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

고향 집 마당에서 만난 애기봄맞이(Androsace filiformis) 이야기

모산재 2010. 5. 25. 18:04

 

산과 들을 몇 년을 쏘다녀도 좀처럼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우는 풀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애기봄맞이입니다. 애기봄맞이라는 존재를 안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날 집 앞 논두렁을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이는 하얀 꽃들에 매혹된 뒤 몇 년 전부터 '봄맞이꽃'이란 별칭까지 써오고 있는 판에, 아우 '애기봄맞이'라는 존재가 어찌나 궁금해지고 그리워지던지...

 

이산가족이라도 된 듯 '애기봄맞이'라는 아우를 그리워하며 한번 만나기를 소원하며 들판을 헤맨 게 어언 5년.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고 하더니, 지난 해 봄 고향집을 찾았는데 글쎄 집마당에 깨알처럼 하얀 꽃들이 꼬마 우산대 위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애기봄맞이꽃임을 알아보고는 얼마나 반갑고도 허탈했던지!

 

어쨌거나 이산의 기억조차 없는 꼬마를 어루만지며 한동안 감격에 젖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일 년 지나 찾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마당 가득 피어나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실물로 대면하기는 처음인데, 어째서 우리 집마당에 자라고 있는 것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는지... 하긴 객지 생활하며 설, 추석 명절날에만 찾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생각해보니, 식구들이 득시글거리던 옛날 시골마당에 어찌 애기봄맞이 같은 잡초가 살 수 있었으리.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팔순 노인만이 외로이 지키고 있는 집 마당에 사람의 발길이 끊기며 잡초가 우거지고 이끼가 끼며 애기봄맞이가 살기에 딱 알맞은 습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날아든 씨앗이 제 세상 만난 듯 자손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번 달초 고향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작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군락을 이루며 애기봄맞이는 안개꽃처럼 하얀 꽃을 피우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고향을 찾은 막내 동생 부부도 한뼘도 안 되는 이 작은 풀꽃들이 피어 있는 풍경을 보고 연방 감탄사를 발하는데, 저절로 자라난 생명들인데도 내가 가꾼듯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기봄맞이는 앵초과의 한두해살이풀입니다. 여름을 지나며 여무는 깨알만한 열매는 싹터 월동하거나 이른봄에 싹터 자라납니다. 달걀모양의 잎들이 둥근 원을 그리듯 뿌리에서 모여나 자라며 지면을 따라 퍼집니다. 잎밑은 갑자기 좁아지면서 잎자루가 뚜렷해지고 둔한 이 모양의 톱니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몇 개의 줄기가 자라나 우산살처럼 퍼진 작은 꽃대를 만들고 그 끝에 꽃망울 하나씩을 달며 4~5월이면 하얀 꽃을 피웁니다. 키는 15cm 정도이니 한뼘이 채 되지 않는 꼬마입니다. 다섯갈래로 갈라지는 하얀 꽃부리는 꼬마 트럼펫 모양이라고 표현하면 될까요.

학명은 Androsace filiformis, 영어 이름은 Filiformis Rockjasmine입니다.

 

 

 

 

 

봄맞이 식구로 우리 땅에 살고 있는 토종은 모두 다섯 종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기본종인 봄맞이꽃(Androsace umbellata)입니다. 그 다음으로 습한 들에서 가끔씩이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애기봄맞이(Androsace filiformis)입니다.

 

그 외에도 금강산과 설악산에 자라며 꽃이 크고 아름답다고 하는 금강봄맞이(Androsace cortusaefolia), 백두산 지역에 자생하여 '백두산봄맞이'라고도 하는 고산봄맞이(Androsace lehmanniana), 애기봄맞이와 비슷하지만 털이 많은 것으로 함경남도 명천 등 북부지역에 분포한다고 하는 명천봄맞이(Androsace septentrionalis) 등이 있습니다. 지극정성이 아니고서는 이들을 만나보기는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 밖에도 외래종으로 제주도 들판에서 자라는 별봄맞이가 있습니다. 

 

 

 

 

 

봄맞이꽃의 꽃말은 '희망'입니다. 아직도 차가운 이른봄 땅 위에 잎들을 둥글게 펼치고 가녀린 꽃대를 올리는 봄맞이의 모습은 이름 그대로 봄맞이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희고 작은 꽃들이 피어날 무렵이면 어느덧 따스한 기운을 머금은 봄바람이 들판을 건너와 꽃잎을 흔들며 살랑입니다.

 

애기봄맞이는 봄맞이에 비할 수 없이 꽃이 작습니다. 봄맞이꽃이 손톱만하다면 애기봄맞이꽃은 깨알만합니다. 어찌보면 애기별들이 모두 모여 달려 있는 듯하지 않나요. "이제 봄이야!" 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  2월말, 애기봄맞이의 어린풀. 겨울이 끝날 무렵 싹이 터 자라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