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양구 두타연 계곡과 풀꽃들 (1)

모산재 2007. 8. 29. 00:07

양구 두타연 계곡과 풀꽃들 (1)

2007. 08. 03

 

 

 

우리 여행의 마지막날, 오늘의 일정은 두타연 탐방이다.

 

 

 

양구명품관 뜰에서 출발을 기다리면서

풀밭에 나 있는 풀들을 담아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풀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가졌다.

 

 

 

마디풀 꽃

 

 

 

애기땅빈대

 

 

 

위의 모습을 초접사하니 꽃과 열매가 보인다.

 

실제 크기는 지름 1mm쯤이다.

 

 

 

 

비름도 꽃이 피었는데, 점보다도 작은 수술이 드러나 보인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

 

양구군청의 문화관광해설사의 인도로

두타연 탐방을 신청한 차량들이 드디어 출발한다. 

 

 

 

 

 

민통선을 통과하여

두타연이 내려다 보이는 주차장에서 내려

양구군청 문화관광해설사(노성숙님)로부터 두타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산과 계곡이 깊고 물이 맑아  청정하기로는 양구가 제일이라고

양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분은

이웃 화천에서 벌인 산천어 축제가 대성공하고

그것을 모방한 양구의 메기 축제가 쫄딱 망하면서

청정 이미지를 화천에서 다 가져갔다고 애교 어린 한탄이시다.

 

 

그리고는 자신의 나이가 얼마쯤 되어 보이냐고 묻고는

(사람들은 50세 쯤이라고 대답을 하는데...)

내년이면 환갑이라고, 그런데도 10년쯤 젊어 보이는 것은

다 청정한 양구의 자연 환경 때문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바로 곁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병풍산

 

 

 

 

그리고 바로 20여 m 아래에 있는 두타연으로 이동한다.

 

 

2003년 6월부터 개방된 두타연은 금강산 가까운 매봉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 사이로 물길을 열고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며

넓고 넓은 소(沼)를 이루며 만들어진 계곡의 자연 연못이다.

 

 

 

 

높이 10m의 계곡물이 떨어지는 폭포 아래 형성된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구박이 반석 위에 찍혀 있다고 한다.

 

 

 

 

두타연이라는 이름은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이곳에 두타사라는 절이 있어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그 유래를 떠나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벗어 버리고 심신을 닦는 것'이 두타의 본래 뜻이니.

 

맑은 물이 시원스레 폭포로 떨어지며 이룬 넓은 연못가 바위에 앉았노라면

절로 세상에서 얻은 온갖 번잡스런 것들이 씻겨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 바로 두타(頭陀)가 아니겠는가.

 

 

 

두타연의 지리적 위치는 민통선 북방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로

6.25 전쟁 이전에는 이곳 건솔마을은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장을 보고 돌아가는 큰마을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마을이 없다. 

 

 


두타연의 물은 이렇게 흘러내려 수입천으로 들고,

수입천은 파로호로, 파로호물은 다시 북한강의 본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두타연 바위틈에 핀 원추리꽃

 

 

 

 

처음 보는 것인데, 골풀과로 보인다.

가지가 많이 번 것으로 보아 별날개골풀이 아닐까 싶다.

 

 

 

 

 

서식지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좀개미취를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두타연의 위쪽으로 이동을 한다.

 

 

문화관광해설사는 폭포옆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계류의 형상과 바위의 형상을 잘 보라고 강조하신다.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연세가 많으심에도 애교가 만점이다.^^)

 

 

첫째, 흐르는 물의 형상이 한반도를 닮았다는 것...

(신기하게도 쏙 빼닮았다...)

 

 

 

그리고 폭포를 이루기 직전 틈새로 흘러드는 물의 양쪽 바위를 잘 보면

남녀가 뽀뽀를 하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과연!)

 

그래서 '사랑바위'라고 부른단다.

 

 

 

바위 틈새로 흘러드는 물

 

 

 

좀더 거슬러 오른 곳에서 내려다 본 물길

 

 

 

하얗게 핀 으아리꽃들

 

 

 

좀개미취와 원추리

 

 

 

 

사랑바위 너머로 내려다본 두타연

 

 

 

<참고>  12두타행

 

① 인가와 떨어진 조용한 숲 속에 머문다.

② 항상 걸식을 한다.

③ 걸식할 때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④ 하루에 한번만 먹는다.

⑤ 과식하지 않는다.

⑥ 점심 이후에는 과실즙이나 꿀 등도 먹지 않는다.

⑦ 헌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

⑧ 삼의()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⑨ 무상관에 도움이 되도록 무덤 곁에 머문다.

⑩ 나무 밑에 거주한다.

⑪ 지붕이 없는 곳에 앉는다.

⑫ 단정하게 앉고 눕지 않는다.

 

두타행을 할 때 비구는 18가지 지물을 반드시 지녀야 하는데, 이를 두타 18물이라고 한다. 또 삼의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두타대()라는 자루를 목에 걸고 다닌다. 불교 초기에는 12두타행이나 두타 18지물이 지켜졌으나 나중에는 산이나 들, 세상을 편력하며 고행하고 수행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부처의 십대제자 중 가섭이 두타 제일로 칭송받았다. (네이버, 백과사전)

 

 

 

 

다시 뒤로 이동하여 전쟁 당시 있었다는 막사터인 풀밭을 지나고...

(당시의 취사장 문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맨 앞 빨간 치마를 입으신 분이 문화관광해설사 노성숙님 

 

 

 

 

닭의덩굴 열매

 

 

 

이 지역이 좀비비추 자생지인지 이곳에서도 눈에 띈다.

 

 

 

 

양구전투 위령비

 

전쟁 막바지 치열했던 전투로 많은 젊음들이 분단의 제물로 바쳐졌던 곳에

돌덩이들만 저렇게 덩그러니 남았다.

 

 

 

 

해설사님은 '비목'이라는 노래를 지금 연습 중이라면서

다음에 오면 꼭 부르겠다며 비켜 선다.

 

(이로부터 며칠 뒤에 모 텔레비전 초저녁 프로그램에 잠시 이곳 탐방 장면이 비치면서

노 해설사님의 비목 열창 장면이 나오더군...)

 

 

 

돌아오는 길 습지에는 키 10cm  안팎의 좀고추나물이

무더기로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시 두타연을 벗어나 금강산 쪽으로 접어드는

상류계곡으로 이동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