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만 여행

동티베트(8) 눈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랑무스 천장터

모산재 2014. 10. 6. 11:22

 

●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오전, 랑무스(郞木寺) 천장터

 

 

 

 

자고 일어난 새벽, 창을 여니 서늘한 공기가 기분 좋게 얼굴을 어루만지며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민가 여기저기서 아침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아마도 말린 소똥을 연료로 쓰겠지...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투명한 햇살은 사원과 바위봉우리와 초원을 따뜻이 어루만지고 있다.

 

 

 

 

 

 

아침 식사(쌀죽, 짠지, 만두, 삶은 달걀)를 마치고 천장터(天葬垈)로 출발한다.

 

주검을 독수리에게 먹게 하는 티베트 사람들! 티베트 사람들은 새에게 몸을 먹힘으로써 땅, 물, 불, 바람이라는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신의 사자'라고 믿는 독수리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이 장례의식을, 그래서 조장(鳥葬)이라 일컫기도 한다.

 

 

 

 

사원에 딸려 있는 사하촌 마을 랑무스는 샤허보다도 작다. 당연 사원의 규모도 사하에 비해서 작기도 한 탓이다. 호텔에서 감숙성 랑무스 입구까지 마을 거리는 100m가 채 되지 않는다.

 

 

 

 

 

 

해발 3,350m의 고산지대에 자리잡은 랑무스(郞木寺), 사원 이름이 버젓이 지명으로도 굳어졌다.

 

 

 

감숙성 랑무스로 들어서기 전, 개울 하나를 만난다.

 

이 물은 랑무스협곡과 어제 보았던 회민촌(回民村) 초원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데, 바이롱장(白龍江)이라 부른다. 큰불이 일어나 백성들을 구하려던 백룡이 두 눈에서 흘린 눈물이 강이 되었다는 전설이 담긴 이름이다.

 

이 작은 내를 경계로 사천성과 감숙성이 나눠지는데, 아침에 보았던 사원이 바로 사천성 랑무스다. 사천성 랑무스는 루얼카이현(若尔盖县) 홍성향(红星乡)에 속하는 마을이다.

 

 

 

 

 

 

이 개울을 건너면 감숙성으로 간난티베트자치주 루취현(碌曲县)에 소속된 랑무스진이다. 

 

 

감숙성 랑무스로 들어서는 길목.

 

신축건물 공사를 하느라 어지럽다. 멀리 사원 정문이 보인다.

 

 

 

 

 

 

감숙성 랑무스 정문.

 

천장터 가는 길은 감숙성 랑무스를 통과해야 한다. 사원 관람료를 내고서야 들어설 수 있다.  

 

 

 

 

 

 

티베트 사원 불탑인 초르텐과 금빛 찬란한 전각들이 늘어선 감숙성 랑무스.

 

사원은 나중 돌아올 때 보기로 하고 큰길을 따라 천장터 방향으로 곧장 간다.

 

 

 

 

 

 

코라를 도는 티베트 여인들... 허리가 구부러진 모습으로 순례를 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도 깊은 신앙심이 절로 느껴진다. 알 수 없이 가슴 속이 뭉클해지고 아려온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감숙성 랑무스 전경

 

 

 

 

 

 

코라를 도는 티베트 여인.

 

호법전 구실을 하는 건물일까... 두 여인 모두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시계 방향으로 돌고 또 돌고... 끝없이 순례를 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사천성 랑무스와 랑무스대협곡.

 

바로 아래로는 백룡강(白龍江)이 흐르며 저쪽 사천성과 이쪽 감숙성을 구분해 주고 있다.

 

 

 

 

 

 

구불구불 천장터로 가는 길을 따라 오르며 바라보는 건너편 풍경.

 

근경만 바뀔 뿐 원경은 비슷하게 잡힌다.

 

 

 

 

 

 

임도 같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오르며 나는 천장터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들꽃들에만 관심을 쏟는다. 푸른 색 꽃을 피운 닻꽃, 잎이 실처럼 가느다란 초롱꽃, 길죽한 곷봉오리를 단 특이한 용담과의 꽃, 애기물매화와 닮은 꽃, 구름송이풀 비슷한 꽃...

 

고산 봉우리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는 우리 땅에서 보지 못한 온갖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이방인의 발길을 자꾸만 붙든다. 

 

 

 

 

 

 

가장 앞섰던 걸음이었는데 어느 새 일행들은 나를 앞질러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이따금씩 야생화에서 눈을 돌려 잊은 듯이 건너편 풍경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시야를 가로막던 커다란 능선을 넘어서자 비로소 또 다른 광활한 풍광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비로소 오른쪽 능선 위로 펼쳐지는 평원도 시야에 들어온다.

 

저 멀리 원색의 다르촉이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는 곳이 바로 천장터!

 

 

 

 

 

 

초원 한가운데 일렬로 앉은 티베트 여인들, 뭘 하고 있는 걸까...?

 

 

 

 

 

 

가까이 가서 보니 구슬을 꿰어 염주형 팔찌와 목걸이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풀밭 저 위로 보이는 천장터...

 

이승에서의 삶을 매듭 짓고 하늘로 돌아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육신을 보시하는 곳이다.

