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섬 여행

장산곶 인당수 바라보는 백령도 심청각

모산재 2009. 8. 3. 11:55

 

한여름 산 위에 있는 백령도의 심청각을 오르는 비탈길을 걸어오르자니 땀깨나 흘린다.

 

 

20년의 고증 작업과 공사 기간을 거쳐 1999년 장산곶을 바라보는 백령도 진촌리 마을 뒷산 정상에 세워졌다. 심청각을 짓자는 여론은 백령도 앞바다가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로 알려지면서 일어났다고 한다.

 

 

 

 

 

 

 

심청각은 1층에 심청전 일대기를 표현한 모형물과 심청전 관련 고서, 나운규 주연의 1925년판 '효녀 심청전'대본, 윤이상씨의 심청 오페라 악보 등을 전시하고 있다.

 

관광홍보관인 2층에는 옹진군의 역사와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과 효녀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로 알려진 바다, 북녘땅 등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백령도가 심청전의 실제 무대였다는 것이 한국교원대 심청전 박사 1호인 최운식 교수를 비롯한 12명으로 구성된 조사 연구팀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고 한다. 연구팀은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은 황해도 황주에서 장산곶과 인당수를 지나 백령도, 연본, 연화리를 잇는 지역이라고 결론지었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대부분 황해도 황주 도화동을 심청이 자라난 곳으로 밝히고 있고, 인당수는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연봉은 백령도 남쪽에, 연화리는 백령도 서쪽에 존재하고 있으며 연꽃이 떠내려왔다고 하는 경로는 조류의 흐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인당수는 이곳에서 서북 방향으로 7km, 장산곶 사이에 있는 장소로서 이 지역은 남쪽의 태안반도에서 오는 해류, 북쪽의 신의주에서 오는 해류, 서쪽 강화도 해주 경기만에서 흘러오는 해류가 서로 합류하는 곳으로 삼각 파도가 형성되어 매우 위험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청상 너머로 길게 벋은 장산곶이 보인다. 

 

 

 

 

 

장산곶은 서도민요 몽금포타령의 본고장이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임 만나 보겠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임 만나 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른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성황님 조른다

 

바람새 좋다구 돛 달지 말구요

몽금이 포구에 들렀다 가소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들렀다 가소래

 

달은 밝구요 바람은 찬데요

순풍에 돛 달고 돌아를 옵네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돌아를 옵네다

 

 

 

 

 

장산곶은 백령도에서 15㎞ 이내 거리로, 장산곶에서 북동쪽으로 약 13㎞ 떨어진 거리에 몽금포가 있으며, 동쪽으로 32㎞ 떨어진 거리에 구미포가 있다.

 

이들 지역은 예로부터 백사정(白沙汀)으로 불리던 명승지로 울창한 해송림에 둘러싸여 있으며, 가늘고 흰 세백사(細白沙) 해변으로 유명하다.

 

용연군의 몽금포는 황금모래로 불리는 8km의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숲, 해당화숲으로 어우러진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15~20m 높이의 사구(모래산)가 5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남북 대결의 현실을 보여주는 전차

 

 

 

 

 

 

그런데 심청각을 짓는 과정에서 기독교 단체가 자신들의 신앙에 위배되며 샤머니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효녀 심청의 뜻을 기리기 위한 연등축제 때는 심청각에 설치한 연등을 무단으로 철거하고 연등을 밝히지 못하도록 전력 공급을 끊는 등 방해가 있었다고 한다.

 

백령도는 기독교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다른 종교, 불교나 민간신앙을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 어부들의 풍어제도 지내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또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던 사찰 터는 식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가 되었다.

 

 

 

고봉포구로 걸으며 올려다본 남산 심청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