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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이야기

'봄처녀' 제 오시네, 다랑쉬오름에 핀 까치무릇(산자고),

by 모산재 2010. 3. 21.

 

다랑쉬오름 오르는 언덕에서 홀로 핀 꽃 한 송이를 만난다. 바람 막아주는 마른 풀들에 둘러싸여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듬뿍 받고 까치무릇이 여섯 장의 예쁜 꽃잎을 열었다.

 

어째 한 송이만 피었을까, 오르는 언덕길 내내 더 이상 꽃이 보이지 않더니 화구 정상 볕바른 비탈에 점점이 하얀 꽃들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까치무릇이다!!!

 

 

 

 

 

 

 

 

 

가느다란 줄기에 버거워 보이는 큰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 위태하면서도 아름답다. 햇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자라는 까치무릇은 짧은 꽃대에 올린 꽃이 안정감을 주는데, 산언덕 숲속에서 피는 꽃들은 햇볕을 받아들이느라 꽃대가 길어 꽃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누워버린다. 꽃자루 위에 여섯 장의 길쭉한 꽃잎이 가지런히 배열되고, 꽃잎에는 가느다란 보라색 줄이 나있고, 그 속의 샛노란 수술이 두드러지게 보여 참 곱다.

 

까치무릇은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꽃잎을 연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그리고 흐린 날에는 활짝 핀 까치무릇을 만나기 어렵다. 그늘에서 자란 무릇은 잎새만 무성한 채 꽃을 잘 피우지 않는다. 까치무릇은 햇볕을 좋아한다. 숲 가장자리 들판이 이어지는 따사로운 햇살이 담뿍 내리는 곳이 까치무릇이 살고 싶어 하는 땅이다. 그래서 '봄처녀'라는 꽃말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어째서 까치무릇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줄 모양의 두 잎이나 땅속 비늘줄기가 무릇과 닮았으니 '무릇'이 붙었을 터인데, 가느다란 꽃 줄기 끝에 큼지막한 한 송이 꽃이 달린 모양은 긴 이삭꽃차례를 보이는 무릇과는 아주 딴판이다. 이름에 '까치'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자주색 줄무늬가 있는 흰 꽃잎의 모양이 까치를 연상시킨 탓이 아닐까, 싶다.

 

까치무릇은 현재 산자고(山慈姑, 또는 山茨菰)와 동의어로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하지만 산림청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산자고가 표준명이고 까치무릇은 이명으로 처리되고 있다. 예로부터 까치무릇이라 이름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슬그머니 산자고란 한자어가 차지하게 되었다. 정감 있는 우리말을 버리고 어째서 어려운 한자어를 쓰게 된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대부분의 식물학 용어들은 일제의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 받고 있다. 식물학 전공자들의 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까치무릇의 학명은 Tulipa edulis인데, 속명 'Tulipa'는 산자고가 바로 튤립과 같은 피붙이임을 나타낸다. 속명은 터번을 뜻하는 페르시아의 고어 tulipan에서 유래된 것으로 꽃 모양이 터번을 닮았기 때문이다. 종소명 'edulis'는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명도 Edible tulip이다. 과연 산자고 비늘줄기를 술을 담궈 마시면 자양강장 효과가 있고 차처럼 달여 마시면 인후통이 낫는다고 한다. 산자고라 불리는 식물은 까치무릇 외에도 약난초가 있다. 중국에서는 난초과의 약난초(중국명 두견난)를 약명으로 산자고라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까치무릇(중국명 광자고)을 산자고라 한다. 까치무릇을 꽃이 등롱(燈籠)과 같고 빛깔은 흰데 위에 흑점(黑點)이 있어 '금등롱(金燈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까치무릇에도 전설이 있다. 아마도 산자고(山慈姑)라는 이름에서 나왔을 법한 이야기로 보인다. '산 속(山)의 자애로운(慈) 시어머니(姑)', 다소 작위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근거를 확인하기는 어려운데,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옛날 어느 산골에 마음씨 고운 아낙이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딸 둘은 출가하고 막내인 외아들만 남게 되었지요. 아들도 장성하여 어느덧 장가갈 나이가 되었지만,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며 사는 가난한 총각에게 시집오겠다는 처녀는 없었습니다. 아들의 혼사를 위해 근처 큰 마을까지 몇 번이나 매파를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늙은 어머니의 시름이 깊어만 가던 어느 봄날, 신의 게시였는지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 앞에 한 처녀가 보퉁이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처녀는, 산 너머에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시집을 가지 못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 죽으면 산 너머 외딴집을 찾아가 보라’는 유언을 따라 찾아온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짝 지워진 아들과 며느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흐뭇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거니와 아들과 며느리의 효성도 지극했습니다.

신의 질투였을까요? 이듬해 초봄, 며느리의 등에 아주 고약한 등창이 생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날이 이어졌습니다. 가까운 곳에 의원도 없고 마땅한 치료를 해줄 수가 없는 시어머니는 애가 탔습니다. 며느리의 종창을 치료할 약재를 찾아 막연하게 산속을 헤매던 어느 날, 어머니는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 별처럼 예쁘게 핀 작은 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꽃이 피기에는 이르다 싶은 계절이었으므로 하도 신기하여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그 작은 꽃 속에서 며느리의 등창 난 상처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그 뿌리를 캐다가 으깨어 며느리의 등창에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름이 흐르고 짓물러 며느리를 괴롭히던 고약한 상처가 며칠 만에 감쪽같이 치료되었던 것이지요. 며느리는 물론 시어머니의 기쁨도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며 이때부터 이 작고 예쁜 꽃을 산자고(山慈姑)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 산자고 꽃 => https://blog.daum.net/kheenn/15857893  https://blog.daum.net/kheenn/15856891  https://blog.daum.net/kheenn/7905401 

☞ 산자고 열매 => http://blog.daum.net/kheenn/15853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