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커다란 빗살 모양의 잎사귀가 정갈한 아름다움을 준다. 키도 그리 크지 않아서 아담하니 뜰에 심어 곁에 두고 싶은 아열대식물이다. 소철! 제주도에서는 야생 상태로 흔히 자라지만 육지에서는 온실이나 집안에서 가꾸어야 하는 관상수다.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어째서 소철(蘇鐵)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모 백과사전에는 "철분을 좋아하며 쇠약할 때 철분을 주면 회복된다는 전설이 있어 소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근거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철수(鐵樹)·피화초>(避火蕉)·풍미초(風尾蕉)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풀이하면 '쇠나무'와 '불을 피하는 파초'이니 이는 소철의 단단한 특성을, '바람꼬리 파초'는 파초선 모양의 소철의 잎새에서 연상한 이름이 아닐까? 내 맘대로 추측해 본다.
소철의 생김새를 보고 별 의심없이 양치식물이나 야자와 같은 같은 계통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소철과 많은 양치식물, 야자들은 가운데에 잎축이 있고 양쪽으로 가는 잎사귀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지 않은가. 소철의 영명이 사고야자(Sago Palm)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소철의 열매를 처음 만나면서 이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소철은 양치식물도 야자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잎의 생김새만 비슷할 뿐 소철과 양치식물, 야자는 생식 기관과 방법에 아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양치식물은 잎사귀 뒷면에 포자를 달고, 야자는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는다. 이와 달리 소철은 암수딴그루로 줄기 끝 잎새 가운데에 원뿔꼴의 구과(毬果: 솔방울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구과를 다는 소철은 양치식물이나 야자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구과를 맺는 겉씨식물인 소나무, 전나무 등과 같은 침엽수와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 제주도
하지만 소철이 양치식물과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치식물이 번성하였던 중생대에 소철도 번성하였다. 잎의 형태가 고사리의 흔적을 보일 뿐 아니라 난자와 정자의 유성생식이 이루어지는 등 양치식물의 원시적 형질이 남아 있다. 수꽃은 주걱과 노 모양의 작은 포자잎이 꽃축 위에 나서 구화를 만들고, 작은 포자잎의 뒷면에 작은포자낭이 빽빽이 난다. 수꽃에서 방출된 꽃가루는 암꽃 밑씨의 꽃가루실에 들어가 2개의 정자가 된다. 밑씨는 3층의 주피(珠皮)로 덮여 있어 소철류가 양치류의 후손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백 년에 한번 꽃을 피우며(사실이 아니지만 그만큼 꽃을 보기 쉽지 않다는 뜻) 천 년을 산다는 나무, 그래서 꽃말조차 '강한 사랑'인 소철은 다른 종자식물에서 볼 수 없는 꽃의 원형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 살아 있는 화석으로서 주목받아 왔다. 암수딴그루로 암꽃만 예외로 큰 포자잎이 다발로 나고 꽃으로서 분화가 되지 않은 점이 꽃의 원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소철의 번식에는 또다른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미국 유타대학에서 새나 곤충을 매개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보통의 식물들과 달리 소철은 다양한 냄새와 열로 벌레들을 조종해 목적을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소철나무 꽃가루는 삽주벌레들의 유일한 먹이로 수컷나무 열매는 삽주벌레가 먹고 쉬는 장소가 되는데,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이 되면 평소보다 훨씬 높은 체온과 독한 악취를 뿜어 삽주벌레를 쫓아낸다는 것이다. 쫓겨난 삽주벌레는 더 유혹적인 향기를 뿜는 소철 암나무 구과 속으로 들어가 수컷의 꽃가루를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소철은 한낮이 되면 체온이 올라가는데, 수컷나무의 체온이 더 많이 올라가 상승폭이 최고 15℃나 된다. 소철은 당과 탄수화물, 지방을 연소시켜 체온을 올리는데 이 과정에서 악취를 대량 방출하고, 냄새를 내는 물질 중 하나인 베타 미르센은 독성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증가시킬 수 있어 벌레가 달아나게 만든다. 이런 작용은 암켯 나무에서도 일어나지만 암컷의 체온은 수컷만큼 올라가지 않아 악취라기보다는 벌레를 유혹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식물의 번식 전략은 참으로 대단하다.
소철의 씨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cm 정도이고 편평하며 적색을 띠지만, 안쪽은 흰색으로서 기름·당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씨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이용된다. 한방에서 소철의 씨를 통경·지사·중풍·늑막염·임질 등에 사용한다.
소철 줄기는 녹말(sago)이 많아 이를 채취하여 빵을 만드는데, 그래서 소철을 '사고 야자(sago palm)'라 부른다. 그러나 이 속에는 신경독(neurotoxin)과 같은 독성 물질이 있으므로 물에 우려내야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녹말 덩어리를 두 달 정도 땅에 묻어두고 남태평양 섬주민들은 물에 여러 차례 담그고 걸러내 독성을 제거한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소 사육 초기 토종 소철 Macrozamias의 잎을 먹은 소들이 뒷다리 마비로 걷지 못하고 굶어 죽는 일들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당시 소철 녹말로 구운 빵을 먹고 몇몇 군인들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소철은 다른 식물들이 살기 어려운 모래나 암석지대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랄 수 있다. 음지와 양지도 크게 가리지 않는 생명력을 자랑하는데, 이는 소철의 뿌리에는 질소를 고정시키는 뿌리혹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코랄로이즈(Coralloids)라고 불리는 뿌리혹은 흙의 표면 가까이 생기는데, 질소를 고정하는 박테리아가 서식한다.
세계에 160여 종이 존재하는 소철류 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자생하는 소철류는 소철 1종뿐이다. 그러나 화석으로는 30종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주로 문경·영월 등지의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한다.
많은 소철류가 서식지 파괴와 과도한 채취로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멸종위기종 국제거래협약(CITES)에 의하여 수출입 규제를 받고 있다.
■ 소철 수꽃 이삭
수꽃은 주걱과 노 모양의 작은 포자잎이 꽃축 위에 나서 구화를 만들고, 작은 포자잎의 뒷면에 작은 포자낭이 빽빽이 난다.
▼ 추자도
● 소철(蘇鐵) Cycas revoluta | king sago palm / 소철목 소철과 소철속의 상록 소교목
상록수로 높이는 1-4m 정도이며 지름은 20-30㎝이다. 암수딴그루이고, 줄기는 굵고 검은 빛인데, 온통 비늘모양을 한 잎자루로 덮이고 가지가 없으며 끝에서 1회깃꼴겹잎이 사방으로 젖혀진다. 잎은 가늘고 길며, 진한 초록색으로 윤이 난다.
수꽃과 암꽃은 모두 여름(8월)에 줄기 끝의 잎 사이에서 피는데 노란빛을 띤 갈색이다. 수꽃이삭은 솔방울 모양으로 원줄기 끝에 달리는데 길이 50∼60cm, 나비 10∼13cm로서 많은 열매조각으로 되어 있고 비늘조각 뒤쪽에 꽃밥이 달린다. 암꽃은 손바닥 모양을 하고 줄기 끝에 달려 있다. 원줄기 양쪽에 3∼5개의 밑씨가 달린다. 암꽃은 대포자엽이 모인 것으로 꽃의 조상이 되고 있으며, 수꽃에서 방출된 꽃가루는 암꽃 밑씨의 꽃가루실에 들어가 2개의 정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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