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와 문화재

안동 하회마을 (3) 최근 복원한 염행당, 또는 남촌댁

모산재 2012. 2. 7. 17:30

 

하동고택의 담장을 끼고 남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골목이 구부러지는 정면으로 새로 지은 정갈한 한옥집이 언덕 위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바로 이 집이 남촌댁이라 불리는 염행당(念行堂)이다.

 


새로 지은 건물은 모두 최근에 복원한 것.

 

하회마을 양반가옥의 4괘(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남촌댁)로 일컬어지던 남촌댁은 1954년 화재로 주춧돌 흔적만 남아 푸른 대밭에 묻혀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꼭 필요한 건물로 평가되어 복원된 것이다. 

 

 


 

■ 염행당(念行堂), 또는 남촌댁 중요민속자료 제90호

 

남촌댁(당호 염행당)은 충효당과 더불어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공식 자료들에는 1797년 형조좌랑을 지낸 류기영이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생몰연대는 '1825~1880'이니 어찌된 노릇인가...? 어떤 자료에는 고종 15년,1878년에 류기영이 크게 확장해 지었다고 하는데 이게 맞는 듯하다.)

 


99칸의 건물인데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는 물론 많은 도서와 진귀한 골동품들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솟을대문 밖의 초가들은 모두 남촌댁에서 거느린 외거노비의 집일 정도로 세력이 대단했다 한다.

 


문간채는 솟을대문을 두어 위엄을 살렸다.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 있던 것을 안채와 사랑채를 최근에 복원한 모양이다.

 

 

 


별당채는 별도로 일곽을 둘러 조성하여 후원 별당의 아취가 느껴진다.

 

 


 

복원한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담을 두어 공간을 분할하였다.  

 


이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의 구들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사대부집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저 굴뚝이 그렇게 복원된 굴뚝일까.

 

 

 


문을 들어서면 담을 두고 양쪽으로 사당과 별당으로 들어서는 문이 따로 있다. 별당으로 통하는 문만 열려 있다.

 


사당은 정침의 우측 후면에 담을 둘러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전면에 이중으로 담과 문을 두어 사당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엄숙함을 더하게 하였다. 담의 하부에는 막돌을 쌓았으나, 상부에는 기와로 문양을 넣어 간략하나마 장식을 하여 격식을 올렸다.

 

 

 


담으로 분할된 본채와 별당

 

 

 


1953년 화재로 몸채가 탄 이후 별당채는 주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벽체의 화방담은 화경당(북촌)의 화방담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가식이나 과장 없이 천연덕스럽게 장식하였는데, 기와쪽을 이용하여 석쇠 무늬를 바탕으로 '희(囍)'자와 '수(壽)'자를 만들었다.

 

 

 


현재 남단이 부엌이고 가운데 2칸은 온돌, 북쪽 1칸은 대청으로 원래는 부엌 없이 커다란 대청이 있는 접객 전용 공간이었으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개조한 것이다. 부엌은 아궁이만 시설하고, 상부는 누마루였던 것을 지금은 하부에 벽체를 시설하여 누마루는 안방 다락이 되었다. 부엌 벽체는 기와 편으로 문자와 그림을 넣어 장식하였다.

 

 

몸채가 있던 왼쪽 마당에는 30여 년 전 강 건너에 있던 정자 건물인 백률원(百栗圓)을 이건하여 놓았다고 하는데, 복원 이후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서쪽 담장 바깥에서 바라본 남촌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