까지만 나와서 쪼그리고 앉아 멀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자식들은 모두 집으로부터 멀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