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일기

지리산의 가을 (2) / 함박꽃나무 까치박달 노린재나무 열매, 지리바, 뱀톱, 왜갓냉이

모산재 2009. 11. 2. 00:08

 

등산객이 없는 한적한 골짜기의 흐르는 물과 단풍 등 풍광을 즐기며 유유자적했으면 좋으련만 짧아진 해에 마음이 자꾸 바빠진다. 골짜기의 숲속길이 한없이 이어지면서 아직 오후 네 시가 채 안 지났건만 마치 해가 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지 않는가...

 

갑자기 썰렁해진 날씨를 고려하지 않고 감기에 걸린 몸으로 얇은 등산복을 입고 산을 오르노라니 잠시라도 쉬는 시간엔 몸이 움츠러 드는 것이 내일 아침 산행이 절로 걱정스러워진다.

 

 

 

 

오를수록 단풍은 산 전체로 넓어지고 선명한 색감도 더욱 눈부시다. 

 

 

 

 

막연히 까치박달 열매이겠지 하고 당겨서 찍은 녀석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보니 서어나무가 아닐까 하고 헷갈리기 시작한다. 서어나무의 포잎은 삐죽삐죽 좀 무질서하게 배열된 듯한 느낌인데 이 녀석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떨어진 열매라도 찍어 둘 것을... 그도 아니면 수피라도 담아 두었으면 분명할 텐데...

 

 

 

다시 골짜기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함박꽃나무의 열매를 담아 본다. 붉은색 씨앗이 석류알마냥 박혀 있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까치박달나무 열매가 등산로에 떨어져 있는 것을 담아 본다. 잎모양의 포에는 톱니가 있는데 윗부분의 톱니가 날카롭고 5줄의 맥이 보인다.

 

 

 

 

계절이 늦어서 만날 곳이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지리바를 아늑한 골짜기에서 만난다. 밑부분까지 깊숙히 잘게 갈라진 잎이 지리바의 특징이다.

 

 

 

 

왜갓냉이 군락지에서 새로 자라나는 뿌리잎을 담아보았다.

 

 

 

세석으로 오르는 마지막 비탈길에서 만나는 이름 그대로의 석간수(石間水), 바위 틈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다소 야릇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 서늘하게 느껴지는 물은 아니지만 목을 축이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함박꽃나무가  잎 하나를 깃발처럼 매단 채 아름드리 다른 나무 둥치에 뿌리를 내렸다. 제대로 자란다면 연리지가 될까...

 

 

 

뱀톱이 많이 자라는 곳을 지난다.

 

 

 

송이풀이 지고난 뒤의 흔적도 담아 보았다.

 

 

 

해가 어둠의 그늘을 끌면서 세석으로 오르는 비탈길을 따라 오르는 속도로 나도 열심히 그늘에 잠기지 않게 바삐 걸음을 재촉한다. 정말 세석으로 올라설 때에 내 몸을 밝음과 어둠으로 나누던 햇살이 잠시 반짝하고선 서산으로 숨어들고 있다.

 

 

 

 

겨울나라에 들어선 듯  공기가 갑자기 썰렁해지고 몸도 으슬으슬해진다. 세석평전의 너른 초원지대에 자생하는 온갖 풀꽃들, 용담(과남풀)이건 산오이풀이건 수리취이건 이제 겨울 속으로 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꽃이 져버린 수리취

 

 

 

노린재나무 열매

 

 

 

생기를 잃어 버린 산오이풀 꽃

 

 

 

세석산장에서 올려다보는 촛대봉에 손수건 만큼의 햇살이 따스하게 걸리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였으니 다행이다.

 

차가운 공기에 감기든 몸이 으슬으슬한데 저녁을 챙겨 먹어야 할 시간. 뜨끈뜨끈한 라면에 삼겹살 구워먹는 사람들을 보며 좀 준비해올 걸 그랬나 싶다. 햇반 하나와 참치 캔 하나로 저녁을 때우자니 괜히 목이 메는데. 갑자기 60년 전 산사람들을 생각하고선 후다닥 먹어치운다.

 

산장에서 딱히 할 일은 없고 불이 꺼지는 8시부터 잠자리에 들지만 잠이 들리가 있나. 무한대로 길어진 시간을 나와 대면하는 밤... 혼자 여행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실존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