 

 

 

 

 

 

천장터로 다가서는 것이 힘들어진다.

 

자꾸만 발걸음이 주춤거려진다. 고산증을 앓는 것도 아닌데...

 

 

 

 

 

힘들게 힘들게 접근한 천장터.

 

눈물이 속 빠지도록 짙푸른 하늘, 천상세계로 오르는 마지막 봉우리에 기대어 자리를 잡았다.

 

천장을 위해 크고 작은 돌들을 널어 놓은 마당, 한쪽으로는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해탈시키는 천장 도구들이 놓여 있다.

 

 

 

 

 

도끼와 망치와 칼과 갈고리가 육신을 해체해 돌밭에 널어 놓으면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달려들었으리라.

 

아마도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온 장례터일 터. 검붉은 땅과 돌에는 랑무스에서 삶았던 사람들의 해체된 육신의 흔적들이 짙게 배어 있는 듯하다.

 

 

 

 

불운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천장 행렬이 없다. 호기심을 못 이겨 천장터 주변을 배회하며 천장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 얼핏 형체를 그대로 보이는 인골 파편이 시야에 들어와 섬찟함에 나도 모르게 전율한다. 셔터 한 번 누르고 애써 외면하며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난 나는 천장터 뒤편 언덕으로 발길을 옮긴다.

 

 

망자가 이승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풍경...

 

 

 

 

 

 

결국 봉우리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언덕에는 뜻밖에도 하늘을 닮은 쪽빛 뚜껑별꽃들이 흐드러러지게 피고 있다. 별이 된 티베트의 영혼들인듯이...

 

 

 

 

 

 

티베트인들은 영혼불멸을 믿고 법력이 높은 라마승들은 죽음에 임해서 다음 생에서의 환생을 능히 주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가 자신이 환생할 곳을 알려주고 후계자로 다시 전생하여 살아있는 부처로 태어나는 활불 제도가 생겼다.

 

천장은 바로 이런 신앙 위에서 성립된 제도일 것이다. 생명이 멈추는 순간 육신에 깃들어 있는 영혼이 전생할 수 있도록 육신을 해부하여 독수리에게 보시하는 천장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원래 티베트인들은 시체를 그대로 하늘(독수리나 야생동물)에 바치는 자연 천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토착 종교인 본교의 영향을 받아 육신을 해체하는 천장사를 두는 제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본교에는 <구승경론(九乘經論)>이라는 죽음에 관한 경전이 있다고 한다. 이 경전에는 무려 360종의 죽음과 4종류의 장례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오늘날 티베트 천장터에서 행해지고 있는 해부의 자세와 방법 절차 등이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본교의 장례의 주된 내용은 시체 해부와 영혼 이탈로 시체 해체가 끝나면 천장사는 주검의 정수리로부터 영혼을 탈출시키는 '포와(頗瓦)'라는 의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참고 : 심혁주, '티베트의 천장문화', 법보신문 2012. 6.11)

 

 

 

하늘을 선회하고 있는 새들... 망자의 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독수리일까...

 

 

 

 

 

 

천장터 주변은 붉은 피뿌리풀과 노란 물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피뿌리풀과 물싸리는 모두 '티베트인의 행복과 기쁨을 기대하는 아름다운 정감(藏族人民 期盼幸福吉祥的 美好情感)'을 나타내는 '거상화(格桑花)'로 불리는 꽃이다. ('거상화'는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꽃으로 주로 코스모스를 일컫지만 금로매(물싸리)와 피뿌리풀도 거상화라 부른다.) 이승을 떠나는 고원 천장터에 영혼 불멸을 기원하는 상징, 타르초처럼 화사하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천장에 대해선 많이도 들어 알고 있음에도 막상 천장터를 돌아보고 나니 알 수 없는 충격에 마음이 아려온다. 고산 유목민인 티베트인들에게 어쩌면 불가피한 장례 풍속일 수밖에 없는 천장일 텐데도 육신을 해체하는 장례 문화에 본능적으로 끔찍함을 느낀다.

 

 

무덤은 정착생활을 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현실과 정서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농경민들과 같은 땅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겨울이 길어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서 매장한다는 것도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 되었을 것이다. 화장을 하는 것이 대안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티베트는 3000m대의 고원지대라 나무가 거의 살지 않는다.

 

여기에 그들의 토착종교인 본교와 영혼 불멸을 믿는 불교 사상이 결합하면서 독특한 천장문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일행들이 여전히 천장터 주변에 서성거릴 때, 나는 풀밭 속으로 풀꽃들을 찾아 다니며 아린 마음을 달랜다.

 

 

 

 

 

 

갑자기 차 한대가 천장터로 올라가며 내려오던 사람들이 천장을 본다며 되돌아간다. 나는 굳이 보고 싶지 않아 풀꽃 탐사만 즐기기로 한다. 하지만 천장 차량이 아니라 비석을 실은 차량이었다고 한다. 천장터 주변에는 비석도 있고 사진도 내 걸려 있기도 했다.

 

 

 

 

천장터를 벗어나 바로 아래편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트 사원, 감숙성 랑무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