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반에 육지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서해 섬의 독특한 장례 풍속인 초분(草墳)을 찾아보기로 한다. 관광 안내도에 선유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곳에 초분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어 그 주변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안내 표지도 없다. 가까운 상가 주인에게 물어 보아도 그런 곳이 있는 걸 모른단다.
결국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숙소로 돌아와서 주인 할아버지에게서 이야기를 들으니 선유봉 아래 쪽에 있단다. 헉~ 그곳은 다시 찾아 갔다 오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 아쉽지만 그냥 포기하고 만다. 지금은 이곳에서도 사라져 버린 풍속인 초분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는지...
피문어를 이렇게 바지랑대에 매달아 말리고 있다. 동네 아저씨 한 분은 이곳의 문어가 동해에서 잡는 문어와는 질이 다르다고 입에 거품을 무신다. 문어를 낚아 올리면 뻘건 모습이 핏빛이라 피문어라 하는데, 동해의 문어와는 달리 다리가 짧은 것이 또 다른 특징이라 한다.
문어가 얼마나 많이 잡히는 것인지, 장자도에서 낚시를 나갔던 분들이 2 시간만에 문어를 한 박스 가득 채워 왔다. 그 문어를 안주 삼아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다. 허허, 이곳에 와서는 술안주는 무조건 문어!
옛날에는 지천이었던 조기, 그래서 '장자어화(漁火)'가 선유팔경의 하나가 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조기는 씨가 마르고 문어가 이렇게 많이 잡히는 것인지... 섬사람들의 생업은 주로 멸치 잡이와 해태 양식에 의존한다고 한다.
선유도에는 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 선유도 세 마을에 있었던 토속신앙인 당산제는 새마을운동으로 사라졌고, 망주봉 아래에 있던 오룡당의 신상(神像)들도 도난당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선유도에는 소, 돼지, 닭, 염소, 오리와 같은 가축이 사라졌다고 한다. 급한 산비탈 지형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에는 적절치 않아도 예전에는 부지런히 곡식도 가꾸고 가축도 길렀다는데, 지금은 군산에서 사다 먹는 것으로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뀐 탓이다.
4시 반, 선유도를 뒤로 하고 배는 떠난다. 아직은 어두워질 시간은 아닌데 구름이 엷게 덮힌 하늘은 우중충하다.
점심 때쯤 돌아보았던 오전에 선유대교와 무녀도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는 점차로 멀어진다.
그리고 얼마쯤 가자, 왼쪽 바다 멀리 고군산군도의 북동쪽에서 선유도를 감싸듯이 길다랗게 가로놓인 무인도, 횡경도가 나타난다. 아마도 섬 이름도 빗장처럼 가로 놓인 모습 때문에 붙여진 듯하다.
아주 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이 섬을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곳에 있다는 장자할배바위를 혹시 볼 수 있을까 해서이다. 과연, 길다란 섬을 뚫어지게 살피다가 뾰족하게 도드라진 작은 물체를 발견한다. 카메라 렌즈를 열고 줌인하여 LCD화면을 보니, 이야기로 들었던 장자할배바위의 모습과 닮았다. 장자 할배바위는 횡경도 산허리에 서 있는데 높이만도 8m가 넘어 등대처럼 선박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니까...
흐릿한 날씨에 줌인하여 담은 모습이라 형체가 분명하지 않아 아쉽지만, 이 바위는 갓을 쓴 할아버지가 가마 위에 올라타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과거 보러 간 남편이 과거에 합격하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장도 뒷산에 올라 기다리던 부인이 등과를 하기는 커녕 소실을 거느리고 오는 남편의 모습에 화가 나 돌아서다가 아들을 업은 채 바위가 되어 장자할매바위가 되었는데, 그 순간 돌아오던 남편도 횡경도에서 바위로 굳어버렸다는 것이다. 장자할매바위와 함께 장자할배바위가 된 것이다.
상투에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형상의 장자할매바위는 화가 나서 돌아선 장자할매바위의 등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장자할배바위에는 일제시대의 후일담이 전설처럼 보태어졌으니, 다음과 같다. 일본군 병사 7명이 횡경도로 건너가서 갓을 쓴 모양의 머리 부분을 잘라 버리려고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인데,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부장적 가족문화의 비극을 담은 이야기에 민족적 성격이 보태어진 것이 흥미롭다.
▼ 멀어져가는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은 '처자'들
'선유팔경' 중의 마지막이 '무산십이봉'이라 하는데, 선유도의 북쪽에 방벽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명도, 방축도,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적을 막기 위하여 도열하여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바다안개(海霧) 속에 나타나는 12봉우리들의 모습이 장관이라 한다.
배가 선유도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고군산군도 북쪽으로 일렬로 늘어선 '무산십이봉'의 모습이 점차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아쉽게도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있어 일몰은 볼 수 없다. 어느 사이 멀리 서쪽 바다 수평선 너머 하늘은 붉게 물들고 섬들은 그림자로 더욱 선명해진다.
▼ 선유도 전경, 맨 왼쪽이 망주봉, 오른쪽 끝은 장자도 서쪽에 자리한 곶지섬(관리도)
▼ 멀어져가는 고군산군도. 왼쪽은 선유도, 오른쪽은 횡경도
▼ 당겨서 본, 노을 속 횡경도의 모습. 횡경도 오른쪽 너머로 일렬로 늘어선 방축도, 명도, 말도 등이 숨어 있다.
'군산'이라는 이름을 군산시에 넘겨주고 지금은 '옛 군산'이라고 불리우는 섬 '고군산군도', 굳이 '무산십이봉'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등 10여 개의 유인도와 횡경도 등 20여 개의 무인도가 바다 위에 무리지어 있는 섬 풍경들을 바라보노라면 '군산(群山)'이라는 땅이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군산항으로 가까워지며 점차로 고군산군도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뚜렷해진다.
▼ 왼쪽 작은 섬이 계도, 오른쪽 길다란 섬이 횡경도, 그 사이로 멀리 보이는 선유도와 무녀도
▼ 왼쪽 길다란 횡경도 옆으로 소횡경도, 방축도, 명도, 말도가 차례로 나타난다.
풍력발전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군산항에 가까워졌다. 이곳은 한때는 고군산군도의 하나였던 비응도인데 간척으로 지금은 뭍이 되었다.
신선이 놀았다는 섬 선유도,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인 선유도는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아직도 속도와 경쟁이라는 미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꿈과 낭만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비응도가 저렇게 뭍이 되어 꿈과 낭만과는 거리가 먼 풍경으로 바뀌어 간 것처럼, 선유도에도 내년부터 저 새만금방조제에 이어 연결도로 공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아름다운 꿈자리를 짓밟히는 듯 자꾸만 마음이 황량해져 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수십 킬로의 방조제 넓은 도로로 차량들이 줄지어 밀려드는 선유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만 하다.
저 섬만큼은 홍길동이 꿈꾸었던 율도국처럼, 허생과 도둑들이 꿈꾸었던 변산의 섬(위도)처럼 그렇게 남아 있으면 좀 좋을까. 언제까지나 1시간 이상 배를 타고 들어가 햇살과 바람과 파도, 풀잎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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